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된 고도 비만환자 살리겠다
숨 쉬기 조차 힘들만큼 심각하게 살이 찐 환자가 있다. 움직이는 것은 물론 완성된 한 문장을 말하기조차 이 환자에게 버겁다. 숨이 차기
때문이다. 이처럼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있는 고도비만 환자들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며 한 외과의가 나섰다. ‘S라인’을 만들기 위해 각종
다이어트 산업이 활개를 치고 있는 우리나라 이야기다. 한국에도 ‘국가적으로 외면, 방치된 채 죽음 앞에 놓여있는’ 고도비만 환자들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환자가 많겠냐고요? 현재 우리나라에서 수술이 꼭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고도비만 환자는 약 5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학회에서는 1만 명 이상이라고 보고 있죠. 대학병원은 인구 1만 명 당 1명꼴로 발생하는 질환을 흔히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죽기 직전인 비만
환자들을 치료한다고 해도 1000명 당 1명인데, 치료가 절실한 환자가 많은 거죠.”
인하대병원 비만전문센터 초대 센터장 허윤석 교수의 말이다. ‘왜 대학병원에서, 그것도 외과의사가 ‘비만전문센터’를 추진했을까?‘라는 기자의
우문에 대한 답이다.
인하대 비만전문센터는 내년 3월 경 개원한다. 모든 ‘비만 환자’를 ‘전문적’으로 치료하겠다는 허 교수의 의지가 담겼다.
성인병 등 예방차원의 일반적인 비만 치료부터 수술이 꼭 필요한 고도비만 환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비만 환자’를 대상으로 전문적인 치료를
제공할 계획이다. 외과 허윤석 교수를 센터장으로 내분비내과 2명, 가정의학과 1명, 산부인과 1명, 성형외과 1명, 소아과 2명 등 8명의
전문의가 뭉쳤다.
허 교수는 “미용적인 측면에서 이뤄지는 비만 치료는 개원가에서 담당하면 된다”며 “우리는 정말 비만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을, 대학병원이
적극적으로 나서 살려내야 할 비만환자들을 위한 센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지는 그의 말 속에는 소외받고 있는 환자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이들에 대한 일종의 책임감이 내포돼있었다.
“비만은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당뇨나 고혈압과 발생 원인이 거의 같고 함께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도 비만은 이와 아주 별개의
질환으로 치부되죠. ‘사람이 얼마나 자제력이 없으면 저렇게 살이 찔 지경에 이르렀을까’ 등등 비만은 한 개인적 문제, 개인적 책임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허 교수는 “비만으로 사망했다고 하면 점심시간 우스갯소리로 넘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우리의 무지와 편견, 오해가 그를 죽게 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허윤석 교수는 베리아트릭 수술의 대가인 미국 하버드의대 외과 문철상(미국 이름 에드워크 문) 교수에게서 이 수술을 배웠다.
‘인류 진화 과정에서 비만은 필수고 결국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수 밖에 없다’는 한 경제잡지의 표지 기사를 읽고 “비만으로 죽느냐 사느냐의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외과의로 새로운 삶을 선물하고 싶다”는 이유에서 문 교수를 무작정 찾아갔던 그다.
“미국에서 BMI가 54에 이르는 환자를 수술했습니다. 자살을 고민하던 이 환자는 ‘수술 받다 죽어도 그만’이라는 생각에 절박한 상황에서
수술을 받았어요. 현재 정상인으로 생활합니다. 전문교육을 받은 의사에게 치료를 받는다면 치료결과가 95~98%에 이를 정도로 매우 좋습니다.
제대로 치료를 받으면 새로운 삶이라는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비만 환자들이 사회적 시선 때문에 용기를 내지 못하고 방치돼 있는거죠.” 인터뷰 내내
안타까움을 토로했던 그의 거듭된 강조다.
베리아트릭 수술에서는 수술 전처치와 수술 후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지방덩어리로 온 장기가 덮여 있는 상황에서 안전하게 수술하고 수술 후
폐렴 등의 후유증에 대한 관리 노하우가 필수적이다.
허 교수는 “이에 대한 전문 교육을 받는다면 위암 수술 전문의에게는 상대적으로 간단한 수술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비만으로 진단받으면 이를 위한 어떠한 치료행위도 질환 치료가 아닌 성형수술과 같은 개인적 안위를 위한 행위로 취급돼 의료보험 지급을
거부당하고 있는 곳이 한국이다. 허 교수는 “사회적, 국가적으로 비만 환자를 외면하고 있는데 뜻을 같이 한 의사들이 모여 새로운 시도를 펼쳐
보일 것”이라고 인하대병원 비만전문센터에 대한 각오를 피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