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수준 'K-암치료' 무색... "혈액암 치료 접근성 열악"

혈액암 치료제 다수 급여 지연... "급여 심의위원, 고형암 전문가에 편중" 지적도

림프종 세포. [사진=Kateryna Kon/shutterstock]
세계적으로 최고 수준의 암 치료 실력을 자랑함에도 혈액암 치료제와 그 합병증 치료에 대한 환자 접근성은 열악하다는 지적이 국회에서 나왔다.

특히 혈액암 치료제 급여에 있어서 첫 관문인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암질환심의위원회(중증질환심의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사례가 많아, 고형암 위주로 짜인 위원 구성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뒤따른다.

개혁신당 이주영 국회의원이 최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서 제출받은 국내 혈액암 치료제 급여 환경 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근 3년(2022년~2024년)간 심평원 암질환심의위원회(암질심)에 상정된 혈액암 치료제는 총 13개인데, 이 중 최초 심의에서 급여기준이 설정된 사례는 단 2건에 불과했다.

85%(11개)가 첫 심의에서 탈락한 것이다. 또한 최초 심의에서 급여기준이 미설정된 11개 품목 중 6개는 현재까지도 건강보험 비급여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우리나라는 약제 건강보험 급여 평가에 있어 해외 8개국(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일본, 캐나다)의 약가를 참조한다.

그러나 심평원이 제출한 주요 혈액암 치료제 지원 현황을 보면, 미국이나 영국, 일본에서는 급여 등재되거나 지원 비용이 지출되는 치료제인데도 우리나라에서는 급여가 이뤄지지 않은 사례가 여럿 나타났다.

이주영 의원은 “정부의 혈액암 치료에 대한 인식과 환자들을 위한 지원 환경은 세계 최고 수준의 암병원을 3군데(뉴스위크 선정)나 보유한 ‘K의료’의 명성과 어울리지 않는다”며 “약가 참조국 다수가 급여로 지원 중인 약제를 국내에서만 장기간 비급여로 방치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렇다면 참조국으로부터는 대체 무엇을 참조하고자 하는 것인지 정부에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혈액암 치료제 첫 관문 암질심 위원 구성부터 개선해야”

이 같은 혈액암 치료제 급여 지연에 대해 전문가들은 급여 첫 관문인 암질심 위원 구성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고형암(위암, 대장암 등) 계열 위원이 다수를 차지하기에, 보다 합리적인 혈액암 급여 기준 설정 심의를 위해서는 혈액암 전문가들의 비중이 높아져야 한다는 의견이다.

물론 심평원이 개선 목소리를 수용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올해 2월 개편된 10기 암질심은 대한의학회장 추천 전문가 9명을 전문학회장 추천 임상전문가 25명으로 변경하고, 심사평가원 약제관리실장과 고형암·혈액암 약제심사 담당 진료심사평가위원회 심사위원을 추가했다. 또한 회의 참석 인원도 기존 18명에서 25명으로 늘리고, 전문학회장 추천자도 9명으로 문호를 넓혔다.

그러나 위원 구성의 불균형은 여전하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대한혈액학회 이사장인 김석진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개편 이후에도 42명의 위원들 중 6명 정도만 혈액암 전문의였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암질심에서 전체 심의되는 건을 보면 고형암 제제와 혈액암 제제의 심의 대상 약제 비율은 2대 1 수준”이라며 “혈액암 비율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으나, 심의 위원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굉장히 적다”고 했다. 고형암에 비해 혈액암 심의에서 불리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또한 김 교수는 “혈액암은 질환의 빈도는 상대적으로 덜하더라도 병의 종류가 더 많다”며 “림프종을 전문적으로 진료하는 의사는 백혈병에 대해 상대적으로 모르는 편이다. 이렇게 세분화되는 혈액 질환 특성을 고려할 때에도 위원 수가 적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이어 김 교수는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을 토대로 급여 설정을 하려면 효율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그러려면 전문적 지식과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급여 심의를 더 세밀하게 할 수 있는 세부 전문가들이 필요하다”며 혈액암 전문 심의위원 비중 확대와 혈액암과 고형암 약제 구분 심의를 제안했다.

김 교수는 심의 위원 구성 개선뿐만 아니라, 급여 때 유연한 본인부담 비율 적용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무조건 본인부담 수준을 5%에 맞추면 아무래도 급여 심의 통과가 어려울 수 있다”며 “(혈액암 급여 지연을 해결하려면) 20%에서 때로는 30%로도 유연하게 본인부담 수준을 늘리는, 그런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조혈모세포 이식 후 합병증, 신약 치료 어려움"

혈액암으로 인한 합병증도 치료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혈액암 치료를 위해 항암 이후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는 환자의 주요한 사망 원인 중 하나는 이식편대숙주병이다. 이는 혈액암 환자가 조혈모세포를 이식받은 후 수혈된 림프구가 면역 기능이 저하된 환자의 신체를 공격해 전신 염증 반응, 장기 손상 등의 합병증을 일으키는 질환이다.

이식편대숙주병 진료 환자는 2023년 기준 633명인데, 이중 현행 치료로는 방법이 없어 새로운 치료제 사용이 필요한 환자는 약 35%에 이른다. 이 경우 중증의 환자와 의료진은 국내에 공급되지 않는 약제를 구하기 위해 개별적으로 한국희귀의약품센터를 통해 수입을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이주영 의원은 “혈액암 치료제를 비롯해 혈액암 환자들이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은 후 겪게 되는 ‘이식편대숙주병’과 같은 희귀 합병증에 대한 치료 접근성 개선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현행 제도상 암에도 희귀질환에도 해당하지 않아 신약 접근성이 저해되는 ‘이식편대숙주병’ 환자들은 물론 다른 암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혈액암 환자들이 더 이상 소외되지 않도록 혈액암 치료 환경 전반의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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