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퇴치한 열정으로 AI 맞춤 건강관리 이끈다
[수요 라운지] 60돌 맞은 한국건강관리협회 김인원 회장
“건강관리협회는 1960년대 온국민이 갖고 있던 기생충을 퇴치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고, 1980년대부터는 효율적 건강검진 모델의 확산에 중추 역할을 했습니다. 환갑을 맞는 올해부터는 빅테크를 활용, 맞춤형 건강관리의 모델을 구축해서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것은 물론, 세계인의 건강관리 모델을 선보이겠습니다.”
올해 60주년을 맞은 한국건강관리협회(건협)의 김인원 회장(70)은 5일 서울 강서구 등촌동 건강관리협회 본부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협회는 옳은 뜻과 열정을 함께 품은 선각자들이 두 단계의 결정적 도약을 통해 세계가 부러워할 만한 성과를 이뤘다”면서 “세 번째 도약도 기관의 선한 비전과 목표를 공유하는 열정적 직원들이 성공적으로 이룰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건협의 씨앗은 국민의 건강을 위해 부와 명예를 포기한 의료인들이었고, 망울을 터뜨리게 한 것은 한 소녀의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1963년 10월 24일 전주예수병원 앞에서 9세 소녀가 배를 부여잡고 데둘데굴 뒹굴고 있었고, 이 병원의 폴 그레인 박사가 개복수술 했더니 무려 1063마리의 회충이 꿈틀대고 있었다. 소녀의 몸무게가 20㎏이었는데 회충은 5㎏이었다. 결국 소녀는 회복하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이 사례는 해외 외과학술지 《Annals of Surgery》에 게재됐고 국내외 언론에도 소개됐다. 정부도 기생충 대책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보건 의료인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1964년 사단법인 한국기생충박멸협회가 출범했다.
초대 회장은 일본 교토대 의학박사 학위를 받아 교수 자리와 부유한 삶이 보장됐지만, 농촌에서 의료 봉사에 매진해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렸던 쌍천(雙泉) 이영춘(1903~1980) 박사. 이 박사는 “예방의학은 부자가 되기는 어려워도 많은 사람을 이롭게 할 것이다. 모두 자기 이익을 중요하게 여기는 시대에 공중보건을 통해 아픈 사람을 고치는 진짜 의사가 되라”는 올리버 애비슨(魚飛信·1860~1956) 세브란스의전 교장의 졸업식 훈화를 가슴에 새기고 농촌에서 의술을 펼치며 기생충 퇴치가 국민 건강의 최대 과제임을 절감하고 있었다.
기생충 감염률 1971년 84.3%→1997년 2.4%
김인원 회장은 “초기의 사명감 강한 의료인들과 군 출신 임원들이 협력해서 조직의 기초를 다졌다”면서 “군 출신 임원들은 야근을 마다 않고 속전속결로 일을 처리했으며 군 컴퓨터 시스템을 전국 조직에 도입해 협회 성장의 행정적 발판을 마련했다”고 소개했다. 허나, 열정만으로는 부족했다. 노하우가 없었던 기관에선 일본기생충예방회의 사무국장이 서울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소진탁 부회장(1921~2016)을 비롯한 임직원이 김포공항에 나가 그를 ‘납치’하다시피해서 도움을 졸랐다. 임직원의 열정에 감복한 구니이 조지로 사무국장은 일본기생충예방회의 온갖 노하우를 전수했다.
협회는 ‘기생충질환예방법’의 국회 통과를 이끌어내 학교에서 연 2회 이상 학생의 기생충 감염 여부를 검사하고 치료해야 할 의무를 부과했다. 1971년부터 5년마다 전국적으로 장내 기생충 감염률 실태조사를 했다. 이런 적극적 활동은 기생충 감염률을 1971년 84.3%에서 1997년 2.4%로 낮추는 세계적인 성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런 결과가 오히려 기관의 존립을 위협했다. 1980년 경제기획원 통계국의 ‘한국인 사망률 조사’에서 순환기질병 35.4%. 암 11.7%이었던 반면, 기생충 감염을 포함한 감염병은 6.5%로 뚝 떨어진 것으로 나타나자 기관의 존재 이유에 의문이 제기된 것.
