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인’과 ‘박 대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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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목> ‘달인’과 ‘박 대 박’ 2008-6-28
KBS에서 주말 저녁 시간 대에 하는 ‘개그콘서트’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아이들도 좋아하고 해서 가끔씩 같이 보게 되는데 위 두 코너가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시청 후 아이들에게 ‘논리’라는 것의 성질에 대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위 개그에서 연기자들이 보여주고 있는 논리의 오류는 ‘입증 책임의 전가’, ‘인과관계의
왜곡’, ‘기계적인 유비추리 오류’라고 하는 것들입니다. 이것들을 다 아울러서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궤변’이라는 말로 대신할 수 있습니다.
없는 것을 증명해 내라!
‘달인’에서 보시면 사자 옆에서 자는 광경이나 폭포 앞에서 빨래하는
모습, 화산에서 오징어를 구워먹는 모습은 누가 보기에도 수긍이 가지 않는 장면들입니다.
사회자는 정말 그랬느냐고 의심스러워 묻습니다. 달인은 ‘가봤느냐?’ 아니면 “해봤느냐?‘고
되묻습니다. 그리고 안 가봤으면, 안 해봤으면 말을 하지 말라고 당당히 말합니다.
사회자는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힘들기 때문에 입을 다뭅니다. 실제 그럴
가능성도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달인은 어떤 수법을 쓰는 것일까요?
대부분 있는 것을 증명하는 것보다 없는 것을 증명하기가 훨씬 어렵습니다. 우리
집에 금송아지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금송아지를 한 번 가져와서 보여주면 되지만
없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온 집안을 다 뒤지고 나서도 땅에 파묻었을 가능성을 증명해야
되고 안 나오면 더 깊이 파묻혀 있을 가능성도 있으므로 100% 증명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뭔가를 주장한다면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입증
책임을 부여하게 됩니다.
2005년 ‘황우석 줄기세포 조작사건’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었습니다. 황우석
지지자들은 줄기세포의 존재가 조작된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어딘가에 세계
최초의 인간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가 존재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줄기세포가
없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하면 ‘100% 확실하냐?’고 되물었습니다. 100%는 아니지만...이라고
하면 ‘우리 나라에 있는 줄기세포 실험실을 다 뒤져보기 전에는 말을 하지 말라’고
강변했습니다. 만약 진짜로 이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국내 실험실을 모두 압수 수색해서
줄기세포가 나오지 않았다면, 해외로 빼돌려졌을 수 있으니 전 세계 실험실을 다
뒤져보기 전에는 말을 하지 말라고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와 같이 100% 안전하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다’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해석할 때 그러면 어차피 위험하다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나가면 항상 답을 얻지 못하고 되돌이 상태가 될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나가자면 이 세상을 ‘여섯띠아르마딜로’의 모습을 한 신이 창조했고, 지금도
우리들 모르게 만물을 다스리고 있다고 해도 없는 것을 완벽히 증명할 수 없으므로
사실이라고 주장할 수 있고, 우리 집 화장실에 처녀귀신이 있다고 해도 없다는 것을
완벽히 증명하지 못하면 사실이라고 주장할 수 있게 됩니다. 광우병의 위험에 대한
논란도 마찬가지입니다. ‘위험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가 항상 ‘100%가
아니니 위험한 것이다’로 바뀌어 확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박 대 박’에서는 ‘100만 명을 취업시키려면 100만 명을 해고하면 된다’며
교묘하게 인과관계와 상황을 왜곡해 놓습니다. 사회자가 자꾸 따지다가 자신도 헛갈려
말려들어 갑니다. ‘황사가 중국에서 오니 베이징도 한국에 올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기계적이며 형식적인 유비추리를 합니다. 언뜻 보면 맞는 말인 것 같지만 하나하나
따져보면 모두 말도 안 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sCJD의 상당수가 광우병 걸린 소고기를 먹어서 생긴 것이다?
sCJD(산발성 크로이츠펠트-야콥병)의 상당수가 vCJD(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콥병,
인간광우병)처럼 광우병 걸린 소고기를 먹어서 생긴 것이라는 주장을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아마도 vCJD 숫자만 가지고는 본인들이 계산해도 너무 걸릴 확률이 떨어지니까 sCJD도
함께 걸고 넘어져야 그나마 사람들이 공포심을 갖지 않을까 하는 고육지책의 전략으로
보여집니다.
sCJD는 잘 알려진 것처럼 전 세계적으로 거의 일정한 비율로 인구 100만 명 당
1명씩 발생하는 희귀성 질환입니다. 자발적 또는 체성돌연변이(somatic mutation)에
의한 변형프리온단백질 생성을 원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실제 프리온 유전자에 이상이
있어 다른 형태의 프리온단백질이 만들어지면 이것이 CJD를 일으킨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가족성 크로이츠펠트-야콥병, 거스만-스트라우슬러-샤인커 증후군).
