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볼안

지하철에서 기분 좋게 일어나서 장애인에게 자리를 양보하거나 좋은 책에 빠져 있는 젊은이를 보면 다가가서 말을 건네고 싶습니다. 인재난을 겪고

있는 저희 회사에 채용하고 싶어집니다. 용기가 없어 말을 건네지는 못하지만, 참 아름다워 보입니다.

최근 노총각 후배와 술자리에서

얘기를 나누다, 그 후배가 자꾸 옆자리의 아가씨에게 눈길을 돌리는 것을 보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눈높이가 이상해서 아직 결혼을 못하는

것”이라고. 그 후배는 “여자는 무조건 예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모델 같은 아가씨를 쫓아다니다 나이 40에 이르렀습니다.

며칠

전 어느 성형외과 의사를 만났더니 한국인의 ‘얼굴 수렴현상’에 대해 얘기를 하더군요. 성형수술이 ‘대입 필수과목’이 되면서 여성들의 얼굴이

비슷비슷해진다고. 집에 TV가 없는 저로서는 오랜만에 TV를 보면 누가 누구인지 참 헷갈립니다. 네티즌들은 마음이 예쁜 여성의 기사에 ‘얼굴이

못났으니 나다니지 말라’는 댓글을 달기 일쑤이지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사람의 본성입니다. 특히 12~13세 때에는 뇌

후두엽의 시각정보처리 영역이 발달하면서 외모에 신경을 쓰고 ‘스타 지향적’이 됩니다. 그러나 정신의학에서는 그것이 도를 넘으면 일종의 병으로

칩니다. 음식 맛에 자신이 없는 식당 주인이 간판에 지나치게 집착하듯, 무의식에 열등감이 많은 사람이 외형에 집착한다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인격이 성숙하지 않은 사람이 상대방의 인격이 서린 얼굴에는 눈을 감고 외모의 단순미에만 집중합니다. 한국인은 얼굴뿐 아니라 키도 유난히

집착하지요. 가수 프린스와 폴 사이먼이 1m57㎝, 에디트 피아프는 1m42㎝, 돌리 파튼은 1m52㎝라는 사실 아시나요?

예부터

‘겉볼안’이라고, 겉을 통해 안을 본다고 했습니다. 사람을 볼 때 신언서판(身言書判)을 기준으로 삼았는데, 이때 판(判)은 얼굴에 서린 인격을

본다는 것입니다. 링컨이 나이 40이면 제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을 때, 그 얼굴입니다.

최근 영국의 스타 발굴

TV프로그램에 나온 폴 포츠, 수전 보일 등 ‘추녀추남’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저는 그들의 얼굴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영국의 BBC방송에서는 몇 년 전 ‘사람의 얼굴(Human Face)’이라는 다큐를 방영했는데 비키 루커스라는 여성이

등장했습니다. 그녀는 가족섬유형성이상증(Cherubism)이라는 유전병 때문에 유난히 큰 사각 턱에 커다란 눈이 튀어나온 기형이었습니다. 길가에

나서면 행인들의 인상을 찡그리게 만드는 얼굴이었습니다.

루커스는 TV 방영 후 성형수술을 해주겠다는 줄을 잇는 제안에 대해 “이게

내 모습이고 비슷비슷한 사람이 많은 세상에 개성 있는 얼굴 때문에 좋은 점도 많다”고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오히려 세상의 비뚤어진 시각을

바꿔야지, 왜 자신의 얼굴을 바꿔야 하느냐고 반문했습니다. 그녀는 현재 프리랜서 작가로 일하며 얼굴 기형인 어린이들을 돕고 있습니다.

‘Cherubism’의 또 다른 우리말 병명은 ‘천사얼굴증’입니다. 저는 루커스의 마음에서 천사의 얼굴을 봅니다.

지하철에서나

길거리에서나 둘러보게 됩니다. 참 아름다운 사람이 많습니다. 이들 진정한 미인이 대접을 받는 세상이야말로 ‘아름다운 세상’이겠지요?

이성주 코메디닷컴 대표

<이 칼럼은 중앙일보 5월 25일자 ‘삶의 향기’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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