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금? 가슴 때리는 충무공 리더십 10

[이성주의 건강편지]

2024년 12월 16일ㆍ1650번째 편지

칠흑 같은 밤부터 한나절 넘게 사방을 울리던 포성이 멈추는 듯했습니다. 피아 1000여 척의 전함이 건곤일척 해전을 벌이며 소용돌이치던 풍랑도, 그 위에 흩어지던 함성과 총성도 사라진 듯했습니다. 인류 해전사의 가장 위대한 영웅이 쓰러진 순간. 생사의 고비를 수없이 넘겼지만 이번엔 사선에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그 영웅도 알고 있었습니다.

1598년 오늘(12월 16일) 지금의 경남 남해 앞바다 노량에서 충무공 이순신은 “전투가 급하니, 절대 내 죽음을 알리지 말라(戰方急, 愼勿言我死 전방급, 신물언아사).”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뒀습니다.

조명 수군의 대승으로 정유재란의 마지막 전쟁이 끝난 뒤 하늘도, 땅도 울었습니다. 온 백성이 함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명 제독 진린도 통곡했습니다. 진린은 충무공을 “경천위지(經天緯地)의 재주와 보천욕일(補天浴日)의 공로가 있는 분”이라고 칭송했습니다. 경천위지는 중국 춘추시대 역사서 《국어》에 나오는 말로 ‘천하를 베의 낱줄과 씨줄처럼 체계를 세워 경영한다’는 뜻입니다. 보천욕일은 한나라 초기 유안의 《회남자》에서 천지를 창조한 여와가 찢어지고 무너진 하늘을 정비하고, 태양의 여신 희화가 태양을 씻었다는 데서 유래한 성어로 ‘엄청난 공로’를 가리킵니다.

충무공은 인류 역사 최고의 영웅입니다. 세계사에는 수많은 영웅이 있지만, 충무공처럼 끊임없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서도 불평 없이 묵묵히 성과를 이뤄낸 영웅, 열악한 환경에서 끝없이 불가능을 기적으로 만들어낸 영웅은 없을 겁니다. 충무공처럼 고매한 인격을 갖추고, 철저히 공부한 영웅도 찾아보기 힘들 겁니다. 영웅심이 아니라 저 깊은 곳의 본성에 따라 바른 길을 가면서 그처럼 뛰어난 성과를 거둔 장군도 거의 없을 겁니다.

영웅이 태어난다는 난세, 충무공의 리더십을 가진 사람은 없는 걸까요? 온라인에선 충무공의 가르침을 전파하는 훌륭한 글들이 많지만, 틀린 사실들이 옥에 티로 들어있지요. 역사가 출렁이는 위기의 시기에 '큰 위인' 충무공 이순신으로부터 배울 점을 다시 정리했습니다.

①끊임없이 자신을 관리하라=충무공은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는 자는 남을 다스릴 수 없다”고 했다. 매일 일기를 쓰면서 자신의 일과 삶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며 개선했다. 아플 때에도 일기를 쓰며 자신을 객관화했다.

②남 탓하지 말고 변명하지 마라=탐욕스런 상관의 모함으로 수없이 불이익을 받았고 두 번이나 죽음 직전까지 갔다. 충무공은 변명하기보다는 쭉 옳은 길을 갔고, 사람들이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전라좌수사 이용은 전임자의 말만 듣고 이순신을 처벌하려고 했다가 나중에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함경도로 전근가면서 마침 모함을 받아 파직돼 있던 이순신을 지목해 데리고 갔다.

③환경이 나쁘다고 불평하지 마라=스스로 논밭을 갈아 군자금을 만들어 풍부한 물자의 왜군과 싸워 연전연승했다.

④배우자를 '진짜' 사랑하라=충무공은 무관 집안인 처가의 영향으로 무관이 됐으며, 부인과 함께 수련했다. 전란 중에 충남 아산 처가의 부인이 병이 걸려 위독한 것을 알고 ‘선공후사’ 때문에 갈 수는 없었지만 부인을 위해 잠을 설치며 걱정하고 기도했다. 이런 내용이 난중일기에 생생히 남아있다.

⑤소리만 지르지 말고 솔선수범하라=이기기 힘든 전투일수록 직접 선봉에 서서 승리를 이끌었다.

⑥‘빽’ 없다고, 출신이 나쁘다고 기죽지 마라=충무공은 첫 과거에 낙방하고 32세에 겨우 붙었으며 14년 동안 변방 오지의 말단 수비 장교로 돌아다녔다. 적군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태로워진 뒤 47세에 해군제독이 됐다.

⑦끊임없이 공부하고 철저히 정보를 모으라=전략과 전술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와 철저한 정보 수집으로 첫 번째 출전한 해전에서부터 연승했다. 이는 이론뿐 아니라 지형, 해류, 적군 동향 등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 덕분에 가능했다. 공부와 정보에 바탕한 승리 없이는 다른 장점도 빛을 내지 못했을 것.

⑧경청하고 소통하라=혼자 말하고 명령하기보다는 여러 장수의 의견을 경청하고 정리했다. 따라서 명령이 합리적이고 따르지 않기 힘들었다.

⑨상벌을 분명하게 하라=전투 이후에는 반드시 전공을 평가해 합당한 상을 받게 했다. 다른 군영에서는 베어온 적병 목의 개수에 따라 상을 줬지만, 이를 타파하고 실제로 기여한 전공에 따라 포상했다. 군령을 어기거나 백성에게 피해를 끼친 장병에 대해선 엄벌로 기강을 잡았다.

⑩공을 탐내지 마라=충무공은 언제나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고, 때로는 탐욕스런 상관에게 공을 빼앗기기도 했지만 낭중지추(囊中之錐),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빛이 났다. 해군 제독으로서 연전연승할 때 모든 공을 부하에게 돌렸고 장계의 맨 끝에 이렇게 썼을 뿐이다. “신도 싸웠습니다(臣亦戰).”

1921년 오늘은 프랑스의 작곡가이자 지휘자, 피아니스트 카미유 생상스가 세상을 떠난 날입니다. 생상스의 피아노협주곡 2번을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슈타인과 앙드레 프레빈이 지휘하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협연으로 감상해 보실까요?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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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ik*** 2024-12-16 09:45:47

      최고 입니다.아주 좋은글 입니다.고맙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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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hc*** 2024-12-16 08:09:03

      혼탁한 작금의 시대에 적절한 기사입니다. CEO 직책을 수행하고 있는 리더들이 매일 읊고 가슴 속에 새겨야 글귀라 생각합니다. 늘 밝고 공정한 우리나라 '사회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시는 이성주 대표님 감사합니다. 생상스의 피아노협주곡 2번도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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