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반주사 파동을 보며: 소비자는 바보?

얼마 전, 시중에 유통되던 태반주사의 40%는 효과를 입증할 수 없다고 식약청이

발표했다.(참고: 코메디닷컴 뉴스 – 시판

태반주사 40% 판매금지)

이번 일은, 그 동안 의료 소비가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방향으로 이루어져 왔으며

앞으로 또 이끌려가려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였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계산적이고, 이익과 손해에 매우 민감한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작은 물건 하나를 구입하더라도 허투루 구입하지 않는다.

얼추 비슷해 보이는 물건이라도, 디자인이나 성능, 심지어 아주 전문적인 사양까지

다양한 측면에서 따져 본 뒤 가격이 가장 저렴한 곳에서 무이자 할부로 구입한다.

때로는 사람들의 똑똑함이 너무 지나쳐서, 친구 관계에서조차 이득과 손해를 칼 같이

따지면서 만나곤 한다.

하지만, 이렇게 똑똑하고 잘 따지는 사람들이 아무런 효과가 없(거나, 효과가

있다 치더라도 그 정도의 가격 대비 성능을 보일지도 미지수인지라)는 태반주사를

그 동안 엄청나게 소비한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 동안 소비한, 무의미한 태반주사 시장 규모는 얼마나 될 것 같은가? 보도에

따르면, 이번에 허가 취소 또는 자진 철회된 품목의 2007~08년 수익은 약 260억 원이었다.

260억 원!

이 액수만큼 판매된 제품들은 생리식염수 주사로 판매된 게 아니라, 노화 방지나

갱년기 증상의 개선이라는 약리적 효과를 이유로 판매된 주사였다.

휴, 소비자들은 헛똑똑이였던 것일까?

1000원이라도 싼 제품을 찾고, 쿠폰을 모으고, 조건이 좋은 곳으로 몰리는 소비자들이

결국 무의미한 10만 원짜리 주사는 저렇게나 많이 팔아 주었으니 말이다.

"의료 소비자들의 무지함, 의사와 제약회사의 탐욕, 정부의 무능함이 함께

만들어 낸 답답한 상황이지"라고만 하기엔, 뒤끝이 개운하지 않다.

사실, 소비자들이 다- 똑똑하게, 꼼꼼히 따져 가며 소비를 하는 듯 해도 다른

모든 산업 영역에서도 엉뚱한 소비나 불필요한 지출을 하는 일은 많다. 또한 어느

산업의 사장들도 탐욕스럽기 쉽고 정부는 언제나 무능함을 보인다.

그럼, 어쩔 수 없으니까, 계속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허무하게 바라보고만 있어야

할까?

태반주사 이전부터 있었던 불필요하고, 어이없는 치료법들이 득세하게 된 배경에는

대척점에 서 있는 의료인들이 너무 경쟁력 없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현실도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의료는 이미 소비의 측면이 강하다. 감기에 걸려도 약국, 한의원, 동네의원,

(심지어) 대학병원 중에서 소비자가 골라서 갈 수 있다.

이들 소비자들의 고려 대상에서 당연히 비교가 되는 ‘교과서적인’ 또는 ‘근거

중심 의학에 충실한’ 의료 서비스 제공자들이 (즉, 고지식한 의사들이) 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의료 소비를 하려는 시점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양쪽을 비교할

것이기 때문이다.

화려하고, 그럴 듯하고, 뭔가 대단할 것처럼 포장이 잘 된 쪽과, 소박하고, 고리타분하고,

뻔할 것 같이 재미없는 쪽이 비교될 때 사람들은 어디를 더 고르게 될까?  

이런 어이없는 현실을 고치기 위해 바뀌어야 할 대상은 정말 많지만, 나는 요령

없고 고지식한 의사들이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이 사회의 의료가 바뀔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요령 없고 고지식한 의사들도, 의료가 이미 상당히 소비적이 되었다는

것을 무서운 현실로 인식하고 소신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살아남고, 더 나아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해야 한다.

그래야 이번과 같은 일이 생기는 것을 조금이라도 피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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