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내성지 둘레산 걷기

굴암리~애덕고개

순교자 발자취따라 산나리꽃 눈부셔라

《방 안에 있다가

숲으로 나갔을 때 듣는

새소리와 날개소리는 얼마나 좋으냐!

저것들과 한 공기를 마시니

속속들이 한 몸이요

저것들과 한 터에서 움직이니

그 파동 서로 만나

만물의 물결,

무한 바깥을 이루니…

<정현종의 ‘무한 바깥’ 전문>》

여름 숲은 성성하다. 울창하다. 나뭇가지들이 제멋대로 뻗쳐 있다. 하늘을 가리고,

앞을 막는다. 풀들도 어지럽게 엉켜 길을 지운다. 생풀냄새가 풋풋하다. 참 나뭇잎

냄새는 ‘쎄에∼’ 코를 찌른다. 낙엽 썩는 냄새가 비릿하다. 졸참나무 떡갈나무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갈참나무 도토리가 아이들 새끼손가락만 하다.

여름 숲은 축축하다. 끈적끈적하고 눅눅하다. 물기를 머금은 풀과 나무는 조금씩

습기를 토해낸다. 안쪽은 어둠컴컴하다. 거미줄이 이슬을 머금은 채 빛난다. 거미는

낚시꾼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웅크리고 있다. 하루살이가 자꾸만 눈 속을 파고든다.

산모기가 바지를 뚫고 침을 박는다. “찌르르∼ 찌르르∼” 풀벌레들이 울음바다를

이룬다.

“매앰∼매에앰∼” 숲 속의 매미소리는 귀에 따갑지 않다. 소리가 작고, 리듬도

느긋하다. 왜 도시매미들은 악을 바락바락 쓸까? 산새도 나지막하게 소곤거린다.

도시까치들처럼 호들갑 떨지 않는다. 울음소리도 빠르지 않다.

농부의 걸음걸이는 느릿하고 우아하다. 삽이나 괭이 하나들고 구름에 달 가듯이

간다. 사방 산천 두루 보며 리드미컬하게 걷는다. 스님들은 곧게 걷는다. 산길을

휘적휘적 미끄러지듯 간다. 도시인들은 종종걸음이다. 두리번두리번 어디론가 급히

사라졌다가, 금세 나타나곤 한다. 몸이 거의 좌우로 건들거린다.

매미 울음소리는 수컷들의 구애 소리이다. 암컷에게 “사랑한다”고 외치는 소리이다.

그 세레나데가 도시에서는 소음 때문에 잘 전달되지 않는다. 목이 터지도록 고래고래

고함을 지를 수밖에 없다. 도시 수컷매미들은 목에서 피를 토한다. 판소리 소리꾼들이

따로 없다.

경기 용인에서 출발해 안성 미리내까지 이어지는 둘레산길은 산나리꽃길이다.

참나리꽃은 영락없는 점박이나비다. 주황색 바탕에 표범 같은 주근깨점이 섹시하다.

그래서 서양인들도 타이거릴리(tiger lily)라고 했나보다. 훌쩍 큰 키에 하늘하늘

웃는다. 하얀 큰수염까치꽃과 어우러져 피어난다. 그 위에서 고추잠자리가 빙빙 맴돈다.

하늘 향해 수줍게 웃는 하늘나리, 고개 푹 숙이고 뭔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땅나리,

앙증맞은 애기나리….

걸으면서 자연과 동화, 심신의 피로도 회복

코스는 굴암리∼<1.54km>∼삼봉산∼<3.4km>∼시궁산∼<2.7km>∼미리내고개(애덕고개)∼<500m>∼미리내성지

혹은 장촌∼<1.5km>∼시궁산∼<2.7km>∼미리내고개(애덕고개)∼<500m>∼미리내성지를

택한다. 어느 쪽이나 초반 오르막이 고비다. 일단 산잔등에 오르면 산책코스다. 살갗에

닿는 산들바람과 적당한 서늘함이 감미롭다. 능선에 오르면 용인과 안성 곳곳 맨들맨들한

골프장이 눈에 띈다. 산 아래 사방이 온통 매끈한 골프장이다. 여기저기 연못도 많다.

우묵배미 연못은 ‘대지의 슬픈 눈망울’이다. 낮엔 푸른 하늘과 구름을 담고, 밤엔

은 싸라기별이 돋는다.

