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 수술용품·시약 수요 '반토막'...영업사원들은 '죽을 맛'

수액제 지혈제 유착방지제 거즈 마취제 진통제 등 큰 타격

 

병원에서 접수를 기다리는 환자들. 사진=천옥현 기자

“죽을 맛이에요. 매출은 떨어지는데 분위기가 안 좋으니 교수님들에게 섣불리 다가가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병원을 배회하면서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를 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며칠 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난 수술용 의료기기 영업사원은 힘이 쪽 빠진 말투로 어려움을 내뱉었다. 그는 장기간에 걸친 전공의들의 이탈로 수술과 입원, 외래 진료가 줄어드는 바람에 자사 의료용품 매출이 크게 타격받았다고 했다.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걸 짐작하면서도 매일 병원을 찾는다는 그는 아는 얼굴이 있을까 한참은 서성거렸다.

대학병원들의 파행 운영이 넉달 이상 이어지면서 상당수 의료기기회사와 제약회사들이 심각한 매출 타격을 겪고 있다. 특히 전공의들이 떠받치던 응급센터와 수술실의 가동률 하락에 따른 피해가 큰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일단 수술 관련 소모품과 의약품 매출이 확 줄었다. 병원들의 수술실 축소 운영으로 수술 건수가 대폭 감소했기 때문이다. 수술 전후에 쓰이는 지혈제, 유착방지제, 거즈, 봉합사, 마취제, 진통제, 수액제, 항생제 등의 수요가 급감했다.

실제 마취·마약성 진통제를 주력 제품으로 갖고 있는 하나제약의 지난 1분기 마약·마취 품목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5%가량 감소했다. 이에 더해 대학병원 파행 운영이 확대된 2분기 실적은 더 큰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관측된다.

한 제약회사 관계자는 “대학병원급에만 들어가는 항생제나 암 수술 후 쓰이는 항구토제, 입원실 수액제 같은 품목은 수술과 입원이 줄어들다 보니 타격이 큰 것 같다”고 말했다.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난 또 다른 의료기기회사 관계자는 “수술이 많이 줄고, 신규 환자도 감소하다 보니 매출은 반 이상 깎였다”며 “서울대병원 쪽은 기존 대비 30% 수준으로 떨어졌고, 다른 병원들은 40%를 겨우 유지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는 “상황이 더 장기화하면 글로벌 회사들은 어떻게든 버티겠지만 국내 작은 회사들은 답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응급센터에서 쓰는 용품들 수요도 크게 줄었다. 드레싱 재료부터 정맥카테터, 수액세트, 거즈 등 소모품 사용이 대폭 감소했다는 게 대학병원 측의 설명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품목 별로 차이가 있겠지만 응급실 소모품들은 평균 50% 정도 사용이 감소했고, 심한 것은 80%까지 매출이 꺾였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산업계의 피해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그는 “그나마 의료진이나 간호사 등은 목소리라도 낼 수 있지만, 아무 소리 못하는 제약회사나 의료기기회사들이 초토화된 상황이라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분석용 시약 회사들도 한숨을 내쉬고 있다. 혈액 분석 등 각종 검사에 시약이 사용되는데 응급실과 수술실 가동률 급락으로 검사도 줄면서 시약 사용이 덩달아 감소했기 때문.

한 시약회사 대표는 "전공의 사태가 시작된 2월 이후 지금까지 시약 공급이 많게는 50%, 적어도 20% 이상 감소했다"며 "전공의들이 복귀하지 않는다면 이 추세가 연말까지 갈 것같다"고 걱정했다.

    천옥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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