다만 체성돌연변이의 경우 생식세포돌연변이와 달리 국소적으로 일어나므로 유전자
검사를 하더라도 변이 유무가 확인되지 않을 것입니다.
전에 댓글에서 언급했기 때문에 알아들으실 분들은 이미 다 알아들으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혹 못보신 분들을 위해서 다시 말씀 드립니다. sCJD가 광우병 걸린 소고기를
먹어서 생긴 병이라면 다음과 같은 가정에 대해 근거를 댈 수 있어야 합니다.
1) 광우병 소가 없는 나라는 sCJD가 없거나 꽤 적어야 한다. - 호주, 뉴질랜드
등
2) 소고기를 먹지 않는 나라에서는 sCJD가 없거나 극히 적어야 한다. - 인도 등
3) 결국 sCJD가 발병하고 있는 나라들은 광우병 걸린 소가 있기 마련이다.
4) 실제 vCJD는 광우병 걸린 소고기를 먹어서 생긴 것이 아니라 sCJD의 일종이라고
반대로 주장할 수 있다. 우연히 광우병 소와 연관되어 생긴 착각이며 소고기와 상관없이
자발적으로 발생하는 질환이라고 말이다. 이 주장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호주, 인도, 한국... 그리고 대소동...
광우병 청정 국가인 호주의 경우를 살펴보겠습니다. 호주의 sCJD 발병률은 1970년에서
1999년까지의 데이터를 보면 최대 100만 명 당 1.4명으로 전 세계 평균보다 높습니다.
일단 이것부터가 아이러니입니다. sCJD가 광우병 때문이라고 주장하려면 조금 적게
나오더라도 시원치 않을 판에 오히려 많으니 말입니다. 인구 2000만 명 잡으면 매년
20명~30명의 sCJD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영국과 비교해보겠습니다. 영국이 1995년에서 1999년 동안 vCJD 환자 56명이 있었고
같은 기간 동안 sCJD 환자가 260명 있었습니다. 합치면 316명입니다. 이 316명 모두
그냥 광우병 걸린 소고기 먹어서 발생한 것으로 치고 이 기간 동안 광우병 걸린 소를
최하 40만 마리로 계산하면 호주에서 같은 기간 동안 100~150명(20~30명 x 5년)이
똑같이 sCJD를 앓았으므로 호주에는 산술적으로 그 기간 동안 광우병 걸린 소가 13만
마리에서 20만 마리가 있어야 이 정도의 sCJD 환자가 발생한다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무슨 소리냐? 언제 sCJD가 모두 소고기 때문에 생겼다고 그랬느냐? 상당수라고 했다
주장한다면 반절 잘라서 6만 마리에서 10만 마리의 광우병 소가 있어야 합니다. 현재까지
한 번도 광우병 걸린 소가 발견되지 않았던 호주에서 한 두 마리도 놀랄 판인데 10만
마리 이상의 광우병 소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꼴이 됩니다.
인도의 경우 종교적인 특성상 소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이론대로라면 인도에는
sCJD가 없거나 있더라도 극히 적어야 합니다(물론 아직 의료 환경 및 대부분 하층민의
건강 상태가 열악하다는 점을 숫자에 감안시켜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인도에서는
현재 85명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었고, 이 숫자는 최근 15년간 300% 가까이 증가한
숫자입니다(의료 수준 향상과 평균 수명의 증가로 발견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해석입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sCJD발병률이 높아지는 것처럼 보이는 까닭은 진단 기술 향상과
국민 보건 의식 향상, 평균 수명의 증가에 기인한 것입니다).
한국의 경우 최근 5년간 182명의 sCJD 환자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같은 계산으로 sCJD의 상당수가 광우병 때문에 생긴 것이라면 우리나라에는 과거
어느 시점에 23만 마리 정도의 광우병 소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반으로 자르면
12만 마리). 우리나라의 총 사육 두수가 200만 마리 정도 된다는데 23만 마리면 우리나라
소 10~20마리 중 1마리는 광우병 소라는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주장입니다.
