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명불허전’, 탄생의 비밀

[‘명불허전’의 기획자]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tvN 드라마 ‘명불허전’이 인기다. 전작(‘비밀의 숲’)이 워낙에 명품 드라마로 화제가 되었던 터라서 작가(김은희), 연출(홍종찬), 배우(김남길, 김아중) 모두 부담이 컸을 것이다. 그런데 16부작 가운데 10부가 방송된 지금 시청률 6.5%를 찍었다. 공중파 시청률에 견주면 20%에 가까운 시청률로 봐도 무방하다는 게 방송국 관계자의 전언이다.

조선 중기에서 400년을 타임 슬립해 현대에 떨어진 한의사 허임과 흉부외과 연경의 좌충우돌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가 왜 이렇게 인기일까? 정작 현실의 한의사와 의사는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데. 그래서 궁금했다. 도대체 이런 드라마가 어떻게 기획되었을까? 수소문을 해보니 이 드라마 뒤에는 명의로 소문 난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전 대구한의대학교 교수)이 있었다.

비염, 이명 진료를 전문으로 하는 이상곤 원장은 한의학계 유명 인사다. 예를 들어, 한 방송사에서 한의학 명의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한의대 여러 교수를 상대로 명의를 꼽아달라고 설문 조사를 했다. 최종적으로 10명이 꼽혔는데 대학 교수가 아닌 개원의는 이 원장이 유일했다.

이상곤 원장은 ‘낮은 한의학'(사이언스북스 펴냄), ‘왕의 한의학'(사이언스북스 펴냄) 책도 두 권 펴냈다. 한의학의 문턱이 지금보다 훨씬 낮아져야 한다는 그래서 돈 없고 힘없는 시민의 건강에 이바지할 길을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낮은 한의학’은 한의대 학생의 필독서로도 읽힌다.

그런데 이런 이상곤 원장이 드라마 ‘명불허전’의 배후에 있다고? 여러 궁금증을 안고서 13일 저녁 강남의 한 식당에서 진료를 끝내고 달려온 이 원장을 만났다.

– 드라마 ‘명불허전’은 어떻게 탄생한 드라마입니까?

“얘기하자면 깁니다. 조선 중기의 명의 허임(1570~1647?)과의 인연부터 시작해야겠죠. 한참 전의 일입니다. 미국 코넬 대학교 의과 대학 교수로 일하던 재미 교포 한 분이 진료를 위해서 저를 일부러 찾아오셨어요. 미국 유명 의과 대학 의사가 반도의 한의사를 찾아와서 진료를 의뢰한 것부터가 보기 드문 일이지요.

저는 환자를 볼 때, 대화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그 분과도 여러 대화를 나눴지요. 그 분은 미국의 의학계에서는 침에 대한 관심이 아주 높다는 소식을 전했어요. 그러면서 그런 침에 대한 관심 때문에 중의학이 각광을 받고 있다고 걱정하더군요. 한의학의 침술이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있다는 데 아쉬움도 표했고요.

이미 여러 해를 침술로 환자를 진료해 왔던 터라서 얼굴이 뜨거웠습니다. 그래서 한의학의 고유의 침술이라고 내세울 만한 게 무엇이 있을지 고민했지요. 그러다 허임과 그가 자신의 진료 경험을 기록한 ‘침구경험방’을 자세히 살펴보게 되었어요. 그 과정에서 그간 쌓아온 저의 침술도 좀 더 정진할 수 있었고요.”

– 허임의 침법으로 알려진 ‘보사법’이 현대에 다시 부활한 거군요.

“허임의 보사법과 저의 침법이 똑같은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크게 다르지는 않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400년을 넘어서 두 한의사가 교감을 했다고나 할까요? 아무튼 그래서 허임은 마음속의 스승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좀 더 욕심이 들더군요. 이런 허임을 좀 더 세상 사람에게 알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국내는 물론이고 국외까지….”

– 그래서 허임을 소재로 한 드라마를 기획하게 된 겁니까?

“맞습니다. 그런데 한의사가 스토리텔링의 전문가는 아니지 않습니까? 마침 오랫동안 진료하는 과정에서 여러 소중한 인연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 가운데는 출판사 대표, 출판사 편집자, 방송국 PD, 드라마 제작자, 작가 등 스토리텔링의 전문가도 있었고요. 그들에게 자문을 구했습니다. 그랬더니 먼저 기본이 되는 스토리를 써보길 권하더라고요.

