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조두순 아동성폭행사건과 사형, 거세
‘설마’ 했습니다. 거짓말이기를 바랐습니다. 네이버에 있는 벗에게서 그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도리질을 쳤습니다. 그러나 사실이었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참담했습니다.
딸 가진 아비로서 뜨거운 덩어리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한숨이 나왔습니다. 며칠
동안 울가망했습니다.
네티즌의 정의감이 온라인에 활활 타오르니 법무부 장관이 나섰고 대통령도 심경을
밝혔습니다. 우리 모두의 아픔이고 우리 모두의 부끄러움이고, 우리 모두의 슬픔이지요.
‘나영이’와 가족의 참담함을 생각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지다가도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조두순을 생각하니 온몸이 떨립니다. 사건의 전개나 발뺌, 언행을 전해 들으니 인간이기를
포기한 째마리 중의 째마리였습니다.
허나 지식과 감정 사이 깊어지는 골을 확인하면서 혼란의 수렁에 빠집니다. 온라인에서는
당장 사형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이고 저도 만약 조두순이 바로 옆에 있다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지만 이 감정은 제가 평생 공부해온 것을 배반하는 것이어서 저 자신을
달랠 길이 없군요.
우리나라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집권과 함께 지금까지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국제사면위원회에 의해 ‘사형제 실질 폐지국’으로 분류돼 있지요. 끔찍한 범죄가
벌어질 때마다 사형 부활론이 나오고 있지만 쉬운 문제만은 아닌 듯합니다.
사형을 찬성하는 분들은 기원전 18세기 함무라비법전의 논리와 같이 범죄자는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식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정의(定義)에 따르면 ‘보상적 정의(正義)’이지요. 반면 사형반대론자들은
이탈리아의 법학자 체사레 베카리아가 ‘범죄와 형벌’에서 “살인죄를 벌하려고
살인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주장한 것을 지지합니다. 이에 대해 찬성론자는 “살인을
피한 살인이 정당방위로 용인되는 것처럼 사회의 보존을 위해 살인자를 처벌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반박합니다. 특히 공리주의자들은 사형의 범죄예방 효과를 강조하지요.
저는 좀 다른 차원에서 근본적인 문제를 던져보려고 합니다. 흉악범에게 어디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유의지를 갖고 있으므로 자기 행위에
대해서는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면 사형찬성론이 맞을 것이지만, 만약 사람이라는
종이 유전자와 환경의 소산이라면 한 사람을 마음대로 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약해지는
것이지요.
생명과학과 뇌과학의 발달은 후자에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질병이
유전적 원인과 환경적 요인의 복합적인 산물인 것처럼 사람의 마음도 유전자와 환경의
소산이라면 과연 한 사람을 벌한다고 해서 우리의 마음이 위안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의 심신과 행동양식은 부모에게서 받은 유전자가 외부의 환경에
반응하며 형성이 됩니다. 흉악범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사악한 유전자를 물려준 삼대(三代)를
벌해야 하나요? 범죄자의 심성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한 가족이나 친구, 심성을 삐뚤게
만들고 사회를 저주하게 만든 교사나 정치인, 네티즌도 함께 벌해야 합니까?
그렇다고 짐승만도 못한 조두순 같은 자, 뻔뻔하기 이를 데 없는 발김쟁이에게
책임을 묻지 못한다는 것은 우리의 감정과는 너무나 배치됩니다. 자유의지론을 부정하고
유전자와 환경에 모든 책임을 미룬다면 어떤 일에도 상과 벌을 줄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환원론’에 따라 사랑을 뇌의 작용으로 설명할
수는 있겠지만, 그 사랑의 감정을 어떻게 과학으로 전하겠습니까?저는 혼란스럽습니다.
뇌에서 감정과 본능적 부문을 주관하는 변연계에서는 조두순의 음경을 태운다든지,
싹둑싹둑 자르고 항문을 불로 지져 최악의 고통을 맛보게 하고 싶지만 전두엽에서는
그것은 이성적 태도가 아니라고 말립니다. 전두엽에서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대한민국
사회가 TV에서 강간을 정당화하는 에로물을 쉽게 볼 수 있는 사회, 성폭행을 비롯해서
어떤 폭력이든지 당연시되거나 심지어 우상화되는 사회, 매일 불륜을 조장하는 휴대전화
메시지나 이메일이 홍수를 이루는 사회인데 이런 현상들을 고치는 것에 관심을 갖고나
있느냐고. 형벌이 응보에서 교도로 바뀐 지 오래인데 아직도 함무라비법전의 현상적
상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느냐고. 글쎄요, 글쎄요.
그러나 성폭행범에 대한 거세는 추진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성범죄는
재범률이 높은 범죄인데 13세 미만의 미성년자를 상대로 한 성범죄는 평균보다 더
높다고 합니다. 뇌가 술이나 담배, 도박을 이기지 못하듯 충동성을 조절하지 못하는데
그 충동성이 주로 자신을 파괴하는 다른 중독과 달리 연약한 아이나 여성의 삶을
파괴한다는 점이 다르지요. 실제로 한나라당의 박민식 의원은 지난해 ‘화학적 거세
치료법안’을 발의했습니다. 주사로 남성호르몬 분비를 억제시켜 성범죄자의 성욕을
억제함으로써 범죄의 재발을 막자는 것이지요. 저는 미성년자 성폭행법의 뇌 특정부위를
억제하든지, 아니면 생식기의 일부를 물리적으로 제거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자기의 의사를 표현할 수도 없는 미성년자에게 평생 굴레를 씌운 막바우들에게 그
정도의 책임은 물어야 하지 않을까요? 평생 자신의 낙인을 보고 뉘우치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너무 과한가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