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휴대용 초음파 만든 기술력…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만들죠"
[헬스케어 기업탐방 10] 힐세리온
“힐세리온은 지난 10년간 휴대용 무선 초음파 기기의 보급을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앞으로는 초음파에 인공지능 기술을 더해 의료 영역의 ‘자율주행 자동차’로 만들 생각입니다.”
힐세리온은 세계 최초로 휴대용 무선 초음파 기기를 개발한 디지털 헬스케어 전문 기업이다. 2012년 이 회사를 창업한 류정원 대표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드는 것’이 목표이자 사명이라고 소개했다.
’의사 출신 창업가’ 아닌 ‘창업가 출신 의사’
임상 현장에서 발견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기업을 설립하는 의사는 흔하다. 그런데 류 대표는 그런 의사들 사이에서도 특이한 이력을 가졌다.
“서울대 자연과학부 물리학과 졸업 이후 2000년 첫 창업에 도전했죠. 디지털 보안 영상 저장 장비를 만드는 기업이었는데, 삼성이나 LG로부터 투자를 유치할 만큼 주목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그러던 2003년 벤처 버블이 꺼지면서 투자 업계가 얼어붙었고, 결국 제가 만든 회사에서 물러나야 했죠.”
류 대표의 관심을 끈 것은 당시 막 논의가 시작되던 인공지능(AI) 기술이었다. 그는 당시 전자공학이나 물리학으로는 AI의 발전을 이끌 수 없다고 판단하고 인간의 뇌를 공부하듯 접근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뇌를 공부하려면 생물학과에 들어가면 될까 싶어 찾아봤더니, 의학전문대학원이 생긴다는 이야기가 돌더라구요. 그렇게 가천대 의전원 1기로 입학했죠.”
류 대표는 의전원 졸업 이후 2년간 응급실에서 일하며 힐세리온 창업 아이디어를 얻었다. 거대한 초음파 장비를 ‘들고 다닐 수 있다면’ 더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겠다는 것. 그렇게 출발한 힐세리온은 현재 임직원 20명, 누적 투자금 200억원의 스타트업이 됐다.
"65개국에 7000대 이상 보급된 휴대용 초음파 '소논'"
초음파 검사의 원리는 우리 귀에 들리지 않는 높은 주파수의 음파를 만들어 인체 내부로 보낸 후, 내부에서 반사되는 음파를 영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인체에 무해한 방식으로 장기 구조, 형태, 혈류 흐름 등을 파악할 수 있어 다양한 검사에 사용되고 있다. 앞서 류 대표의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든다”는 말도 이러한 초음파의 특성을 반영한 표현이다.
길이 24cm, 무게 390g 내외의 작은 크기의 휴대용 무선 초음파 ‘소논(SONON)’ 시리즈는 이것을 가능하게 만든 세계 최초의 제품이다.
“휴대하려면 일단 작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게 가장 어려운 부분이죠. 초음파를 발생시키려면 100볼트 이상의 고전압이 필요한데, 이를 위한 회로와 열 처리 장치를 작은 기계 안에 집어넣는 것은 굉장히 까다로운 작업입니다. 소논은 그 자체로 후발주자들의 모방이 어려운 진입장벽이라고 할 수 있겠죠”
류 대표는 자체 설계를 통해 기존의 고정식 초음파보다 30배 이상 계산량이 많은 회로를 고안해냈다. 기계의 크기는 작아졌지만 열 처리와 영상 화질은 오히려 고정식보다 뛰어나다는 설명이다.
이렇게 휴대용 장비로 촬영한 영상은 모바일 앱을 통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확인할 수 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애플이나 안드로이드 기기 대부분과 연동이 가능하다.
소논 시리즈는 2014년 최초 개발된 복부·산부인과 전용 모델 ‘300C’, 유방과 근골격계 전용 모델 ‘300L’, 크기와 무게를 30% 이상 줄인 리뉴얼 모델 ‘500L’의 라인업으로 구성됐다. 류 대표에 따르면 소논 시리즈는 현재까지 65개국에서 7000대 이상 팔렸다.
한정적인 활용처 아쉬워…시장 크기 10배 이상 성장 가능
류 대표는 소논을 통해 개척한 휴대용 초음파 시장이 현재 ‘접근성’이라는 한계에 부딪혔다고 진단했다.
“최근에는 사용처가 확대됐다고는 하지만 사실 산부인과나 영상의학과, 정형외과 같이 특정한 과를 전공하지 않은 의사들이 초음파 장비를 사용하는 것은 굉장히 제한적입니다. 장비를 다루는 것은 물론이고 초음파 검사로 어떤 것을 확인할 수 있는지도 모르시는 분들이 많죠.”
이에 류 대표와 힐세리온은 소논을 더 폭넓게 사용하도록 만드는 것을 다음 목표로 세웠다. ‘제 2의 청진기’로 소논을 사용하도록 만든다는 전략이다. 대표적인 것이 ‘복부 내 출혈’을 확인하는 부분이다.
“복수 천자(배에 찬 물을 빼는 수술)부터 시작해서 응급 환자를 이송할 때도 환자의 복부에 출혈이 있는 지를 파악하는 것은 생명을 살리기 위한 중요한 절차입니다. 소논은 휴대용이기 때문에 응급 현장에서 신속하게 초음파 검사를 시행해 환자에게 심각한 외상이 발생했는 지를 일차적으로 스크리닝 할 수 있죠.”
류 대표는 “이외에도 폐나 신장, 혈관까지 초음파를 활용할 수 있는 영역이 너무나 많다”며 “초음파의 쓰임새를 널리 알리는 것이 앞으로 힐세리온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힐세리온이 초음파의 접근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무기로 선택한 것이 AI 기술이다. 소논을 갖다대기만 해도 무엇을 어떻게 검사해야 하는지 의료진에게 제시하고 검사 데이터를 정리해 보고서로 제시해주는 것이다. 류 대표는 이를 ‘스마트 울트라사운드’라고 명명했다.
실제로 힐세리온은 이스라엘의 AI 전문 기업 ‘울트라사이트’와 AI 휴대용 초음파 진단기를 공동 개발하고 있다. 영유아 고관절 탈구검사, 폐초음파 검사, 하지정맥류 검사 등의 고도화를 위해 대한아동병원협회·대한응급의학회·대한영상의학회 등 의학계와도 꾸준히 협력하고 있다.
“좋은 걸 만들어놓고 왜 안 알아주냐고 징징대는 것은 책임감 없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까지 제시해야 하죠. 힐세리온은 이 분야를 개척한 리더 기업으로서, AI라는 효과적인 방법까지 성공적으로 제시하는 미래를 꿈꾸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