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단체의 조급증
‘나쁜 여자, 착한 여자’를 보게 됐다. 결론은 이번에도 역시 의사단체가 성급했다는 것이다. 그 드라마가 의사의 불륜을 다루지만 그것이 의사집단을 매도하기 위해서라고 보는 사람은 일부 의사들 외에는 없을 듯하다. 필자는 15년 기자생활을 하면서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수많은 기자(記者)를 봤다. 대부분 기자의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화면의 잘 생긴 기자들은 왜 그리 시간이 많은지…. 필자는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지 몰라도 기자 생활 내내 시간에 쫓기며 살았다. 매일 평균 3편의 기사를 쓰고, 100통 이상의 전화를 받고, 50통 이상의 메일을 받고, 또 평균 5개의 부탁을 처리하고, 게다가 회의는 끊이지 않고…. 1995년 강원도 지방선거와 삼풍백화점 붕괴 취재 때에는 첫 딸이 태어났어도 근무지 이탈 금지 명령 때문에 한 달 반 만에 얼굴을 봤다. 기자가 등장하는 드라마를 보면 민망한 장면도 수도 없이 나온다. 향응과 뇌물에 팔려 주인공을 곤경에 처하게 만드는 장면들, 특종을 위해 인륜을 저버리는 순간들…. 그렇다고 신문사의 누구 하나 그런 드라마나 영화에 대한 ‘방영금지가처분신청’을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데다, 가처분신청을 내면 일어날 일이 뻔하기 때문이다. 비난과 조소(嘲笑)만이 돌아올 것이다. 그것은 진실 여부와 다른 세계에 있는 상식이다. 드라마를 보고, 혹시 내 판단이 잘못 됐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드라마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우려한 대로 직업이나 가족관계가 드러나 보이는 소수만이 의사회의 주장과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었고 나머지는 반대 의견이었다. 의사회의 가처분 신청이 드라마에 대한 간접 홍보만 해주고, 의사에 대한 일반인의 평판만 더 나빠졌다. 필자는 그 드라마가 가족이 함께 있는 황금시간대에 방영하기 부적합하다고 생각하며 불륜 드라마의 파급 효과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의사단체가 나선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 한 달 전 대한의사협회가 KBS 추적60분의 ‘백혈병 고액진료의 비밀’에 대해 방송금지가처분신청을 했다가 기각을 당하고 여론의 비판을 받은 것과 큰 틀에서는 상황이 다르지 않다. 필자는 성모병원이 비난만 받아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의사협회의 방법 역시 동의할 수 없다. 실효성이 없는 가처분신청으로 여론의 악화라는, 설상가상(雪上加霜)의 결과만 낳았지 않았는가. 왜 이런 일이 연거푸 벌어지는 것일까. 많은 의사들이 여기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지만, 필자는 이런 일이 의사사회의 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믿는다. 의사를 대표하는 단체가 네티즌이나 일반인이 화를 내는 이유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면, 일반인의 정서를 읽지 못한다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의사사회의 위기가 아닐까. 의사단체의 수장(首長)과 집행부에서는 답답하고 억울할 것이다. 위기의 의사가 매도당하고 있는데,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도 없고, 무엇인가 행동하면 오히려 더 큰 욕을 먹게 되고…. 이번에도 의사회에서는 일부 네티즌이 의사의 본심을 모르고 특권주의로 몰아간다고 아쉬워했다. 하지만 이런 틀조차 어디에서 본 듯 하지 않은가? 대한민국 국민들, 특히 의사들이 유독 싫어하는 정치인 집단에서 늘 되풀이하는 얘기가 아닌가. “내가 옳은 일을 하는데, 언론과 국민이 본심을 몰라준다.”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더욱 큰 비난을 받게 되고, 문제를 법적으로 해결하려 한다. 