미리내는 순우리말로 은하수를 뜻한다. 천주교미리내성지는 김대건 신부(1821∼1846)의

묘가 있는 곳이다. 그가 어릴 적 살던 곳이기도 하다. 그는 일곱 살까지 충남 당진군

우강면 솔뫼마을에서 살다가, 온 가족이 이곳 미리내 골짜기로 피신 왔다. 그의 가족은

4대가 대대로 순교를 한 천주교 가족. 증조부 김진후(1738∼1814), 종조부 김한현(?∼1816),

아버지 김제준(1796∼1839)이 잇따라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당시 미리내는 경기·충청지방의 천주교인들이 관의 눈을 피해 모여 살던

신앙공동체마을이었다. 대부분 옹기나, 숯을 구워 팔며 살았다. 밤마다 골짜기는

신도들의 집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으로, 마치 반딧불이 반짝거리는 것 같았다. 시냇물에

부서지는 눈부신 달빛과 사람둥지에서 새어나오는 은은한 불빛. 그것은 하늘의 미리내와

다를 게 하나도 없었다. 신도들은 하나같이 하늘에서 떨어진 은 싸라기별이었다.

먼저 간 순교자들은 하늘의 미리내에 자리 잡고 있는 금 싸리기 별이었다.

미리내고개(애덕고개)는 김대건 신부가 포교와 시목을 하며 오가던 길이다. 그는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목이 베인 뒤 모래밭에 묻혔다. 그리고 44일 뒤인 10월

30일 이 고개를 통해 시신이 옮겨졌다. 그의 아버지 김제준은 1839년 마흔셋에 서울

서소문 밖에서 참수를 당했다.

김대건 신부는 죽기 전 신도들에게 “영원한 생명이 내게 시작되려고 한다”며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에게만은 어쩔 수 없는 스물다섯 아들이었다.

당시 천주교조선교구장 페레올 주교에게 “주교님, 어머니를 부탁드립니다”라며

마지막 유언을 남겼다.

‘간장처럼 짠 새벽을 끓여/게장을 만드는 어머니/나는 그 어머니의 단지를 쉽사리

열어보지 못한다//나는 간장처럼 캄캄한 아랫목에서/어린 게처럼 뒤척거리고//게들이

모두 잠수하는 정오/대청마루에 어머니는 왜 옆으로만,/주무시나 방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아무것도 모르는 햇볕에/등은 딱딱하게 말라가고/뼛속이 비어가는 시간에’

<지영환 ‘간장게장’ 전문>

용인, 역사인문학 생태문화도시로 거듭나

용인시 경안천을 걷는다. 용인고속버스터미널에서 와우정사(대한불교 열반종 본사)에

이르는 4km 남짓한 길. 이 지역은 용인의 허파꽈리 같은 곳이다. 골프장과 아파트가

비켜간 마지막 남은 청정지역이라 할 수 있다. 둔치마다 꽃들이 반긴다. 너부데데한

해바라기꽃, 생기발랄한 울긋불긋 무궁화꽃, 자줏빛 엉겅퀴꽃, 계란프라이 같은 개망초꽃,

낮은 땅에서 벙글거리는 하얀 토끼풀꽃….

노란 능소화가 담장을 타고 넌출 채 올라가, 하늘을 향해 불꽃처럼 널름거린다.

검푸른 벼들이 논두렁 터질 듯 자란다. 지난 가을 허수아비가 논 가운데에 멋쩍은

듯 서있다. 연녹색 코스모스에 드문드문 꽃이 피었다. 시냇물 소리가 제법 기운차다.

참새들이 쪼르르 길바닥에 내려와 먹이를 쫀다. 어깻죽지에 기름이 자르르하다.

경안천은 서울 청계천처럼 다시 살아난 시냇물이다. 용인시 이동면 어비리저수지가

첫물이다. 한강 상류인 남한강으로 흘러들어간다. 산책길, 자전거도로가 잘 돼 있다.

둔치 곳곳에 쉼터와 자연학습원 등도 보기 좋다. 용인시민들은 아침저녁으로 이 길을

걸으며 다리 힘줄을 키운다.

박수자 씨(53·한국예총용인지부회장)는 “용인은 우리 문화의 보물창고이며

한국 인문학의 화수분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그것들을 하나로 꿰지 못하고 따로따로

놀고 있다는 데 있다. 행정도 서울만 바라보며 1회성 이벤트에만 치우치고 있다.

