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독간호사 귀국 때 취업 위한 묘책은?

1975년 여름 어느 날, 남덕우 경제기획원 장관과 김효규 연세의료원장이 남대문 근처 도큐호텔에서 만나 1960년대 파독 간호사들의 귀국 뒤 취업대책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정부는 10여 년 전 독일에 1만 명이 넘는 간호사와 광부들을 파견해서 이들의 임금을 담보로 차관을 얻어 경제개발을 추진했지

건강보험, 남북경쟁 탓 졸속 추진됐다고?

정부는 제3차 경제개발5개년계획(1972~76) 실행 전 1980년도 수출목표를 50억 달러로 잡았지만 ‘10월 유신’을 강행하면서 목표를 100억 달러로 올렸다. 전후 패전국에서 급속 성장한 일본을 벤치마킹해서 산업구조를 개선하고 종합상사들을 출범시킨 데다가, 베트남 전 파병에 따른 경제성장과

1970년 콜레라 방역, 코로나 방역과 다른 점?

1960년대 정부와 의료인들이 적극 협력해 보건사업을 부지런히 전개함에 따라 농어촌을 중심으로 보건망이 조금씩 정착되면서 1970년대를 맞았다. 인구 1만 명 정도의 면 단위 보건지소에 결핵, 가족계획, 모자보건 요원을 각 1명씩 배치했다. 급성전염병 발생은 조금씩 줄었는데, 두창(천연두)은 1959년부

1960년대 산부인과 명의들 탄생 배경은?

지금은 산부인과가 의대생들이 기피하는 전공이 되었지만 1960, 70년대만 하더라도 그렇지 않았다. '내외산소(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기본과의 하나로 의대생들이 선망하는 과였다. 1960년대 산부인과 의사 한국남은 KBS 라디오 ‘재치문답’과 동아방송의 ‘유쾌한 응접실’ 등에 출연하면

“코로나 극복 중심병원은 북유럽 3국의 선물”

코로나-19 확진환자가 급증하면서 국립중앙의료원 상황실에서 전국의 중증 환자 이송을 직접 통제하기로 했다. 이처럼 전염병이 기승을 부리면 국립중앙의료원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이 병원은 스칸디나비아 북유럽 3개국과 UN한국재건단(UNKRA)의 재정 지원으로 1958년에 개원하였는데, 다들 메디컬센터

아시아 최대 병원 건립해 이사하니 이런 일이…

1962년 서울 서대문구 신촌의 연세캠퍼스에 새 병원을 건립하여 서울역 앞에 있던 세브란스병원을 이전했다. 원래 세브란스병원은 1885년 지금의 헌법재판소 자리에 설립됐다가 을지로를 거쳐 1904년 남대문 밖 서울역 앞 도동(복숭아골)에 세워져서 그때까지 유지됐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SBS

독일로 간 간호사들은 어떻게 살았나?

2014년 연말에 개봉된 영화 《국제시장》에서 오영자(김윤진)는 독일에서 간호사로 일하다가 윤덕수(황정민)를 만난다. 영화의 오영자처럼 1960~70년대 1만 여명의 간호사들이 가족을 위해, 또는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독일로 떠났다. 처음부터 정부 차원에서 간호사를 파견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