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에 배신자가? "암세포 돕는 불량 DNA 있어"
악성 암세포 성장과 내성 돕는 염색체외DNA 겨냥한 신약 개발돼
우리 몸에 암세포를 돕는 제5열 노릇을 하는 불량 디옥시리보핵산(DNA)이 존재하며 이를 표적으로 삼은 신약이 초기 임상시험에서 치료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새로운 연구결과가 나왔다. 6일(현지시간) 《네이처》에 발표된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진이 주도한 3편의 논문을 토대로 영국 가디언이 보도한 내용이다.
스탠퍼드대의 폴 미셸 교수(병리학)와 하워드 창 교수(암유전학) 그리고 영국 프랜시스크릭연구소의 찰스 스완튼 박사(임상종양학)가 이끄는 연구진은 약 1만5000명의 영국 암환자를 대상으로 39가지 종양 유형을 테스트했다. 그 결과 암 6건 중 1건 이상에서 악성 암세포의 성장과 내성을 촉진하는 염색체외DNA(ecDNA)를 발견했다.
연구진은 이를 통해 ecDNA가 어떻게 암의 성장과 내성을 유발하는지를 밝혀낸 데 이어 ecDNA를 겨냥한 신약이 초기 임상단계에서 악성 종양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폴 미셸 교수는 “전 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중요한 발견”이라며 “그들은 현재의 치료법이 효과를 보이지 않는데다 종양이 너무 공격적이어서 정말 고통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간 세포의 대부분의 유전자는 세포 핵 안에 있는 23쌍의 염색체에 담겨 있다. 그러나 때때로 염색체에서 떨어져 나온 단편 조각들이 둥글게 모여 ecDNA를 형성한다. 최근까지 ecDNA는 암 발생에 있어 드물고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다.
연구진은 세 편의 논문을 통해 ecDNA의 기원과 의미를 자세히 설명했다. 연구진은 연구 대상 종양의 17.1%에 ecDNA가 포함돼 있으며, 특히 유방암, 뇌암, 폐암에서 이 불량 DNA가 더 흔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ecDNA 조각은 암을 유발하는 유전자와 면역체계를 억제하는 기타 유전자가 들어있다. 전자는 암세포의 성장을 촉진하고, 후자는 암세포가 신체의 자연 방어를 회피하고 암세포에 면역체계의 화력을 집중시키는 항암 면역요법에 대한 내성을 키워준다.
연구진은 ecDNA의 빠르고 혼란스러운 복제가 종양을 유발한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암세포가 분열하면 각 세포는 동일한 수의 염색체를 물려받는다. 그러나 초기 세포에 여러 개의 ecDNA가 포함돼 있으면 분열로 형성된 세포 중 하나가 다른 세포보다 더 많이 유전돼 고르지 않게 전달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암세포의 유전적 다양성이 증가해 항암제에 대한 내성이 강화된다.
미국 국립암연구소(NCI)와 영국암연구(CRUK)가 공동 설립한 ‘암 극복을 위한 위대한 도전(Cancer Grand Challenges)’를 통해 자금을 지원받은 이 연구는 CHK1 억제제라는 약물이 ecDNA가 포함된 암세포를 선택적으로 파괴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미셸 교수가 공동 설립한 스타트업 생명공학회사 ‘바운드리스 바이오(Boundless Bio)’가 개발한 CHK1 억제제는 생쥐 대상 소규모 동물실험에서 기존 항암제와 함께 투여했을 때 종양을 줄이고 내성을 예방하는 데 도움을 줬다.
CRUK의 데이비드 스캇 ‘암극복을 위한 위대한 도전’ 담당 국장은 “가장 공격적인 암 중 상당수는 생존을 위해 ecDNA에 의존하고 있다”며 “이러한 암이 확산되면 ecDNA는 치료에 대한 내성을 유발해 환자의 치료 옵션을 앗아간다”고 설명했다. 그는 “ecDNA를 표적으로 삼음으로써 우리는 이러한 무자비한 종양의 생명선을 끊을 수 있고, 끔찍한 예후를 치료 가능한 것으로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3편의 논문 중 하나는 다음 링크(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24-07861-8)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