이러니 일각에서는 참여정부의 대척점에 있는 의사들이 오히려 참여정부 사람들과 닮았고 ‘노(盧)스럽다’는 얘기까지 들리는 것이다. 의사의 권익을 위해서 불철주야 자신을 버리고 일하는 의사단체의 여러분들께는 대단히 죄송한 얘기지만, 이것이 의사단체의 현실이다. 왜 그럴까. 참여정부의 정책 책임자들처럼 의사들 역시 세상의 변화와 요구를 귀에 담는 노력보다는 의사끼리의 담론에 더 신경을 쓰는 것은 아닐까. 서로 성숙하게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둘이서 한 곳을 보고 나아가야 하는데, 많은 이가 둘이서 서로를 보는 것이 사랑인줄 착각을 한다. 의사들은 서로 서로만 보고 있지는 않은가. 현재 한국 의사단체는 외부의 부당한 공격과 갈등의 결과로서 건조하고 지쳐 있다. 불경기의 조급한 CEO 같다는 느낌마저 든다. 이때에는 오히려 넓게 멀리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것이 전략적 마인드다. 어느 집단이건 자신이 위기에 처해 있으면, 자신이 원하지 않는 소리를 배척하려는 유혹에 휩싸인다. 위기가 위기를 부르는 악순환에 빠지기 쉬운 것은 어느 집단에서도 마찬가지이고, 의사단체도 그 함정에 빠진 것은 아닐까. 필자와 친한 한 변호사는 정부나 환자단체에서는 의사의 앞잡이라고 비난받지만 진작 의사들은 그 사람 얘기만 나오면 ‘Anti Doctor’라고 매도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군들이 하나 둘 씩 의료계를 떠나고 주위에서 아무도 의사들에게 건전한 비판을 하지 않는다. 이러다보니 의사단체에서는 외형적으로 의사의 권익을 위하지만 실제로는 의사의 발목을 잡는 공론이나 정책만이 힘을 얻는다. 새해에는 이 위기가 계기가 돼 새로운 의사단체의 위상을 만드는 해가 되기를 기원하다. 필자는 의사단체가 폐쇄와 배척에서 공개와 포용으로 전략을 업그레이드하기를 빈다. 당장은 의사들끼리의 공간에서 서로 똘똘 뭉쳐 서로 좋아하는 얘기를 하면 마음은 편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폐쇄적인 마인드야말로 위기를 재촉하는 도화선이다. 의사단체의 수장은 의사 중에서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온갖 의사들에게 고언(苦言)을 청해야 한다. 여기에다 의료소비자의 심리분석, 윤리적 이미지 제고 등 다양한 전략 전술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한다. 전문가와 일반인들의 이해를 구하기 위한 세밀한 전술을 개발하고 실행하는 노력도 해야 한다. 지금도 이런 시도도 있지만 여기에는 전략전술의 정치함이 부족하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의료계 내부에서는 삼성서울병원 이종철 원장, 세브란스병원 박창일 원장, 순천향대 부천병원 신원한 원장, 서울아산병원 김인구 교수, 연세대 의대 손명세 교수 등 다른 영역의 전문가에게 끊임없이 자문을 구하는 수많은 의사들이 있다. 이들의 경험이 따로따로 놀아서는 안 된다. 의사단체에서는 이들의 노력을 전략적으로 조율하는 노력에 좀더 힘써야 한다. 의사 사회 밖의 수많은 전문가들에게도 겸손하게 자문을 청해야 한다. 거기에는 재계의 전문가 뿐 아니라 변화를 주도하는 IT업계의 천재들, 미래학자들, 인문사회학자들 등 다양한 영역이 포함돼야 한다. 의사들은 의료정책과 관련한 회의에서 늘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상태에 처해 있다고 볼멘소리를 하지만, 과연 우군을 확보하기 위해 무슨 노력을 기울였는지 돌아봐야 한다. 이런 노력이 쌓이면 의사가 부당한 공격을 받을 때에는 의사의 실정을 잘 아는 우군들이 목소리를 낸다. 그 우군들은 전문가가 될 수도 있지만 환자 그룹이 될 수도 있다. 의사단체는 지금의 이익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가 아니라, 21세기의 흐름에 따라 바람직한 의료인상을 만드는데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눈앞에 다가온 웹2.0의 시대는 공유와 참여의 시대다. 어떤 집단이라도 독점적인 지위와 권위를 보장받기 힘들다. 이런 시대에 어떤 방식으로 의사가 존경받는 직업으로 생존할지, 의사단체에서 청사진을 그리고 거기에 따른 전략계획을 실행한다면 의사사회 안팎에서 모두 박수를 받지 않을까. 필자는 현재 의사단체 집행부가 역량은 충분하다고 믿는다. 문제는 사고의 전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