정리해보겠습니다. ‘sCJD가 광우병 걸린 소고기를 먹어서 생긴다는 주장’은
‘sCJD가 있는 나라는 광우병 걸린 소가 있고 그 나라 사람들이 그 광우병 걸린 소를
먹고 있다’는 이야기와 동일한 이야기라는 것에 쉽게 동의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실을 주장하는 사람은 실제 sCJD가 있는 국가들을 모두 광우병 발병
국가로 규정하는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결국 전 세계에서 sCJD가 국가와 민족에
상관없이(실제는 약간 차이가 나는데 리비아 태생 이스라엘인, 북아프리카에서 이주한
프랑스인, 슬로바키아인의 발병률이 높습니다. 이유는 잘 모릅니다) 균일하게 백만
명 당 1명 꼴로 발병하고 있으므로 전세계 국가는 모두 광우병 위험국가도 아니고
광우병 현재 발생 국가로 전락하게 됩니다. 만약 이런 사실을 인터넷 사이트 댓글
같은 데나 달지 않고 언론에 발표를 한다거나 TV 토론회에 나와서 공개적으로 한다면
전에 뉴라이트연합 사무차장인가 뭔가가 맥도날드에 사과했던 전례처럼 해당 국가나
축산협회로부터 엄정한 항의 내지는 손해배상 논란에 휘말릴 수 있습니다.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려면 최소한 호주에 가서 드넓은 벌판을 돌아다니며 미친소를 미친
듯이 찾으러 돌아다녀서 대충 10만 마리 정도는 끌고 와서 ‘봐라 이래서 너희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여태까지 sCJD에 걸려왔던 거야’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sCJD 중에 소수는 광우병 걸린 소고기를 먹어서 생긴 것일 수도 있다
이 정도 되면 이제 좀 주장을 완화하여 상당수라고 표현한 것은 좀 잘못된 것
같다. 그냥 이렇게 하자. ‘sCJD 중에 극히 일부는 광우병 걸린 소고기를 먹어서
생겼는데 산발성으로 잘못 알려진 것이다’로... 이 정도 표현은 당연히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변형프리온질환의 특성상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며 광우병
연구자들도 이미 생각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변형프리온의 strain에 대한 이야기를
전에 했었는데 그 내용을 이해하신다면 왜 가능성이 있는지를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전에는 무조건 한 strain만 감염되는 것으로 알았었는데 발병한 한 뇌에서 여러 종류의
strain이 상존하고 있을 수 있음이 여러 차례 보고되고 있습니다. 한 strain이 감염되었지만
도중에 변이를 통해 다른 여러 strain으로 변화될 가능성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통계적으로 광우병에 걸린 소의 고기를 먹어서 생기는 CJD는 대부분 type4이고, 산발성으로
발생하는 경우는 type1 또는 type2 또는 그 이외 다양한 형태가 보고되고 있습니다.
통계적이기 때문에 이 중 일부가 type4가 아닌 다른 형태로도 나타날 수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 그런 가능성이 최근에 발견된 V/V형을 가진 젊은 여성 CJD
환자에게서도 나타났습니다.
음식섭취와 sCJD의 관련성?
궁금증님이 링크를 달아주면서 야생 다람쥐를 먹은 사람들이 sCJD에 걸리지 않았느냐?
왜 그런데 광우병 소먹고 sCJD 안 걸리겠느냐는 질문은 CJD 질환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CJD의 종류 중 하나가 sCJD입니다. 그러니까 정확한 질문은 ‘음식섭취와
CJD의 관련성’이 되어야 합니다. 링크를 걸어주신 논문의 영문제목도 잘 보시기
바랍니다. "Creutzfeldt-Jakob Disease and Eating Squirrel Brains,"
sCJD가 아니라 CJD입니다. 당연히 CJD는 음식이나 야생동물들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습니다. CJD를 sCJD로 지금 은근히 바꿔놓은 것입니다.
CJD가 음식물 섭취와 관련된다고 대표적으로 증명된 것이 광우병 소고기를 먹고
걸리는 vCJD, 인육을 먹어 걸리는 Kuru입니다. 다람쥐를 먹고 걸렸다면 가칭 'squirrel
CJD'가 되는 것이고, 다만 그 strain이 sCJD와 유사한 type1 또는 type2라면 같은
계열로 분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예가 바로 Kuru입니다. Kuru는 인육을 먹어서
생긴 것이지만 sCJD와 동일한 type2 strain입니다.
사족 - 맞춤법과 정부 관련자와의 관련성
피카소님의 매우 긴 글은 문법이나 맞춘 법 하나 틀리지 않고 문장 또한 너무
잘 가다듬어졌습니다. 정부에서 최근 인터넷 대책반을 만들었다고 하던데 혹시 정부
관계자와 일하는 중입니까?...
이게 칭찬인지 욕인지 잠시 헛갈렸었습니다. 저는 솔직히 칭찬 쪽에 비중을 두고
싶습니다만... 그리고 마지막에 이런 글도 남기셨더군요.
두서없이 대충 쓰다 보니 문법이나 맞춘 법이 틀릴 수도 있음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두서 있이 정성 들여 쓰면 문법이나 ‘맞춘 법’(이 부분에서 억지로
틀렸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싶습니다. 안 그러면 같이 정부 관계자로 몰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글 쓰신 분이 상당히 머리가 좋으신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을
틀리지 않게 쓸 능력이 되신다는 이야기인데 스스로 자백하셨으니 결국 저와 같이
정부 관계자일 가능성이 농후해졌군요^^
피카소님의 글 21편에 관한 의견(댓글)은 ‘이곳’에 써주시기 바랍니다.
제공 : BRIC 소리마당 집중토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