전문 작가와의 공동 작업으로 허임의 일대기를 소설로 재구성한 ‘조선 제일침 허임'(황금가지 펴냄)을 펴냈습니다. 그 소설을 가지고 방송국 PD, 드라마 제작자 여럿을 찾아다녔어요. 결과는 어땠을까요? 보기 좋게 퇴짜를 맞았죠. (웃음) ‘소설 동의보감’과 드라마 ‘허준’ 세대의 한계가 명백했죠.”

– 결과적으로는 전혀 다른 색깔의 드라마 ‘명불허전’이 탄생했습니다.

“맞아요. 본팩토리 오광희 대표가 우여곡절 끝에 관심을 가져줬어요. 시사 다큐멘터리 작가로 시작해서 드라마 작가로 전업한 김은희 작가에게 제안해 1, 2회 대본을 만들었는데, 그게 신의 한 수였죠. 드라마 성공의 가능성을 본 오 대표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명불허전’이 등장했습니다.

운 좋게도 독특한 색깔의 연기자 김남길, 김아중 씨가 흔쾌히 참여를 허락해 줬고요. 자랑 하나 할까요? (웃음) 김남길 씨는 한의원을 여러 차례 방문해서 제가 침을 놓고 환자를 진료하는 장면도 오랫동안 지켜보고, 또 침놓는 연기에 도움이 되도록 침도 잡아보고 그랬습니다. 그런 열정이 드라마 속에 고스란히 나오더군요.”

왜 중국 언론은 ‘명불허전’을 경계할까?

드라마 ‘명불허전’은 명의 소리를 듣지만 돈만 밝히는 조선의 젊은 한의사 허임이 의료의 상업화가 극에 달한 대한민국 현재로 타임 슬립해서 겪는 우여곡절을 그린 드라마다. 한의사 할아버지의 고집 때문에 어머니를 제때 진료하지 못해 잃었다고 여기는 현대 의학 맹신자 흉부외과 의사 연경과의 갈등도 드라마의 중요한 축이다.

젊은 의사 허임과 연경은 조선과 현재를 왔다 갔다 하면서 환자를 진료하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깨달으며, 의사로서 또 한 인간으로 성장한다. 둘의 로맨스는 덤이다.

– ‘명불허전’은 현대 의학(양방)과 전통 의학(한방)이 둘로 나뉘어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현재 상황에 대한 비판으로도 읽힙니다.

“정확히 봤어요. 저는 평생 한의사로 일해 왔지만, 한의학의 한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현대 의학의 성취를 당연히 인정해야죠. 드라마를 보면, 아스피린을 복용한 환자에게 사혈을 하는 바람에 피가 멈추지 않아서 허임이 당황하는 일화가 있습니다. 아스피린은 혈소판의 응집을 억제해서 지혈 작용을 방해하는데 허임이 그걸 몰랐던 거지요.

제가 김은희 작가에게 제안한 일화였어요. 이 밖에도 심장 수술, 심폐 소생술 또 여러 현대 의학의 성취가 드라마에 생생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당연하지요. 인류 문명의 중요한 성취인 현대 의학을 배우고 또 잘 써야 하죠? 하지만 한편으로는 한의학도 그에 못지않은 인류의 소중한 유산입니다.

우리나라만 놓고 보더라도 현대 의학이 도입되기 전까지 수천 년간 한의학은 생명을 지키는 유일한 동아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여러 성취도 있었습니다. 다국적 제약 회사들이 괜히 ‘동의보감’ 같은 전통 의서를 샅샅이 훑는 게 아니죠. 그 안에서 새로운 치료법의 아이디어를 구하려는 것입니다.

허임 또 저의 침술도 그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30년 가까이 침술로 수많은 환자를 진료하면서 스스로도 경이로울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침 치료를 통해서 정말로 환자가 좋아지니까요. 저는 현대 의학과 침술이 자기 강점을 가진 부분에서 적절히 조화를 이룰 때, 훨씬 더 환자와 시민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명불허전’이 나오고 나서 중국에서 제일 먼저 반응이 왔다고요?

