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디서 세상을 떠날까?... 요양시설 vs 정든 우리집
[김용의 헬스앤]
삶의 마무리를 ‘인간답게’ 하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될까? 정든 집에서 세상을 떠나는 것은 ‘허황된 욕심’일까? 오랫동안 살았던 내 집에서 임종을 맞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 사람의 70~80%는 병원이나 요양시설에서 생을 마감한다. 사랑하는 가족들 곁에서 죽음을 맞는 것도 힘들어지고 있다. 병원-요양시설 측의 “위독” 전화를 받고 급하게 가다 차 안에서 사망 소식을 듣는 경우도 있다.
정부가 존엄한 죽음을 위해 병원-요양병원에 ‘임종실’ 설치를 의무화하고 이에 대한 수가(건강보험 적용)를 신설해 지원하기로 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7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열어 8월 1일부터 300병상 이상의 종합병원과 요양병원은 1개 이상의 임종실을 반드시 설치하도록 했다. 그동안 꽤 큰 병원에서도 임종실이 따로 없어 수많은 환자들이 입원한 어수선한 다인실에서 임종을 맞는 경우가 많았다. 이미 임종실이 있더라도 1인실에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부담이 상당했다. 수가 신설로 임종실 이용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일생을 가족 위해 헌신한 사람들... 마지막 시간은 ‘존엄’이 없다
지금의 중년, 노년층은 온몸을 바쳐 가족들을 부양해온 사람들이다. 가장으로서, 엄마로서 평생을 가족을 위해 헌신했다. 이제 좀 쉴 만 할 때 손주를 돌보는 사람도 있고, 갑자기 찾아온 암, 심장-뇌혈관병으로 고생하기도 했다. 이런 분들이 생을 마무리하는 곳은 ‘존엄’과는 거리가 멀다. ‘시장 바닥 같다’는 말은 다소 과장된 표현이지만 다른 환자들이 고통으로 신음하는 병원 다인실에서 숨을 거둬야 했다. 돈이 없다는 이유로 임종까지도 차별을 받은 것일까?
온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집 안방에서 임종을 맞는 것은 이제 TV 드라마나 영화 속 이야기로 남을 것 같다. 나이 들어 아프면 평생 살아온 집이 그립다. 손때 묻은 가재도구도 생각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임종을 맞고 싶어한다. 하지만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가정에서 죽음을 맞은 국민은 16.1%(2022년 기준)에 불과했다. 환자가 원해서 집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병원으로 옮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역시 집에서 환자를 돌 볼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 그대로 가족이 장기간 간병을 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특히 환자의 건강 상태가 급속이 악화되면 대부분 병원과 요양병원으로 옮길 수밖에 없다. 집에서 임종을 맞는 것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병원에서의 임종이 불가피하다면 존엄한 죽음을 위한 시설을 마련해야 한다. 병원-요양병원에 ‘임종실’을 설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간병을 국가의료 시스템으로”...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최근 간병비를 건강보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개인이 힘들게 하는 간병을 국가의료 시스템에 포함시켜 간호사 등 전문 인력이 체계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정부가 지원하는 간병 시스템이 정착되면 개인이 겪는 경제적 고통과 갈등을 줄여 명실상부한 사회보장, 복지국가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역시 막대한 비용이 문제다. 최근 의대 증원 이슈를 통해 필수의료 분야의 낮은 수가가 부각되고 있는 상황에서 건강보험이 간병비까지 떠안으면 막대한 재정 적자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최근 무의미한 연명치료(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며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사람들이 230만 명을 넘어섰다. 임종 과정에서 인공호흡기 등을 주렁주렁 달고 연명하지 않겠다는 사람들이다. 법적으로 연명의료 중단에는 2가지가 필요하다. 연명의료를 거부한다는 환자의 의사 표시와 함께 이 환자가 임종기에 있다는 2명 이상 의료진의 판단이 있어야 한다. 다만 현장에선 말기와 임종기의 구분과 판단에 어려움이 있다. 지난 4월 보건복지부는 국가호스피스연명의료위원회를 열어 연명의료 중단 시기 조정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임종에 임박해서야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경우가 많아 도입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는 현장의 의견이 많다.
일상의 고단한 삶.... 나는 품위 있는 죽음까지 생각할 수 있을까?
50~60대 부부에겐 간병, 연명의료 문제가 눈앞의 현실이다. 80세 중반을 넘은 양가 부모님이 투병 중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들 부부는 간병, 연명의료는 “곧 내 문제”라는 것을 잘 안다. 고민 끝에 80대 부모님을 요양병원으로 모신 이들은 머지않아 자신의 요양병원 행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맞벌이에도 삶이 고단한 젊은 자녀에게 도움을 기대할 순 없을 것이다.
내가 삶을 마무리 할 곳은 어디인가... 요양시설? 수십 년 이상 살았던 우리집? 이런 고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편에 속한다. 일상의 고단한 삶에 찌들어 품위 있는 죽음까지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