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건강부터 챙기세요”... 연말에 쏟아진 명퇴 남편들, 아내의 속마음은?

[김용의 헬스앤]

50대 부부는 세월의 빠름을 실감한다. 결혼식을 한 게 엊그제 같다. 그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 부부 관계를 재정립하는 게 좋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돈 들어 갈 데가 많은데 남편이 명퇴했어요. 시부모 간병비에 아이들 용돈... 그동안 가족을 위해 고생한 남편을 위로했지만, 좀 막막하네요.”

매년 연말이면 기업에서 권고사직, 명퇴자가 쏟아진다. 올해는 특히 많은 것 같다. 경기 불황이 깊어지자 대기업, 중소기업 할 것 없이 앞다투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기업 인사 담당자가 생색내기에 가장 좋은 것이 인건비 절감, 세대교체 명분이다. 법적 정년은 60세이지만 이는 공무원, 공기업 직원들의 얘기다. 사기업은 ‘명퇴 공고’를 붙이면 그만이다. 이제 막 50세를 넘은 중년 직장인은 좌불안석이다. 끊었던 담배를 다시 입에 문다. “회사도 어렵고 후배를 위해 비켜주라”는 말에 결국 권고사직을 받아들인다. 말이 좋아 명예퇴직(명퇴)이지 해고다. 중소기업은 은행, 대기업처럼 거액의 명퇴금도 없다. 약간의 퇴직금만 받고 차가운 거리로 내몰린다.

부모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 한겨울에 거리로 내몰리다

40대 말~50대 직장인은 한창 돈을 쓰는 시기다. 특히 50대는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다. 미취업 자녀에겐 용돈도 보태줘야 한다. 노후설계는 엄두를 못 낸다. 힘들게 부모를 부양하지만 정작 자신은 자녀의 도움을 기대하지 않는다. 60세 정년을 바라봤다가 갑자기 명퇴 통보를 받으면 모든 것이 흐트러진다. 퇴직금을 까먹으면서 버티다간 금세 바닥난다. 잘 나갔던 대기업 직원이었어도 재취업이 쉽지 않다. 운 좋게 취업해도 길어야 1~2년이다. 월급은 절반 이하로 쪼그라든다. 한국은 대기업-중소기업의 양극화가 심한 나라 중의 하나다. 미국, 유럽처럼 해고를 자유롭게 허용했다간 대기업 직원도 빈곤에 노출될 수 있다.

졸지에 거리로 내몰린 중년의 직장인은 배신감에 치를 떨고 우울감에 휩싸인다. “내 청춘을 다 바쳐서 일한 회사인데... 너희들이 그럴 수 있어...” 자신이 아끼고 승진까지 도왔던 회사 후배가 전화 한번 주지 않으면 인생무상을 느낀다. 이들 중년의 명퇴자는 급속히 정신건강이 나빠질 수 있다. 우울감이 깊어지면 우울증까지 덮친다. 우울증은 매우 위험한 병이다. 매년 자살자의 70% 이상이 우울증 환자다. 판단력과 자기 제어력이 급속히 무너져 최악의 선택을 하고 만다. 정신력으로 이겨낼 병이 결코 아니다. 이들은 겉으로는 멀쩡하다. 가족들도 알아채지 못한다. 본인조차 우울증 인줄 모르는 사람이 많다.

미우나 고우나 내 남편, 아내 밖에 없다... 배우자의 위로가 가장 큰 힘

평생 회사만 바라보고 가족들을 챙기지 못한 ‘회사형 인간’들은 퇴직 후 갈 곳이 없다. 등산도 매일 하기 그렇고, 모임에 나가기도 싫다. 마음에 큰 생채기를 입은 중년 남성들은 자신감이 급속히 줄어든다. 이럴 때 미우나 고우나 내 남편, 아내밖에 없다. 어려울 때 진가를 발휘하는 것이 진정한 부부다. “여보, 그동안 가족들을 위해 고생했어요. 이제 좀 쉬면서 건강부터 챙기세요”... 아내의 따뜻한 말 한마디는 천금이나 다름없다. 주눅 든 남편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원동력은 아내의 ‘따뜻함’이다. 가뜩이나 체면이 깎인 남편이 더 쪼그라들 게 해선 안 된다. 따뜻한 말은 돈도 들지 않는다.  배우자가 어려울 때 무심코 내뱉은 말은 큰 상처가 되어 평생을 갉아 먹을 수 있다.

우울감 넘어 우울증 보이면 병원 치료 필수... 갱년기를 덮친 해고 충격

배우자가 우울감을 넘어 우울증 증상까지 보이면 병원(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강력히 권해야 한다. 우울증은 의욕 상실, 식욕 감퇴, 불면증이나 너무 긴 수면, 판단력 상실 등 다양하다. 남자는 발기가 제대로 안 되어 부부관계도 할 수 없다. 우울증은 정신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병이 절대 아니다. 뇌 속의 신경전달물질의 장애로 생기기 때문에 항우울제를 처방받아 복용해야 한다. 전문의의 심리 치료도 필요하다. 우울증이 심하면 혼자 자게 해선 안 된다. 자다가 몽롱한 상태에서 최악의 선택을 할 수 있다. 부부라면 잠을 설치더라도 각방을 쓰지 않는 게 좋다.

50대 권고사직이 위험한 이유는 이 시기가 갱년기이기 때문이다. 호르몬의 변화로 남성도 갱년기를 겪는다. 중년 여성처럼 심한 경우도 있다. 의욕 상실, 우울감이 나타난 상황에서 난데없는 해고 통보는 엄청난 충격이다. 겉으론 강한 척 하던 남자도 속이 타 들어가 우울증을 앓을 수 있다. 그런데도 아프다고 내색을 하지 않는다. 이는 더 위험하다. 아내, 가족과 상의하지 않고 속으로만 끙끙 앓다가 정신, 육체가 다 망가질 수 있다.

어려울 때일수록 남편-아내의 관계 중요... “따뜻한 말 한마디 나누세요

샐러리맨은 퇴직이 숙명이다. 직장인 10명 중 4명(39.1%)은 내년(2025년)에도 실직 가능성이 있다고 걱정했다. 50대 이상(42.2%)에서 상대적으로 내년에 실직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직장인 절반이 갑작스럽게 실직할 경우 재정난으로 6개월 이상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답했다. 직장갑질119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12월 2일부터 11일까지 전국 19세 이상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다.

중년의 퇴직은 인생의 갈림길이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남편-아내의 관계가 더 돈독해져야 한다. 돈 많이 벌고 여유로울 때보다 힘들고 코너에 몰릴 때 손을 잡아주는 것이 진정한 부부다. 지금 이 시간에도 새로운 출발을 설계하는 퇴직자들이 많을 것이다. 무슨 일이든 부부의 속 깊은 대화가 중요하다. 앞으로 20~30년을 부부 둘이서만 살아야 한다. 회사에 청춘을 바쳤다면 이제는 부부 둘만의 시간을 늘려야 한다. 이 시기에 주고받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남은 20~30년을 결정할 수도 있다.

    김용 기자

    저작권ⓒ 건강을 위한 정직한 지식. 코메디닷컴 kormedi.com / 무단전재-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

    댓글 0
    댓글 쓰기

    함께 볼 만한 콘텐츠

    관련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