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입자’ 오보의 홍수
최근 국내 언론은 소위 ‘신의 입자’라는 ‘힉스’의 실마리가 포착됐다는 뉴스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리고 대대적인 오보를 냈다. 이 입자가 “빅뱅 직후 존재하다가
질량을 갖게 하는 특성을 다른 입자에 남기고 영원히 모습을 감췄다”(연합뉴스)는
것이다.
진상은? 힉스는 빅뱅 직후 나타나 ‘지금도’ 우주를 가득 채우며 기본 (물질)입자들에
질량을 부여하고 있다는 이론상의 장(場)이요 입자다. 현재 기본 입자들이 질량을
가지고 있으려면 현재 힉스 장(장의 양자적 표현이 입자다)이 우주 모든 곳에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실험을 통해 그 존재 여부를 확인하는 과제에 스위스입자물리연구소가
힘을 모으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도 “빅뱅이 발생한 직후 1000만 분의 1초 동안만 존재했던”(KBS), “모든
입자의 질량을 부여하고 사라진”(MBC), “우주 대폭발 당시 잠깐 만들어졌다가 사라진”(SBS),
“빅뱅 직후 존재했을”(조선일보), “빅뱅 때 잠깐 나타났다 사라진 입자”(중앙일보)라는
보도가 홍수를 이뤘다.
특히 조선일보의 오류는 학생들을 위해 지적해 둘 필요가 있다. 12일자 ‘빅뱅의
비밀 밝혀줄 神의 입자 베일 벗을까’ 기사를 보자. “빅뱅 당시 존재했던 기본 입자
12개 중 절반이 사라지고 현재 우주엔 6개의 입자만 존재한다. 이 중 3개가 물질을
만든다.”
진상은? 빅뱅 ‘당시’는 아무런 입자도 존재하지 않는 에너지 수프 상태였다.
그후 기본 입자 16종(앞으로 힉스가 확인된다면 17종)이 나타났고 모두 현재 우주에
존재한다. 이 중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는 ‘3개’가 아니라 ‘12종’이다.
‘힉스가 빅뱅 직후 사라졌다’는 오보는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연합뉴스 2008년
9월 10일자 ‘사상 최대 입자가속기 LHC 가동, 의미와 전망’ 기사가 출발점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같은 달 2일자 파이낸셜 뉴스의 오보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제목은 ‘우주 탄생 수수께끼 풀리나’.
“빅뱅 직후 우주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였다. 빅뱅으로 생긴 입자와 반입자가
서로 반응해 빛만 남고 모두 사라졌기 때문.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입자가 많아지며….”
연합뉴스는 이를 근거로 “힉스 입자도 그때 사라졌다”고 지레짐작한 것이 아닐까(진상은?
빅뱅 직후 물질 입자 10억1개당 반물질 입자 10억 개가 만들어진 덕분에 대부분이
쌍소멸한 뒤에도 물질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물리학의 상식에 반하는 오보가 3년 넘도록 재생산되고 있는 현실은 걱정스럽다.
국내의 수많은 물리학자•과학자가 이 같은 오보를 접했을 것이고 그중 일부는 해당
언론사에 지적도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바로잡습니다’ 난에서는 그 결과를 찾을
길이 없다. 과학자 사회는 “언론은 원래 무식해”라며 포기한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우리들 언론 종사자는 그럴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되는 책무를 지닌다.
조현욱 미디어본부장·중앙일보 객원 과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