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환불을 요구할 영화 ‘유감스러운 도시’
봤다고 말한다는 것도 창피한 영화다!
한국 영화를 보고 극장 문을 나설 때 마다 ‘나도 참 할 일 꽤나 없는 놈이다’는
자괴감을 느낀다.
프리뷰를 쓴다는 것 조차 시간 낭비라 여겨 개봉 초읽기를 눈앞에 두고도 묵묵히
지켜보았다. 하지만 이건 아니지!
견비통으로 한의원을 찾아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TV에 정준호 정웅인 정운택이
등장해 영양가라고는 코배기도 없는 연예 토크쇼에서 한담을 나누면서 노골적인 영화
PR을 한다.
더욱이 유일하게 즐겨 보는 TV 프로그램인 ‘개그 콘서트’에도 ‘장군의 아들’
박상민이 나와 방청석에 앉아 있으면서 은근히 신작 영화에 대한 관람 욕구를 부추겨
주고 있다.
19일
야심한 밤. 이제 내일만 지나면 똑똑한 척 하지만 상당히 어리석은 우리 관객들은
그동안 영화사가 시도한 융단폭격식의 선전 공세와 출연진의 연예 프로그램 집단
출연으로 조성된 분위기에 휩쓸려 아무 꺼리낌 없이 7000원이라는 목돈을 쏟아 붓겠지!
이런 좀비 현상을 막아야한다는 의무감이 들어 지금 글을 끄적이는 마음이 바쁘다.
지금 시각이 1월 19일 오후 10시 46분이다.
이 글을 쓰도록 결정적으로 발동을 걸리게 한 것은 영화 사이트 무비스트에 올라온
아이디 panfan의 ‘집단 환불 요구 사태 일으킬 영화‘라는 20자 영화 프리뷰를 읽고서였다.
영화 선전을 위해 영화사들이 고용한 아르바이트 리플 열기속에서 그래도 양식 있는
네티즌은 분명히 있다는 안도감을 느낀다.
입담이 거친 조폭 부인이 식탁에 앉아서 검은 조직의 두목인 남편에게 ‘이런
새우 좆같이 생겨 가지곤!’이라고 막말을 하는가 하면 ‘당신 애 데리고 포경 수술하러
다녀와, 이 참에 당신도 까고와!, 더러워 죽겠어!’라고 막말을 퍼붓는다.
‘친구’로
얼굴이 알려진 정운택. 이 친구는 이후 출연작인 ‘투사부일체’ ‘두사부일체’
‘뚫어야 산다’ 등에서 늘상 남자 성기를 노골적으로 흔들어 대는(?) 역겨운 연기로
배우 밥을 먹고 있는 것이 안쓰럽다. ‘유감스런 도시’에서도 섹스를 위해 남자
성기에 구슬을 3알을 박았는데 그것이 차례대로 굴러 떨어지는 장면이 순차적으로
보여진다. 매우 중요한 장면처럼.
깡패들의 욕지기와 예의 드러나는 각목 패싸움, 그리고 자동차 폭주 장면들이
화면을 채색하고 있는데 이 영화가 ‘설날 온가족이 즐길 수 있는 영화’란다. 어이상실이다.
강력계 근성이 몸에 뚝뚝 배어 있는 교통 경찰 장충동(정준호). 그가 외부에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특수수사팀에 합류해서 기업형 거대 깡패 조직을 운영하고
있는 양광섭(김상중) 조직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조폭 새내기 조직원으로 잠입한다.
한편 깡패 조직에서도 경찰 특수 수사팀의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건달 조직원
이중대(정웅인)를 특채를 통해 경찰 조직에 침투 시킨다.
기존 얼개는 바로 홍콩 ‘무간도’와 이를 할리우드 리메이크한 마틴 스콜세즈
감독의 ‘디파티드’다.
마피아 조직과 이들을 섬멸하게 위한 경찰 조직이 상대방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해 상대방 조직에 일급 조직원을 침투시킨다는 설정은 이미 마이클 뉴웰 감독,
알 파치노, 조니 뎁 주연의 ‘도니 브래스코 (Donnie Brasco)’(1997)에서 생생하게
보여준 바 있다.
FBI 요원 조 피스톤(조니 뎁)이 마피아 정보 수집 임무를 띠고 도니 브래스코라는
가명으로 마피아 조직에 침투, 중간 보스 레프티 루지에로(알 파치노)에게 접근한다.
