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여읜 내 친구 린
아나폴리스를
스치듯 오른편으로 30-40분을 달리면 만나는 해변가에, 널찍널찍 하지만 오래된 집에
아이들 자전거와 살림살이를 마당에 잔뜩 늘어놓고 내 친구는 살고 있었다. 이제
막 유치원에 들어간 다섯 살짜리 딸과 앞니가 튀어 나와 토끼를 연상케 하는 네살박이
수다쟁이 아들, 마음씨가 넉넉한 농담 잘하는 남편과 함께 바다 위로 뜨는 아침해를
보며 앞 바다에서 낚시를 드리우거나 게망을 살피면서 그녀는 그렇게 살고 있었다.
3년 전 이맘 때 나는 그 친구 집을 매주 금요일마다 찾고는 했다. 해변을 따라
오고가는 길에는 꽃이 그득하고 풍성하게 피어 있었다. 그녀의 집 앞바다에는 오랜만에
찾아 왔다는 희귀조도 있었다. 하지만 그 집에서 내가 취한 것은 꽃 향기가 아닌
강렬한 슬픔이었다.
직장을 새로 옮긴 뒤 처음 사귄 친구였기도 했고 이래저래 마음이 잘 맞던 그녀가
어느 날 점심을 사겠다고 하더니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췌장암에 걸렸다고 할 때부터,
그녀의 휴직, 결코 길지 않았던 투병생활, 장례식까지는 단 한 절기밖에 걸리지 않았다.
몇 달 되지 않을 투병생활을 밥하고 청소하는 데 보내게 하고 싶지 않아서 직장동료들은
매주 음식을 만들어서 보냈는데 그 배달을 내가 맡았다. 흰 얼굴에 곱슬머리가 잘
어울리던 내 친구 린은 참 빨리도 여위어 갔지만 늘 웃음을 잃지 않았었고 씩씩했었다.
마치 시간과 전쟁을 하듯 그녀가 생의 마지막에 심혈을 기울인 일은 아직 너무
어려서 필경 엄마의 기억을 오래 간직하지 못할 아이들을 위해서 사진첩이며 녹음
테이프를 만드는 일이었다. 특히 어린 딸에게는 매해 생일날마다 들어 볼 수 있도록
나이에 맞는 충고를 해주는 테이프를 만들었는데 가끔은 나에게 들려주기도 했었다.
“섬머야, 이제 오늘로 열여섯이구나. 내 딸, 아직 남자 친구는 없는 거야? 여자는
지갑에 비상금을 20불쯤 꼭 넣어 가지고 다니는 법이야. 데이트하다 남자가 맘에
안 들면 택시 타고 집에 와야 하니까….”
마지막 그 무서운 통증에 시달릴 때도 의연했던 내 친구가 정말 힘들어 했던 일은
그 어린아이들을 조금 더 오래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내게 딱 3년만 아니 1년만
이 아이들과 함께 있을 시간을 준다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고 싶어….”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어서 아나폴리스 병원에 입원했을 때 그녀가 나직하게 눈을 감고
한 말이었다.
얼마 전에 새로 나온 보건잡지를 뒤적이다 ‘하루에 30분 이상 걷거나 운동을
하는 사람은 암에 걸리더라도 회복하는 확률이 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에 비해 열
배 이상 높다’라는 글을 보았다. 발표대로 열 배는 아니더라도, 내 친구 린이 ‘미래를
알 수 있었고’ 10년 전쯤에 그 논문을 보았더라면 분명 하루에 한번 30분 이상 운동을
했을 것이다.
살고 죽은 일이 그리 단순한 일도 아니고 불로장생을 하는 사람도 없지만 이생에서
하던 일을 미진한 채로 남겨두지 않도록 하루 30분씩은 꼭 운동을 하기로 결심했다.
어린 아이들을 남기고 안타까워하며 먼저 간 친구를 그리워한다. 다정하고 씩씩했던
내 친구 린 (Lynn Baxandale-Co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