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에 아프면 큰일”... 필수의료 의사들의 가혹한 현실은?
[김용의 헬스앤]
집안 어르신께 안부 전화를 드리면서 “아프지 마세요. 요즘 아프면 큰일납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그래 잘 알고 있어. 요즘은 응급실도 못 가잖아”라는 답이 돌아왔다. 신문-방송 등를 통해 ‘응급실 대란’ 얘기가 자주 나와 상황을 대충 이해하고 있는 듯했다.
최근 ‘아프지 마세요“가 인사말이 된 느낌이다. ”건강 조심하세요“에서 한 발 더 나간 말이다. 모든 사람의 소망은 아프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건강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아프지 말라‘고 인사말을 한다. 한밤 중에 갑자기 아프면 응급실 치료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 일 것이다.
정부, 응급실 우려에 각종 대책 쏟아내... 군의관까지 투입
정부가 최근 응급실 의료 공백 우려가 커지자 각종 대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군의관과 공중 보건 의사를 파견하기로 한 것도 그 중 하나다. 의료 인력 부족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응급실 상황을 일부 인정한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2일 브리핑에서 “응급 의료 역량을 종합적으로 볼 때 일부 어려움은 있지만, 붕괴를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라며 ’응급실 위기설‘을 반박했다. 전공의 이탈 등으로 응급실 근무 의사가 평시 대비 73.4% 수준이지만, 근무 인원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응급의학 의사의 고단함... 환자는 경증, 중증 판단할 능력 없어
한밤 중에 갑자기 응급상황을 맞은 환자와 가족들은 속이 타들어간다. 갑자기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면 뇌졸중(뇌경색-뇌출혈)을 의심할 수 있다. 생명이 위태롭고 대처가 늦으면 한쪽 몸의 마비, 언어 장애 등이 평생 남을 수 있다. 화장실 가다 넘어져 이마에서 피가 흐르면 “뇌에 이상은 없나...” 당황하기 마련이다. 스스로 경증, 중증을 판단할 지식도, 경황도 없을 것이다. 119와 응급실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우여곡절 끝에 ’운좋게‘ 응급실에 도착하면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응급실은 ’안심‘ ’환자 살리기‘ ’환자 보호‘라는 말이 어울리는 곳이다.
최근 응급실 문제가 부각되면서 응급의학 의사의 고단함이 다시 주목되고 있다. 생명을 살리는 필수의료의 최전방에 있는 응급의학의 어려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오래 전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된 문제점이 전공의 이탈, 추석이 겹치면서 새삼스럽게 조명되고 있다. 응급의학 의사는 명절이 더 바쁘다. 명절 연휴로 진료를 쉬는 대형병원들이 많기 때문이다. 밀려드는 응급 환자를 돌보느라 부모님께 추석 인사도 제대로 못할 때가 있다.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지만 정작 본인들의 몸은 성한 데가 없다.
누적된 필수의료 문제점 고스란히 드러나... 혈관 수술 전문의가 없다
응급실 문제가 집중 조명되면서 그동안 누적됐던 필수의료의 여러 문제점들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응급의학 의사가 밤을 꼬박 새며 성공적으로 응급처리를 해도 더 큰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다. 급사나 장애 위험이 높은 뇌졸중의 경우 빨리 신경외과 전문의에게 수술을 받아야 한다. 마취과 의사도 있어야 한다. 또 다른 응급 환자를 돌보던 응급의학 의사는 그 바쁜 와중에 뇌혈관 전문의를 찾느라 전화 통화에 매달린다. “수술이 가능한 전문의가 없다”는 답이 돌아오면 무력감이 밀려온다. 이처럼 응급실을 거쳐 해당 전문의에게 넘기는 ’배후 진료‘가 어려워진 점도 응급실 운영의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정부 당국자도 “현재 당면한 응급의료의 문제는 오랜 기간 의료개혁이 지체되면서 누적된 구조적 문제”라고 인정했다. 의대 증원 문제로 전공의가 떠나면서 여러 과의 전문의들이 당직을 서기 힘들어졌다. 밤을 꼬박 새면 다음날 다른 환자를 살필 수 없기 때문이다. 생명을 살리는 필수의료 의사들의 피로도는 높아져 가고 있다. 정밀한 혈관 수술은 최상의 컨디션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요즘은 ’컨디션‘을 살필 여유조차 없다. 병원 가까운 곳에서 대기하며 주말-퇴근 후에도 긴급호출에 지체 없이 대응할 수 있는 ’온콜‘(on-call) 상태다. 모처럼 가족과 식사 중이라도 병원으로 직행해야 한다.
너무 늦은 수가 인상... 필수의료 보호 정책 일찍 서둘렀어야
정부는 응급 의료 인력 유출을 방지하고 후속 진료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건강보험 수가를 조속히 개선하겠다고 했다. 응급실 전문의 진찰료 250% 가산, 후속 진료인 수술·처치·마취 행위에 대한 200% 가산 얘기도 나왔다. ’만시지탄‘이다. 일에는 알맞은 때가 있다. 휠씬 지나서 대책이 나오니 안타까운 탄식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의대 정원 증원에 앞서 필수의료에 대한 수가 대폭 인상, 불가항력적인 의료 사고에 대한 정부 지원 등 지원책을 미리 강구해 두었더라면 의대 증원 정책 집행에 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
의대 정원이 크게 늘어나도 의사들이 여전히 필수의료, 지역의료를 기피한다면 그 효과는 줄어들 것이다. 힘들고 돈이 덜 되는 분야를 기피하는 것은 의료계의 문제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이 그렇다. 취업난 시대지만 이른바 3D 업종은 구인난으로 신음하고 있다.
한밤 중에 수술하고 의료사고에 마음 졸여야 할까?
전문의 면허 없이 일반의로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데, 밤을 새며 수술하고 의료사고에 마음 졸이는 분야에 누가 지원하겠는가. 그동안 일부 의사들은 비급여(건강보험 미적용) 치료로 돈을 벌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가가 워낙 낮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를 조속히 개선해야 했다.
이 글을 쓰는 나도 갑자기 아프면 병원에서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 이번 추석 연휴에는 횡단보도도 더 조심해서 건너야겠다는 마음 뿐이다. 골다공증이 있는 사람은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본인에겐 아주 위태로운 상황이지만 어느 응급실에서 받아줄 것인가. 각자도생, 제각기 살아 나갈 방도를 꾀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