“보건사회부는 성인병에 대비하라고 요구했고 협회는 내부에 의료부를 만들고 성인병 검진사업을 받으려고 했지요. 그런데 경제기획원이 검진사업 예산을 전액 삭감해버렸어요. 겨우 경제기획원을 설득했더니 복지부 담당 부처가 바뀌어있었고, 공무원이 기생충박멸협회라는 이름으로 성인병 검진을 진행하기 어렵다고 해요. 그래서 기생충협회 인력으로 별도의 협회를 만들어 사업을 전개했습니다. 몇 주 동안 국민 건강을 위한 사명감으로 밀어붙인 것이지요.”
새 협회의 이름은 ‘한국예방의학사업회(협회)’, ‘한국성인병검진사업회’, ‘한국건강검진사업회(협회)’, ‘한국건강관리사업회(협회)’ 가운데 지금의 이름으로 정했는데, 21세기 AI(인공지) 맞춤형 건강관리 시대를 앞두고 절묘한 선택이 됐다.
1982년 사단법인 한국건강관리협회가 공식 출범했고, 4년 뒤 기생충박멸협회와 합쳤으며 현재 본부와 전국 시·도의 17개 지부, 중앙검사본부 등에 3600여 명의 임직원이 근무하는 매머드 기관으로 성장했다. 기관은 2003년부터 매년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매년 평균 10여 개의 논문을 학술지에 발표하고 있다.
김 회장은 “60주년인 올해부터 AI 활용 맞춤형 건강관리의 구축과 확산을 이끄는 데 앞장서겠다”면서 “이는 국민 건강을 위해서도 필수적이지만 산업계의 성장과 지구촌의 공익에도 기여하는 길”이라고 소개했다.
맞춤형 건강관리는 협회가 축적한 방대한 빅데이터와 AI의 검진기록 분석, 유전체 검사 결과 등을 합쳐서 개인 맞춤형 건강관리를 펼치는 것. 협회는 건강검진 항목에 암 유전 패널 검사 35종, 유전성 부정맥 41종 등을 도입했고 추후 건강관리에 도움이 될 항목을 늘릴 계획이다.
"한 번 방문한 고객은 꼭 다시 오도록 해야죠”
협회는 지난 4월 공유실험실 ‘메디오픈랩’을 열어 바이오 스타트업이 협회의 도움을 받아 성장하고 해외로 진출하도록 돕는 과업에 시동을 걸었다. 협회는 또 네이버, 카카오, KT 등의 빅테크 기업, 이화여대의료원,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등과 연구조합을 설립해 ‘맞춤형 건강관리’를 위한 데이터 공유, 공동연구 등을 펼칠 예정이다.
“미래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선 현재에 더 충실해야 할 겁니다. 협회의 건강검진 센터에선 고객의 동선과 대기시간을 줄일 RFID(무선 주파수 인식) 기반의 시스템을 안정화하고, AICC(인공지능 기반 컨택센터)를 도입해 고객지원서비스를 향상하겠습니다. 한 번 방문한 고객은 꼭 다시 오도록 해야지요.”
김 회장은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 지역사회에 선한 영향력이 확산하는 일도 소홀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희귀 난치성 환자 치료비 지원, 장애인특화 차량 제작 지원, 결식아동 한끼나눔 캠페인 등을 추진해 협회 설립 당시의 공익 정신을 발전시키겠다는 것.
“60주년 행사도 이와 연관 지어 실행했습니다. 60주년 ‘Walk On' 릴레이 걷기 챌린지를 전개해 총 걸음 수에 맞춰 휘귀·난치병 환자 치료비에 지원했습니다. 한강 반포공원에서 열린 걷기 대회에선 2000명이 참가해 걸음 수만큼 환자 지원비를 보탰지요. 재능있는 발달장애인에게 일러스트를 8주 동안 가르치고 유명 작가와 협업 작품을 만들어 선보이는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전시회’도 성공적으로 개최했습니다. 임직원들이 이런 활동에 즐겁게 참여하는 것은 우리 기관의 설립 때부터 시작된 공익 의식을 함께 나누는 것이어서 뿌듯하고 자랑스럽습니다.”
▶김인원 회장은 영상의학의 세계적 권위자로 서울대 의대 영상의학교실 주임교수와 서울대병원 영상의학과 과장, 아시아오세아니아 소아영상의학회 회장, 대한초음파의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서울대 교수 시절인 2002년부터 건강관리협회 전문위원, 부회장 등을 맡아 협회의 주요 의사결정에 자문하다 2021년 회장에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