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 7시간 하는 우리 아이, 혹시 천재?...전문의가 말하는 진짜 '집중력'은?
[인터뷰] '집중력의 배신' 저자 한덕현 중앙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아이가 블록놀이를 6~7시간씩 해서 아이 집중력이 좋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이 있어요. 그렇지만 진짜 집중력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보단) 싫어하는 행동을 잘 견디고 오래 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집중력의 사전적 의미는 '마음이나 주의를 집중할 수 있는 힘'이다. 우리는 집중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어떠한 일에 몰두한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또 그 일을 오래 지속했을 때 집중력이 좋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장난감 놀이를 몇 시간이고 하는 아이, 컴퓨터 게임을 오래하는 아이도 집중력이 좋은 것일까.
한덕현 중앙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결과가 없는 집중력은 충동일 뿐"이라는 점을 신간 « 집중력의 배신»에서 강조하고 있다. 한 교수는 즐거움을 얻는 속도가 과거에 비해 지나치게 빨라진 현대 사회 속 '몰입'과 '중독'을 구분하며 집중력의 의미를 재정의한다. 그가 말하는 진짜 집중력은 무엇이고 이를 기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코메디닷컴 취재진이 한덕현 교수와 직접 만나 물었다.
-몰입과 중독, 비슷한 듯 다른 느낌인데, 어떤 차이가 있나요?
둘 다 뭔가를 열심히 하고 오래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죠. 하지만 몰입은 내 주관이 매우 강해요. 능동적이고요. 근데 중독은 상당히 수동적이죠. 마약이나 술에 한 번 중독되면 계속 그 물질에 끌려 다니는 것처럼 의존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몰입은 내가 재미가 있고, 어떤 결과를 얻고 싶어서 한다는 그런 능동적 사고가 포함된 것이죠.
-한교수께서 말하는 집중력이란 무엇입니까?
의학적으로 얘기하는 집중력은 '내가 싫어하는 것을 잘 견딜 수 있는 능력'이에요. 블록을 6~7시간 조립한다고 해서 그 아이가 집중력이 좋다고 할 수 없는 것이죠. 오히려 일상 생활을 규칙적으로 잘 지키는 아이들이 훨씬 더 집중력이 좋아요. 내가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양치하고 언제 밥 먹고 학교 가기 위해 몇 시까지 준비하고 등등... 그 다음 일이 마치 계획한 듯 따라오고 또 계획이 시작돼서 3~4가지 일을 함께 하는 '멀티태스킹', 이런 게 우리는 집중력이 좋다고 얘기해요. «집중력의 배신»은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죠. 나는 내가 집중력이 좋다고 믿고 있었지만 그런 게 아니게 된 거죠.
-집중력을 높일 방법이 따로 있나요?
남들이 하는 정도를 반복한다고 해서 집중력이 좋아지진 않을 거 같아요. 나만의 방법이 꼭 있어야 될 것 같은데요. 어떤 사람이 2시간 앉아 있는다고 해서 나는 1시간밖에 못 앉아 있는데 그걸 그대로 따라가려고 하면 안 된다는 거죠. 차라리 1시간 앉아 있다가 10분 쉬고, 다시 공부하고 이런 방법으로 자신만의 방법을 만들면 될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게임 중독은 질병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어떤 것을 중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에는 기준이 있어요. 마약이나 알코올 같은 갈망(계속 하고 싶어하는)이 먼저 있고, 그 다음엔 내성이에요. 예전에는 술 1병 먹고 기분 좋았는데 그게 2병이 되고 4병이 되고 이런 식이죠. 마지막은 금단현상이에요. 못하면 막 가슴이 뛰고 눈에 헛것이 보이고. 그런데 게임은 이 세 가지와 거리가 아주 멀어요. 게임을 못해서 금단 현상이 나타난다고 하는데 게임 하는 행동 자체에 어떻게 금단증상이 있을 수 있겠어요.
-게임을 많이 해서 병원을 찾은 아이의 처방은 어떻게 하나요?
게임을 못하게 하는 약은 없어서 결국 처방도 없어요. 다만 게임을 많이 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공존 질환이 있어요.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아이들이 특히 게임을 많이 해요. ADHD 약물 치료를 하기도 하고, 우울증이 있는 아이들은 우울증약, 불안장애 있는 아이들도 있고요. 약물 치료를 하면서 하루 일과를 규칙적으로 만드는 치료를 병행해요. 이때 게임하는 시간도 정하는 거죠. 보통 집에서 게임 몇 시간만 딱 하라고 정해주거든요. 이건 좋은 방법이 아니에요. 차라리 2~4시, 6~8시 이렇게 게임을 하는 시간을 블록으로 정해서 그 시간에만 하게 권고하고 있어요.
-게임을 많이 하는 것을 넘어 은둔형 외톨이가 된 사람은 어떤 치료가 필요할까요?
은둔형 외톨이가 된 사람 중에는 진짜 사람을 싫어해서 안 만난다는 경우보다는 대인관계를 갖고 싶지만 방법을 몰라서, 혹은 거절이 두려워 못 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아요. 그래서 대인관계 훈련이나 사회화훈련 그런 거를 병원이나 상담센터에서 해주기도 하고, 서울시도 지원 사업을 하고 있더라고요. 또 하나는 직업이에요. 직장을 갖고 직업활동을 하면서 주변 사람과 어떤 목적성을 갖고 사회관계를 만드는 시도도 좋은 방법이에요.
-요즘 '도파민'이란 말을 유행처럼 쓰고 있어요. 이는 나쁜 물질인가요?
