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중 바라보는 제3의 시선
'영화 <크로싱>의 투자·배급사는 7월 4일 CGV측이 관계사인 CJ엔터테인먼트가 투자·배급한 <강철중>에만 유리하게 상영관 수 할당과 배정을 하고 있어 <크로싱>이 손해를 보고 있다며 CGV가 4일 정오까지 이번 주말(5일-6일) 기준으로 <강철중>과 비교해 공정한 시간과 상영관 배정을 하는 조치를 마련하지 않으면 <크로싱>의 프린트를 모두 회수하겠다고 통보, <크로싱>을 CGV에서 볼 수 없게 되는 사태가 우려된다' - 7월 4일자 <연합뉴스> 기사.
영화계의 또 하나의 비리가 곪아 터졌다. 6월 19일 <강철중> 개봉, 상영관 545개. 6월 26일 <크로싱> 개봉, CGV에서 첫 주 71개 개봉, 2주차 55개로 축소, 더욱이 오후 1시 이전인 조조에 상영됐다가 오후에는 다른 영화로 교체 상영되는 반관 개봉(교차 상영)이 이중 45개.
어떠신가? <강철중>이 <크로싱>보다 명작인가? 이미 코메디닷컴의 교양칼럼 코너에 두 영화 시사회 평을 게재했기 때문에 중언부언할 생각은 없다. 또 하나 <강철중>을 만든 감독이나 CGV에는 한 자락의 억하심정은 없다는 것을 밝히고 몇 마디 고언을 한다.
극장주, 배급사의 흥행영화 밀어주기?
'밀어주자!' 일단 어디서 영화를 관람하는가? 극장이다. 극장 운영주인 멀티플렉스(CGV, 메가박스, 롯데 시네마 등)와 배급사가 '밀어 붙이자!'라며 짜고 치면 관객들은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 남한의 흥행 시스템이다.
영화는 리콜이 안되는 유일한 상품이다. 1,000원짜리 물건을 구입한 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반품할 수 있다는 것이 영수증에 명백히 기재되어 있다. 그런데 7,000원, 일부 극장 주말 요금 8,000원을 주고 관람한 영화가 ‘대대적인 선전 문구’, ‘포털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평점 8.9’ 등에 현혹돼 관람하고 난 뒤 마음에 차지 않았다고 환불을 받은 적이 있는가?
오락 산업은 유일하게 반품이나 리콜이 되지 않는 무소불위의 영역이다. 그러다 보니 일단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극장으로 손님을 끌어 들이는 자(者)가 장땡이다. 극장 문을 나섰을 때 애초의 기대감이 배반당했을 때 '에이! 이것 보라고 한 장본인의 목을 비틀어 버리고 싶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
<강철중>에 대한 국내 최대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네티즌 리뷰 중 일부이다. “네이버 그러지 마라. 욕을 한 것도 뭣도 아닌데 왜 글을 삭제하냐? 그저 영화를 칭찬하지 않아서? 이 영화가 조폭 쌈마이 코메디라는 말이, 공공의 적이 아닌 두사부일체라는 말이, 대체 삭제될 이유인가? 아니면 평점 장난치지 말라는 게 삭제의 이유인가. 이런 평점 5도 안댈 영화가 평점 8.38을 기록하고 있는 이런 상황이 짜증나서 글을 쓴 거다. 세상은 힘 있는 넘들 위주로 돌아가고 우린 그저 그 넘들의 기준에 이리저리 휘둘릴 수밖에 없는 것인가? 이런 영화가 저런 평점을 기록하고, 그걸 욕하는 글을 삭제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이 정말 너무 너무 너무 짜증이 난다” - 7월 6일 새벽 1시 30분 기준 조회 2784회, kazamatsury님.
필자도 한국영화에 대한 비판기사를 블로그를 통해 올리면 이 대형 포털 사이트는 귀신 같이 삭제한다. <숙명> <비스트 보이즈> 등에서 당했다. 조지 오웰의 미래 묵시록적인 명저 <1984>처럼 지금 남한 사이버는 보이지 않는 거대하고 음습한 빅 브라더가 엄엄히 존재하고 있다.
1998년 4월 지하철 2호선 강변 CGV 11이 건립되면서 남한에서도 한 건물에 영화를 상영하는 공간이 10개 이상 차지하는 ‘멀티플렉스’ 시대가 열렸다. 이후 10년 동안, 한 건물에 한 개 극장만이 달랑 있는 단관 극장은 거의 초토화 돼서 박물관에서나 찾아봐야 되는 격변의 시기를 맞고 있다.
멀티플렉스가 무엇인가? 뷔페처럼 영화를 취향대로 골라보고 시간에 여유가 있는 이들은 건물 내 편의 시설에서 음식, 커피, 게임을 즐기거나 음반 매장이나 도서 매장에서 음악과 책 읽기 등 위락 시설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상영관 점유 10% 못넘는 미국영화계
그러나 남한의 멀티플렉스 운영 실태를 둘러보자! 2007년 기준 전국 멀티플렉스는 대략 1,980여개 -일부에서는 2,100개로 주장- 이다. 전국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고 아우성을 친 영화 3편의 스크린 독과점을 회고해 보자.
