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재 알테오젠 대표 "안정적 영업이익 전엔 내 연봉 인상 없다"
"해외서 받은 개인 컨설팅비 14억, 회사 운영비로 사용"
‘’페스티나 렌테(Festina lente)’.
박순재 알테오젠 대표의 카카오톡 프로필 이름 아래 글귀다. ‘천천히(렌테) 서둘러라(페스티나)’는 뜻의 라틴어. 얼핏 모순돼 보이는 어휘를 결합한 '형용모순(Oxymoron)'으로,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좌우명으로 알려져 있다. 박 대표는 이렇게 설명했다.
“의약품 개발은 한번 시작하면 15년, 20년 걸리는데, 무턱대고 시작했다가 실패하면 막대한 자금을 날리게 돼 치명적이다. 모든 것을 철저하게 점검하되, 질질 끌지 말고 속도감 있게 움직여야 한다는 점에서 의약품 개발에 적합한 글귀가 아닐까.”
그의 이런 스타일은 실제 경영활동에서도 드러난다고 주변에선 평가한다. 시장 흐름을 정밀하게 파악하는 눈을 지녔고, 그 흐름에 맞춰 치밀한 준비 작업 끝에 결단을 내린다는 점에서다. 20년 가까이 LG생명과학에서 연구원을 거쳐 사업개발 부서장직을 수행하는 동안 이런 감각을 익힌 것이 아닐까 지인들은 짐작한다.
실제로 알테오젠의 플랫폼 기술인 인간 히알루로니다제(ALT-B4) 개발에 성공한 것도 2018~2019년 시장 흐름을 정확히 짚은 결과다. 그전까지 알테오젠은 주로 바이오시밀러와 지속형 성장호르몬 개발 등에 힘을 쏟았는데, 관련 시장 동향을 살피던 중 정맥주사(IV)가 피하주사(SC)로 바뀌는 흐름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이거다 싶어 SC제형 원천기술 개발을 사업 방향으로 잡았다고 한다.
"국내 역사상 최고 바이오제약 플랫폼 만들어낸 것"
알테오젠에 투자하면서 박 대표를 오랜 동안 만난 한 벤처캐피털 관계자는 “박 대표와 비즈니스미팅을 하다 보면 제갈량 같은 전략가의 모습을 보게 된다”며 “SC제형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발빠르게 역량을 집중함으로써 국내 제약바이오 역사상 최고 플랫폼 기술인 ALT-B4를 탄생시켰다”고 평가한다.
이 관계자는 ALT-B4를 이렇게 비유했다.
"스타벅스를 글로벌 빅파마라고 생각해보자. 국내 기업이 빅파마에 신약 기술을 이전하는 것은 괜찮은 커피 제품 한 품목을 스타벅스에 납품하는 수준이다. 이마저도 얼마나 팔 게 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알테오젠은 스타벅스의 다양한 커피 제품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첨가제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게 바로 플랫폼 기술이 아니겠는가."
ALT-B4 기술은 MSD의 키트루다 SC제형 전환에 적용되면서 알테오젠에 막대한 기술료를 안겨줄 예정이다. 여기에 더해 주가도 초고속으로 상승했다. 12일 기준 알테오젠 종가는 43만9500원, 시가총액은 23조4336억원이다. 박 대표 지분은 약 19.3%다. 주식 가치가 어림잡아 4조5000억원을 넘는다. 국내 10대 주식부호 리스트에도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박 대표는 “느낌이 없다”고 했다.
“현금을 갖고 있는 게 아니니까 감이 없다. 주식을 전부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나도 팔지 않겠지만, 어마어마한 돈이 수중에 들어온다고 해도 달라질 게 있을 지 모르겠다.”
연간 급여 한번도 5억원 넘긴 적 없어
주식부호이면서 오너 기업인이지만 박 대표는 한 명의 회사원으로서 검소하고 겸손하다. 14년간 알테오젠을 이끌어오면서 연간 급여를 5억원 이상 받아간 적이 없다. 수년 전부터는 상당한 기술료가 회사로 들어오고 있지만 본인 급여 인상엔 인색하다.
박 대표는 “시가총액은 엄청 성장했지만 영업이익이 그에 비례한 것은 아니다”며 “안정적으로 영업이익을 내는 구조를 갖출 때까지는 절약하는 게 옳다”고 했다. 그는 “알테오젠 설립 초창기엔 월급을 가져가지 않은 적도 있고, 브라질 기업에 개인적으로 바이오 관련 컨설팅을 한 대가로 수년에 걸쳐 100만달러를 받았지만 회사 운영비로 썼다”고 회고했다.
사실 알테오젠은 지금까지 적자를 면해본 적이 없다. 지난 2018년부터 거의 매년 기술수출 계약이 이어져 계약금과 마일스톤이 들어왔지만 연구개발비 등 비용 지출이 커 영업이익을 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적자 구조도 이제 막바지다. 올해나 내년을 끝으로 흑자시대를 열어갈 게 분명하다.
그런데 이에 대한 박 대표의 관점은 조금 달랐다. 연구개발 중심의 바이오벤처라면 당장 흑자와 적자를 구분하는 게 중요하지 않다는 시각이다.
박 대표는 “임상 2상, 3상시험 등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단계에 들어서면 적자가 날 수 밖에 없다”며 “흑자를 내기 위해 돈을 덜 쓴다면 미래 비전을 포기하는 것 아닌가. 그건 어리석은 짓”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