요즘 재밌는 거만 했다 하면 '도파민 뿜뿜'이란 말을 써요(웃음). 그런데 도파민은 우리 일상생활에서 얘기할 때도 나오고, 공부할 때, 게임할 때 인간이 행동하는 모든 것에 분비되는 물질이에요. 그런데 코카인 같은 마약을 할 때는 도파민이 100배, 심지어 1000배 이렇게 나와서 환각을 일으켜요. 도파민이 이렇게 극단적으로 나와야 환각이 나온다는 거지, 일반적으론 문제가 있는 물질이 아닙니다.
-도파민을 집중과 몰입에 잘 활용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집중력을 강화하려면 도파민이 필요해요. 오히려 도파민이 적으면 주의력이 떨어져요. 도파민을 잘 활용하려면 결국 계획과 목표 잡기가 중요해요. 내가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 목표가 있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어떤 계획을 잡느냐가 관건이죠. 결국 세부 목표와 계획이 있을 수록 집중력이 높아지고 집중력이 올라가니 거기에 따르는 도파민도 많이 나오겠죠.
-요즘 뜨는 '유튜브 숏츠(30초~1분짜리 영상)'와 도파민 연관성이 있나요?
딱히 없어요. 뭐 숏츠를 많이 본다고 해서 도파민이 많이 분비되고 그런 것은 아니에요. 다만 우리가 2시간짜리 영화를 보는 것에 비해 숏츠를 보는 것은 남이 정한 정도의 기쁨과 스토리만을 즐기는 거잖아요. 긴 스토리를 가진 영화나 책을 읽는 것보다는 확실히 순간적인 쾌락이나 감정을 느끼는 게 좀 더 강하겠죠.
◆한국 '스포츠 정신건강의학' 개척...파리올림픽 국대 멘탈 코칭도
한 교수는 아동 청소년 중독 치료 전문가이기도 하지만, 국내에서 스포츠 정신건강의학 분야를 개척한 인물이기도 하다. 프로야구 구단의 전속 스포츠 심리 닥터로도 활동했으며 축구와 농구, 골프, e스포츠 분야에서도 심리 자문과 상담을 이어가고 있다. 한 교수는 이달 개막하는 2024 파리올림픽에서도 활동할 예정이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마음 건강 챙기기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이미 지난 달부터 파리올림픽 출전 국가대표 선수와 지도자를 대상으로 이번 올림픽이 종료할 때까지 정신건강 상담과 심리지원 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스포츠 정신의학'이란 어떤 분야인가?
국내에는 아직 낯설 순 있지만 해외에선 오래전부터 있던 의학 분야입니다. 스포츠의학처럼요. 일반적으로 정형외과 선생님들이 신체적인 치료를 담당한다면 저희는 정신의학이니까 선수들 '멘탈', 마인드(마음)를 관리하죠.
-올림픽을 앞두고 선수들은 어떤 어려움을 갖고 있나요?
보통 사람들이 갖고 있는 똑같은 어려움을 겪어요. 우리들이 가진 뭐 가정적인 어려움, 직업적인 어려움 등이죠. 또 경쟁을 하는데 경쟁에 대한 부담감도 있고, 경쟁이 일어나고 난 다음 결과에 대한 중압감 그런 것들도 있어요.
-멘탈 코칭은 어떤 식으로 진행하나요?
'하던 대로 그냥 하자' 이게 우리 모토예요. 그러니까 더 못하려고 하지도 말고 더 잘하려고 하지도 마라, 네가 지금까지 해온 만큼 그 실력껏 하라고 말해주죠. 그러면 큰 부담에 빠진 선수들이 많이 위로를 받더라고요. 선수들은 내가 평소 하던 것보다 훨씬 더 큰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압박이 커요. 그래서 그게 아니라 죽을 만큼 피땀 흘려서 지금 실력을 만들었으니 그걸 발휘하자, 그렇게 말해주면 선수 부담감이 덜해지죠.
-원하는 결과를 이루지 못했을 때 그 부담감이 상당할 것 같은데, 그에 대한 코치는?
결국은 결과를 보지 말고 과정을 보라고 얘기해줍니다. 그 과정을 선수가 계속 인지하고 있어야 성공할 수 있는 것이고 실패하더라도, 실패 과정을 발판 삼아 어떻게 성공할 수 있는지 대책이 나오는 거잖아요. 근데 과정에 집중하지 않고 어떻게 행동했는지 모르면 성공을 하더라도 다시 성공할 수 없고, 마찬가지로 실패해도 어떻게 했는지 모르면 그걸 발판 삼아 성공할 수도 없는 거거든요.
-은퇴 시기에 대한 고민을 토로하는 선수들도 있을 것 같아요.
대부분 운동을 오래 하고 싶고 잘하고 싶잖아요. 은퇴 시기를 자기가 결정하는 건 진짜 어려워요. 저는 그 선수가 기준을 잡는 것을 도와줘요. 당신이 생각하는 운동을 잘한다의 기준이 뭐냐, 그 잘한다는 그 기준을 만족할 수 있는 퍼포먼스는 어떤 거냐, 그리고 이를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느냐, 이런 식이죠. 끝으로 그게 유지가 안 된다면 은퇴를 하는 거냐, 이렇게 기준을 마련하게 해주는 거죠.
-«집중력의 배신» 이후 후속 저서 계획이 있나요?
이번 파리올림픽과 관련해 스포츠 정신의학에 대한 책이 곧 나올 예정이에요. 제가 여태 운동선수를 상담했던 사례집이죠. 쇼트트랙 김아랑 선수와 함께 썼어요. 제가 김 선수랑 만난 지 10년이 넘었거든요. 그 선수가 처음 저와 만났을 때부터 어떻게 커 가고 어떤 이야기를 했고 그 사람이 잘했던 것 못했던 것 등등을 책으로 엮었습니다. 이르면 7월 말에 나올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