이제 용인은 명당자리, 골프장, 아파트도시가 아니라 역사인문학 생태문화도시로

거듭나야 한다. ‘산자들의 도시’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툭하면 길을 만든다. 산허리를 자르고, 강 위에 다리를 놓으며 길을

닦는다. 구부러진 길은 직선으로 곧게 펴고, 굽이굽이 산허리를 돌아가는 길은 터널을

뚫어 휙 지나간다.

도대체 빨리빨리 어디로들 가고 있는가. 그 어딘가에 ‘해뜨는 집’이라도 있는

것일까. 시간은 거품이다. 느릿느릿 구불구불 가는 사람이나, 번개처럼 앞서가는

사람이나, 그저 흘러갈 뿐이다.

‘쇠똥구리가 쇠똥을 굴리고 가다가 잠시 멈춘다. 지금 내가 거꾸로 서서 뒷발로

굴리고 가는 저것은 풀밭이다. 이슬에 젖은 새벽 풀밭 위로 흐린 새 몇 마리 떠갔던가.

그 풀밭 지나 종일 가면 저물녘 노을에 물든 이포나루에 닿을까. 거기 묶인 배 풀어

타고 밤새도록 흐르면 이 짐 벗은 채, 해 뜨는 바다에 닿을 수 있을까.’

<이건청의‘쇠똥구리생각’전문>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트래킹 정보|

◇교통=굴암리는 용인시내를 지나 신원낚시터 방향 죄회전→저수지→오른쪽 팜파레스토랑

지나자마자 우회전→버스정류장→빨간 우체통→등산입구. 용인에서 시내버스로 굴암리나

장촌까지 갈수도 있다. 장촌은 곧바로 시궁산으로 오르는 등산로의 출발점이다. 장촌∼시궁산∼애덕고개∼미리내성지까지는

3시간쯤 잡으면 된다. 굴암리∼삼봉산∼시궁산∼애덕고개∼미리내성지∼장촌 코스는

5∼6시간 소요.

◇먹을거리=북어돌판구이전문 마당쇠가든(031-335-4370), 용인 처인구 이동면

송전저수지 부근.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으며, 양념장에 버무린 북어구이가 쫄깃하고

새콤하다. 밑반찬이나 된장도 깊은 맛이 있다. 1인분 1만 원.

▼정몽주… 조광조… 명사들 무덤 수두룩▼

용인은 명당이다. 신라 말의 고승 도선국사에 따르면 ‘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다. 그만큼 명사들의 무덤이 많다. 오죽하면 ‘살아서는 진천이요, 죽어서는

용인(생거진천사거용인·生居鎭川死居龍仁)’이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고려말 충신 정몽주(1337∼1392), 조선 중종 때 개혁가이자 성리학자 조광조(1482∼1519),혁명가

허균(1569∼1618)의 가족(허균은 역모죄로 능지처참을 당했기 때문에 시신이 없음),

병자호란 때 삼학사의 한 사람으로 청나라에 끌려가 죽은 오달제(1609∼1637), 구한말

을사늑약에 항거해 자결한 민영환 선생(1861∼1905)의 묘가 곳곳에 흩어져있다.

대마도를 정벌한 이종무 장군(1360∼1425),조선 초기 문신인 연안이씨 이석형(1415∼1477),

임진왜란 때 활약한 이일 장군(1538∼1601)과 심대 장군(1546∼1592), 조선중기 문신

오윤겸(1559∼1636), 반계수록을 지은 유형원(1622∼1673), 숙종 때 문신 남구만(1629∼1711),

조선영조 때 문신 홍계희(1703∼1771), 정조 때 명재상 채제공(1720∼1799)등도 묻혀

있다.

요즘 용인은 어수선하다. 곳곳이 파헤쳐지고 아파트가 우뚝우뚝 솟고 있다. 조광조의

묘와 그를 모신 심곡서원은 아파트 숲 가운데에 있다. 땅은 명당이지만 숨이 턱턱

막힌다.

용인엔 이색박물관도 많다. 세계 유일의 한국등잔박물관(031-334-0797)과 장승

벅수 문인석 무인석 등 옛돌 1만여 점이 전시돼 있는 세중옛돌박물관(031-321-7001)등이

가볼 만하다. 8000여 종의 멸종위기와 희귀식물을 관리하는 한택식물원(031-333-3558)도

지나치기에는 아까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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