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 소녀들 “깜찍한 Gee 기대하세요”
한양대병원 백혈병-림프종 어린이, 5일 공연에 참여
5월5일 어린이날을 앞두고 한양대학교병원 본관 7층에 있는 ‘누리 봄 교실’
병원 학교에서는 소녀시대의 인기곡 ‘Gee’가 수시로 흘러 나왔다. 노래에 맞춰
엉덩이를 흔드는 아이들은 이 병원에서 백혈병 및 림프종 치료를 받고 있는 어린이들.
한양대학교병원이 운영하는 누리 봄 학교는 장기 투병으로 정규 수업을 받기 힘든
환아의 교육을 맡고 있다.
지난 해부터 림프성 백혈병을 앓고 있는 희수와 2007년, 2008년 비호지킨 림프종
판정을 받은 소연이, 효빈이(이상 모두 가명) 등 열 살짜리 공주 세 명은 “빨리
춤 연습 해야 해요”라며 질문을 빨리 끝내라고 아우성이었다. 만나는 동안 쉬지
않고 재잘대는 소녀들은 항암치료 때문에 머리는 빡빡 이었지만 여느 열 살과 다를
게 없었다.
“그냥 춤 추는 게 좋아요.” 셋 중 소녀시대 춤을 가장 잘 따라 추던 희수의
장래 희망은 댄스 가수. 작년 병원 행사에서는 원더걸스의 ‘노바디’ 춤을 선보였다.
링거를 꽂은 채로 갖가지 동작을 야무지게 해내는 모습이 아슬아슬하지만 희수는
춤 추는 내내 즐거움을 감추지 못했다.
“전 하기 싫은데 선생님이 시키니까 하는 거예요”라며 툴툴대던 소연이도 음악만
나오면 누구보다 열심히 몸을 흔든다. 5일 공연에 친구들을 초대했기 때문이다. 효빈이도
학교 친구들을 많이 불렀다. “춤을 친구들에게 제일 보여주고 싶어요.”
희수는 엄마, 아빠에게 춤을 보여 주고 싶다고 했다. “어버이날에 아빠, 엄마께
카네이션 달아 드릴 거예요. 선물은… 비밀”이라며 희수는 쑥스럽게 웃었다. 열
살 아이치고는 여간 어른스러운 게 아니다. 말끝마다 부모님 얘기를 하는 희수에게
효빈, 소연은 “넌 친구도 초대 안 했어?”라며 장난을 친다.
춤 추고 떠들 때에는 여느 어린이와 다를 바 없지만 치료 이야기만 나오면 시무룩해진다.
효빈이는 “병원 올 때 기분 무진장 안 좋아요. 재미도 없고 밥도 맛 없고 컴퓨터도
안 되고 친구도 없고… 정말 답답해요”라고 말했다. 이에 질세라 소연이도 “MTX(항암제의
일종) 그게 최고 힘들어요. 그거 맞으면 하루 종일 병원에 누워 있어야 해요”라며
그간의 고통을 설명한다. 많이 아프냐고 물으니 “아프기보다 힘들어요, 되게 힘들어요”라며
‘힘들다’는 단어를 반복한다.
하지만 병원학교 친구들이 있어 외롭지만은 않다. 어떨 때가 가장 좋냐는 질문에
셋은 입을 모아 “병원학교 와서 그림 그리고 얘기하고 춤 추고 놀 때요”라고 말했다.
이렇게 병원학교가 좋지만 여러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었던 학교는 여전히 돌아가고
싶은 곳이다. 셋 중 유일하게 일반 학교에 다니는 효빈이는 “병원학교가 그냥 학교만큼
재미있을 수는 없죠”라며 솔직히 이야기했다. 일주일에 두 번 이상 병원을 오는
희수와 소연이도 갑자기 “친구가 보고 싶다”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침울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병이 나으면 무얼 하고 싶은지 물었다.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희수는 “굴, 회, 초밥!”을 쉬지 않고 외쳤다. 세균감염 우려 때문에 완전히
익히지 않은 음식은 먹지 못하는 아이들은 이제 생선 회가 혀에 닿는 촉감까지 잊어
버릴 지경이다.
먹고 싶은 걸 맘껏 먹은 뒤 하고 싶은 것은 놀이기구 타기. 소연이는 “88열차,
바이킹, 아폴로 다 타고 싶어요. 이번 검사 좋게 나오면 엄마가 태워 준댔어요”라며
새까만 눈을 반짝인다. 소연이의 장래 희망은 의사. 본래 과학자였지만 아프고 나서
환자를 돌보는 의사로 바꿨다고 한다. 그림을 잘 그리는 효빈이의 꿈은 만화가다.
다가오는 어린이날 받고 싶은 선물로 일제히 ‘빅뱅’을 외치는 천진난만한 소녀들.
공연이 결정되고 나서는 수업이 없어도 외래 진찰이 있는 날이면 꼭 병원학교에 들러
혼자서라도 연습을 한다. 희수는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기자의 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 “아빠, 엄마, 낳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양대병원 소아혈액종양부모회 '한마음회'가 주최하는 소아암 백혈병 어린이를
위한 어린이날 큰잔치는 5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한양대 백남음악관에서
열리며, 세 소녀의 공연은 1시 30분쯤에 예정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