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FC 마스코트 할아버지의 성공비결
[이성주의 건강편지]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KFC는 하얀 양복에 지팡이를 든 할아버지가 마스코트이지요? 1890년 오늘(9월 9일) 미국 인디애나주 헨리빌에서 그 마스코트의 실존 인물인, KFC 창업자 할랜드 데이비드 샌더스가 태어났습니다.
샌더스의 삶은 시련의 연속이었습니다. 다섯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등지고, 어머니가 재혼했지만 계부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함께 도망쳐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통조림 공장에 나갔고 샌더스는 어린 동생들을 돌보며 농장, 전차 등에서 일했습니다. 16세 때는 나이를 속여 육군에 입대해 쿠바에서 근무합니다. 전역 후 철도회사를 돌아다니며 온갖 일을 했고 보험상품, 타이어, 램프 등을 팔기도 했습니다.
40세 때 석유회사 쉘의 제안을 받아들여 켄터키주 노스코빈의 국도변 주유소에서 임대료 없이 수익금의 일부를 내는 조건으로 식당을 냅니다. 처음엔 햄 스테이크와 치킨 등을 함께 팔다가 치킨 요리로 유명해집니다. 유명 요리평론가로부터 맛집으로 선정됐고 켄터키 주지사로부터 ‘대령(Connel)’이라는 명예 호칭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939년 식당이 화재로 불타서 노스캐롤라이나주 애쉬빌로 옮겨야 했습니다. 그곳에서 압력 튀김 방식과 독특한 비밀 소스를 완성했고, 치킨 맛으로 성공하려는 순간 하늘이 또 시련을 안깁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휘발유 배급제가 실시되고 여행객들이 줄어들면서 식당에 딸린 모텔을 폐업하고 경제적으로 곤란을 겪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의 식당이 있는 도로를 대신할 새 고속도로가 만들어지며 손님이 뚝 떨어졌고 결국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1952년 샌더스는 사업가 피트 하먼과 함께 마침내 KFC 1호점을 엽니다. 켄터키가 아닌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서. 하먼은 떼돈을 벌었지만, 샌더스의 것은 아니었습니다.
샌더스에겐 낡은 트럭과 월 105 달러의 사회보장금이 전부이다시피였지만, 자신의 치킨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믿고 다시 도전합니다. 그는 3년 동안 자신의 ‘식당 트럭’을 운전해 전국을 돌며 투자를 유치합니다. 사람들은 ‘노인의 꿈’을 믿지 않아, 샌더스는 무려 1008회 퇴짜를 맞습니다. 1009번째 웬디스의 창업주인 토머스가 자기 식당에서 샌더스의 요리법으로 만든 치킨을 팔며 치킨 한 조각에 4센트의 로열티를 지불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습니다. 그 수익금을 바탕으로 사업을 확장합니다. KFC는 주인이 바뀌긴 했지만, 아직까지 샌더스를 모델로 내세우며 세계 150여 나라에 3만 개의 레스토랑을 갖춘 대형 기업으로 성장합니다.
미국의 IT 투자가 겸 컨설턴트인 벤 호로위츠는 저서 《하드씽》에서 “얼마 정도 성공한 사람에게 비결을 물으면 각기 자신만의 장점을 열거하지만, 크게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똑같은 말을 한다. 그것은 ‘끝까지 버텼다’이다”고 말했는데, 샌더스의 삶도 끝까지 버텨 성공한 삶이죠?
물론, 버틸 때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야겠죠? 샌더스는 말합니다. “모든 실패는 더 나은 것을 위한 디딤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라고. 여러분은 성공을 위한 실패를 되풀이하고 있나요? 실패가 두려워 도전을 망설이고 있지는 않겠죠?
보사노바는 브라질에 뿌리를 둔 재즈를 가리키는 말이죠? 주말에 보사노바를 세계로 퍼뜨리는 데 기여한 가수 세르지우 멘지스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세르지우 멘지스와 브라질 66의 ‘Mas Que Nada(뭐야, 말도 안돼)’ 들어보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