영화는 시종 마피아 조직에게 자신의 정체가 발각될까 두려움에 떠는 조 피스톤과
동물적인 감각으로 조가 경찰의 끄나풀일지 모른다는 것을 감지한 레프티 부하들의
움직임이 대비되면서 상영 내내 팽팽한 긴장감을 던져 주고 있다.
‘유감스런 도시’는 이러한 긴박감 있는 소재 자체를 시종 코믹하게 풀어 나간다.
가수 김흥국이 초반 경찰 강력계 조사실에서 불쑥 튀어 나오면서 이 영화는 방향을
잃기 시작한다.
남성 성기에 구슬을 박은 것을 배역 특징으로 내세우고 있는 정운택을 따르는
심복 부하는 개그 콘서트 ‘대화가 필요해’ 코너에서 무뚝뚝한 경상도 아버지역을
맡았던 개그맨 김대희다.
깡패 조직과 경찰 조직이 상대방의 움직임을 체크해서 괴멸시키거나 대처하겠다는
비장한 드라마에 개그맨을 비중 있는 조역으로 등장 시킨 것은 이미 이 영화가 ‘죽도
밥도 아닌 아사리 판’이라는 것을 자임하는 꼴이 되고 있다.
또있다.
경찰 대학을 졸업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미모의 경찰 중간간부인 경위 한고은이 어느날
불쑥 부임한 3계급 아래의 경장 정웅인과 시도때도 없이 나이트 바를 찾아가 양주를
홀짝이고 급기야 아파트를 얻어 동거에 들어간다.
라스트 무렵 경찰과 깡패 조직원과의 다툼에서 폭약이 터져 경찰 중간간부 선우재덕과
한고은이 사망한다.
두 사람의 죽음을 알고 울부짓는 정웅인. 그의 절규하는 장면에서 흘러 나오는
멜로디가 러시아 가수 이오시프 코브존의 ‘백학(Cranes)’이다. 고현정의 출세작
‘모래시계'의 테마곡으로 쓰여 널리 알려진 이 노래가 ‘유감스런 도시'에서 뜬금없이
흘러 나온다. 생뚱맞다!
김동원이라는 감독과 영화 음악을 맡은 이는 ‘영화속에서 음악의 역할과 효과'에
대한 공부를 뼈를 깎으면서 하시길. 음악만 흘러 나오면 그것이 사운드트랙인줄 아는가?
오호통재(嗚呼痛哉)라!
1. 초반에 어느 절간에서 벌어지는 임무 하달식에서도 뜬금없이 조폭 300여명과
이들이 검은 우산을 펴는 장면이 나온다.
2. 종반 무렵. 정준호와 정웅인이 빌딩 옥상에서 권총을 겨누고 있다. 카메라가
360도로 트래킹(tracking) 되고 이들 가운데로 완전 무장한 경찰 특공대가 탑승한
경찰 헬기가 뜬다. 할리우드 경찰 영화는 본 모양이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장면
중 하나이다. 긴박감 보다는 헛헛 웃음이 나온다.
3. 한고은과 선우재덕의 죽음을 애도하는 장면. 때깔 있게 경찰복장을 한 200여명의
엑스트라가 나오고 애도 의식으로 20여명이 허공으로 장총을 발사하는 조총 의식이
진행된다.
4,
부산 선착장에서 벌어지는 러시아 검은 조직과 밀수 거래 장면.
1에서 4번까지는 대표적인 예산 낭비 장면이다.
더욱이 상당 부문 Police라는 로고가 선명히 찍혀 있는 경찰차, 헬기 그리고 부산
앞바다의 경찰 선박 등이 화면을 채색하고 있다. 이런 3류 찌질 영화에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는 경찰 운송 도구를 차출 시킨 경찰 홍보 조직 책임자는 직무유기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광고 카피중 하나가 ‘할리우드에서는 상상도 못할 코미디'다. 서울 장충초등학교
다닐 때 부친과 먹던 콩국수가 토해 나올 지경이다.
제작사는 서두에 밝혔듯이 ‘집단 환불을 준비하시라’. 15세 이상 관람가. 22일
개봉.
추신
하지만 영화는 소비자 불만족인 ‘리콜’을 할 수 없는 예술 장르다. 그래서 막무가내로
관객들을 속여 먹여도 제작사나 감독은 설악산의 소나무처럼 독야청청하며 지낸다.
영화판의 미네르바가 출연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