산비탈 ‘씨 없는 감’을 옥토로 옮기면…
[두재균의 여자이야기] 고종시와 자연유산의 공통점은?
씨 없는 곶감을 먹어본 적이 있습니까?
고종시라는 곶감입니다. 고종에게 진상된 곶감이어서 이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다른 곶감보다 작지만 입에서 살살 녹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전주에서 그리 멀지않은 전북 완주군 동상면 일대에서 생산되는 고종시는 한 번 맛을 보면 잊을 수 없습니다. 생산량이 많지 않아서 값이 꽤 비싸지만 월등한 맛 덕분에 명절이면 없어서 못살 정도입니다.
왜 이 곶감은 씨가 없을까요? 우장춘 박사가 씨 없는 수박을 만든 것처럼 어떤 생물학자가 씨 없는 곶감을 만들었을까요? 아닙니다. 척박한 자연환경 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 곶감을 만드는 감은 해발 400m 이상 고지대의 척박한 자갈밭에서 자라는 토종 감나무에서만 열립니다. 감나무가 자라는 곳은 거름은커녕 물도 별로 없는 그야말로 황무지 같은 토양입니다.
그런데 언젠가 한 고종시 감나무의 주인이 척박한 땅의 감나무를 앞마당으로 옮겼습니다. 거름을 충분히 주고 잘 가꾸면 더 큰 감이 주렁주렁 열릴 것을 기대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랬더니 더 큰 감이 많이 열리기는 했는데 ‘아뿔싸’ 씨가 있는 보통 감으로 바뀌어버렸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감나무가 척박한 황무지에서 있을 때에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이런 환경에서 자식을 낳은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어쩌다 얄궂은 운명 때문에 이렇게 살고 있지만 자식을 낳으면 나처럼 고생할 것이 뻔한데 뭐 하러…. 나 하나만의 고생으로 마감해야지.’
척박한 땅에서 불임의 길을 택한 감나무가 풍요한 앞마당으로 옮기면 ‘우와, 엄청 좋네! 이처럼 좋은 환경이라면 자식을 여럿 낳아도 되겠네’라고 생각을 바꿨을 것이고요.
사람도 감과 다르지 않은 듯합니다. 산부인과 의사로서 임신초기에 자연유산한 여성들의 유전자를 연구했더니 정상적으로 자라지 못하고 탈락한 수정란들은 대체로 유전자에 심각한 결함이 있습니다.
모체가 ‘아이쿠 우리 아기가 유전자 이상으로 태어나 이 험한 세상에서 고생하며 사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사멸의 길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감나무와 마찬가지로 사람도 ‘자녀의 행복’을 위해서 스스로 불임이라는 방법을 선택한 것입니다.
많은 여성이 유산을 하고나면 극도의 죄의식에 시달립니다. 산부인과 의사로서 옆에서 보면서 가슴이 아픕니다. 그러나 마음의 짐을 벗으시길 바랍니다. 자식을 고생시키지 않으려는 고종시 감나무처럼, 자녀의 행복을 바라는 자연의 오묘한 섭리일 가능성이 크니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