“중국은 정말 큰 나라입니다. 곧바로 중국의 매체에서 침술은 ‘중의학’의 것인데, 한국에서 침술을 ‘한의학’의 것으로 하려고 이런 드라마를 만들었다는 볼멘소리가 나왔어요. 제가 ‘명불허전’ 기획에 도움을 준 의도를 한국이 아니라 오히려 중국에서 먼저 포착한 것입니다. 맞습니다. 저는 침술은 중국보다 한국이 훨씬 더 우수하다고 생각합니다.”

– 그렇게 확신하는 근거가 있나요?

“침술뿐만이 아닙니다. 한의학 전체가 한, 중, 일 3국을 통틀어서 우리나라가 제일 우수합니다. 저는 한국의 양방, 한방으로 이원화된 의료 체계가 바로 이런 결과를 낳았다고 생각합니다. 한의학 입장에서는 양방 즉 현대 의학과 경쟁해서 살아남아야 했으니 훨씬 더 많은 혁신과 노력이 있었던 거지요. 그 결과 우리나라 한의학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합니다.”

– 그런데 현대 의학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도 한의사의 진료를 못미더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빈약한 근거에 기반을 둔 아니면 말고 식 진료라는 것입니다. 특히 한약에 대한 불신이 크죠.

“그런 물 흐리는 미꾸라지는 어디나 있는 법이지요. 양방 의사 가운데는 사기꾼이 없습니까? (웃음) 다만 그간 한의사 일부가 고가의 한약 처방 위주의 진료를 했던 경향이 있기는 했어요. 한약이 ‘보약’과 같은 말이 된 것도 이 때문이죠. 지금 이 시점에 허임을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런 한의학계 관행에 대한 반성의 의미도 있습니다.

허임이 한창 진료를 할 때가 어떤 시기입니까? 임진왜란, 정유재란, 병자호란으로 이어지는 혼란기입니다. 전쟁 통에 무슨 약을 구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러니 왕을 비롯한 고관대작도 어쩔 수 없이 허임의 침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지요. 만약 전쟁 통이 아니었다면 허임은 빛을 보지 못했을지도 몰라요.

사실 오늘날의 한약은 당시로서는 보통 사람은 감히 접하기 힘든 귀한 약재였습니다. ‘명불허전’ 속에서도 어린 허임이 병을 앓는 어머니를 위해서 ‘우황청심환’을 힘겹게 얻는 장면이 나오죠. 침, 뜸은 바로 이런 보통 사람에게 최상의 치료 옵션이었습니다. 한의사의 침술과 침만 있으면 되니까요.”

– 침술의 대가로서 ‘낮은 한의학’을 펴낸 데는 다 이유가 있었군요.

“그렇습니다. 한약 위주의 한의학계에 일침을 놓고 싶었던 것이죠. 그리고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침은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한국의 전통 의학을 알릴 수 있는 충분한 잠재력이 있습니다. 당장 한 번 침을 맞아서 효과를 본 환자들은 다른 증상이 올 때도 또 찾거든요. 한국 침이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환자를 상대할 날이 오리라 생각합니다.”

– 과학적 증거는 어떻습니까?

“30년간 임상에 주력해 온 입장에서 함부로 왈가왈부할 일은 아닙니다. 다만 침의 효능을 현대 과학의 엄밀한 방법론으로 증명하려는 시도가 지금도 있어 왔고, 또 앞으로 더 많아지리라 생각합니다. 침술이 좀 더 많은 진료에 활용되고, 더 나아가 그 효과가 나타나면 당연한 일이지요.”

낮은 한의학 vs. 왕의 한의학

이상곤 원장은 ‘낮은 한의학’ 이후에 ‘왕의 한의학’을 펴냈다. 실록을 근거로 조선 왕이 앓았던 질환을 추적하고, 그 치료 과정의 타당성을 이 원장의 시각에서 점검해본 책이다. 그는 ‘왕의 한의학’을 통해서 왜 조선 왕처럼 건강 관리를 해서는 안 되는지 알려주고 싶었단다. 왜냐하면, 지금의 보통 사람의 삶이 조선의 왕과 대동소이하기 때문이다.