* <괴물>(2006년) 1,700개 상영관 중 620개(점유 비율 36%), 전국 관객 1301만(관객수치는 배급사나 제작사측 주장, 정확한 공신력은 없음. 이하 동일)
* <태극기 휘날리며>(2004년) 1,200개 상영관 중 440개(36%), 전국 관객 1174만명
* <왕의 남자>(2006년) 1,700개 상영관 중 397개(23%), 전국 관객 1230만명
한 영화가 전국 영화관의 평균 30%를 차지하면 이건 엄연히 특정영화를 밀어 주는 불공정 거래 아닌가? 할리우드를 보자!
* <스파이더맨 3> 개봉관수 4, 252개
* <트랜스포머> 상영관수 4,011개
미국 영화가는 1억 달러(한화 1,000억원)을 투자한 막대한 블록버스터라고 해도 미국 전역 멀티플렉스 3만5,600개중 10%를 넘지 못한다. <반지의 제왕> <헤리 포터> <타이타닉>도 모두 4,000개 내외 스크린에서 상영됐다.
‘당신 영화가 공개되는 만큼 타인의 영화도 상영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것이 미국의 흥행 자본주의 논리다. 이것은 아무리 악한이라고 해도 등 뒤에서는 총을 쏘지 않는다는 존 웨인의 서부극 총잡이 논리와도 일맥상통한 것이다.
반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돈을 먼저 번 자가 화려한 월계관을 차지하고 있는’ 남한에서는 앞서 이야기했듯이 짜고 치는 고스톱 논리 때문에 <크로싱>은 출발선상부터 관객들에게 제대로 평가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반론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가 좋으니까 관객들이 몰리는 것 아닌가?’ 얼씨구 지화자! 말이야 바른 말이다! 남한 사회에서는 일단 탄력이 받으면 -마켓팅 용어로 Tipping Point- 무한질주해 버리는 꼬라지를 한두 번 겪는가?
이런 쓰나미에서는 반론은 여지없이 적색분자가 된다. 일례로 6월 30일 광화문 네거리에서 촛불시위대가 떼를 지어 경찰과 대치하고 있을 때 ‘미국산 소고기나 실컷 먹어보자!’고 말했다가 방송작가이자 5살배기 아이를 키우는 여자 후배가 ‘우리 애들 광우병 걸리게 만든 명박이한테 돈 받으셨어요?’라고 후려치는데 어안이 벙벙!
전 국민이 -그래봐야 남한 4,850만명 인구중 노출된 인구는 20만이 안되는 숫자 아닌가- 반대한다는데 어딜 감히 찬성표를 던지느냐고 힐난해서 서로 잠시 뻘쭘해진 경험이 있다.
배꼽티가 유행하면 20대 처녀들이 배꼽을 까발리고 거리를 활보한다. 정체불명의 미시족이 등장하니 젊은 유부녀들이 너도나도 애 낳은 티를 안내려고 미니 스커트를 입는다. 애 2명 낳은 40대 여자가 헬스로 다져진 몸매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니 바로 연예인이 되고, 중년 부인들이 ‘나도 봄볕을 쪼이겠다’고 헬스장으로 몰려가 손뼉을 쳐댄다. 일단 들어서면 후진은 할 수 없다는 독일의 무한 질주 고속도로 아우토반은 남한 사람들의 잠재의식에 모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다시 네이버 <강철중> 리뷰 네티즌 평이다.
* noandsoo 정말로 별로예요. 08.07.04
* neh321 한국에서는 네이버뿐만 아니라 모든 사이트 평점이 다 쓰레기 08.07.02
이런 반론은 영화관으로 밀려드는 전국 300만 몰빵에 물에 빠진 나비의 초라한 날개짓이 되고 있다.
1980년 8월경 주한 미8군 사령관인 존 아담스 위컴은 뉴욕타임즈와 가진 인터뷰를 통해 남한 민족에게 일침을 날렸다. “한국인들은 누가 앞장서면 앞뒤 가리지 않고 쫓아가는 들쥐 떼 같은 민족성을 갖고 있다, 한국에서의 민주주의는 부적절한 시스템이다!” 아마 지금 이 말을 했다면 ‘감히 미군 장성이 한민족을 폄훼해!’라며 바로 용산 미군기지는 화염병 세례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흥행가의 들쥐 무리는 아니다!’라고 강변한다면 할 말은 없다.
1. 우리는 유달리 '쪽'에 민감한 민족이다.
결혼식장에 부조금은 한푼 들어오지 않아도 일단 사람들이 득시글거려야 '쪽팔리지 않았다!'고 자위한다. 전국 관객 1,000만, 700만, 500만, 300만 등 쪽을 내세우는 것은 그 쪽에 끼려고 무작정 달려드는 사람들의 특질을 적극 활용한 심리적 흥행 수법이다.
2. 놀라지 마시라! 기록으로 남는 영화 흥행수치는 서울관객 기준이다.
1,000만명을 돌파했다고 호들갑을 떤 영화들은 기록상으로는 250만명 내외이다. 자료를 수집, 보관, 유통시키고 있는 영화진흥위원회 홈피 자료실을 검색하면 바로 나온다! 결국 전국 관객의 숫자를 유달리 내세우는 것은 사람을 더 끌어 모으기 위한 극장, 제작사, 배급사측의 짝짜꿍 농간에 휘말리는 짓이다.
3. 개봉 14일만인 7월 2일 <강철중> 전국 관객 300만명 돌파. 극장이나 제작사가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수치이다.
남한에는 극장 관객 수치를 공신력 있게 결산하는 기관이 없다. OECD 가입 국가 맞아? 뭐 이런 불합리한 사례가 한둘이라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