시간차를 두고서 차례로 나온 ‘낮은 한의학’과 ‘왕의 한의학’은 지금 대한민국 의료의 두 가지 풍경을 상징하는 듯도 하다. ‘명불허전’도 가진 자의 의료와 없는 자의 의료를 대비한다.

– ‘명불허전’의 중요한 포인트 가운데 하나가 허임이 한방 병원 원장의 사주를 받아 각종 고위층, 부유층 인사를 진료하는 모습입니다.

“의료인으로서 환자의 정보를 지킬 의무가 있으니 말하기가 조심스럽습니다. 다만 저의 진료 경험이 상당히 녹아들어간 것임은 틀림없습니다. 드라마 기획 단계부터 김은희 작가와 아이디어 회의를 여러 차례 했고, 또 드라마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틈틈이 자문을 해주고 있으니까요. 물론 저는 그렇게 병원 밖으로 불려 다니며 진료를 한 적은 없습니다. (웃음)

이미 고인이 되셨으니 이 얘기는 하죠. 드라마에 말문이 열리지 않아서 허임을 찾은 국회의원이 나오죠? 국회의원은 아니었지만, 그에 준하는 고위급 인사가 실제로 말문이 막혀서 서울의 내로라하는 대학 병원의 정형외과, 치과 병원 등을 전전하다 저한테까지 온 적이 있습니다. 드라마처럼 침을 놓았고, 곧바로 말문이 열렸지요. 지금은 다른 지병으로 세상을 뜨셨지만.”

– 기왕 얘기가 나왔으니 묻겠습니다. 갑산한의원은 일반 시민도 많이 오지만 유명인사 또 이른바 권력을 가진 분도 많이 오죠?

“그것도 비밀입니다. (웃음) 다만 국회의원이든, 검사장이든, 재벌가든 막상 침을 맞으러 앞에 누우면 똑같은 환자입니다. 저한테는 다를 게 하나도 없어요. 그 과정에서 권력이나 재산의 무상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권력, 재산 때문에 그 위세를 떨던 분도 막상 아프면 고통을 호소하는 보통 사람일 뿐이니까요.”

– ‘명불허전’은 말 그대로 ‘낮은 한의학’을 지향하는 것 같습니다. 노숙인을 무료 진료하는 한의사가 등장하기도 하고요.

“김은희 작가의 철학이 녹아든 거겠지요. 저도 한의사로서 또 시청자로서 적극 공감합니다. 참, 노숙인을 무료 진료하는 내용은 한의대를 다니는 아들 녀석의 아이디어입니다. 한 언론사에서 인턴 기자 생활을 할 때, 일주일간 노숙인만 취재했다고 하더군요. 그 아이디어를 김은희 작가가 드라마 속에 소화한 것이죠.”

– 드라마 속에서 보면 의사가 처음 되었을 때의 초심을 상기하라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허임이 각성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어떻습니까? 의사가 될 때의 초심은 뭐였나요?

“갑자기 물어보니 당황스럽군요. 의사를 하면서 항상 머릿속에 떠나지 않은 장면이 있기는 합니다. 여섯 살 때 어머니께서 큰 병을 앓으신 적이 있어요. 그 시절 시골에 제대로 된 병원이 있었겠습니까? 거동 못하는 어머니를 아버지께서 리어카에 싣고서 병원이 있는 곳으로 가는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저는 학교 다닐 때 문과 체질이었어요. 책 읽고, 글쓰기 좋아하고, 수학 싫어하고. (웃음) 그런데 어느 순간 한의대를 지망하고, 한의사가 되고자 공부를 하고 있더라고요. 은연중에 어머니의 바로 그 모습이 저를 의사가 되고자 이끌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까지 크게 부끄럽지 않은 의사였다고 생각하고요.”

– 이제 인터뷰를 마무리할 때입니다. 다음 계획은 뭡니까?

“은퇴하기 전에 ‘이명’에 대한 책을 한 권 정리하고 싶습니다. ‘비염’에 대한 책은 이미 한 권 낸 적이 있으니, 이명도 한 번 체계를 잡아서 정리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힘이 닿을 때까지 환자를 봐야죠. 의사로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새삼스럽습니다만, 지금도 환자를 앞에 두고 침을 놓을 때가 제일 긴장되고 행복합니다.’

[사진=손문상/사이언스북스]

강양구 기자 tyio@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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