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갈등 최고조...정부 외국의사 도입 vs 의대교수 집단휴진
尹 "의료계 통일안 없어 대화 걸림돌"...의료계 "원점재검토가 통일안"
정부의 의대 2000명 증원으로 촉발한 의정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재차 정부의 의료개혁 의지를 피력했지만, 2025학년도 대학 입학계획 확정 시일이 다가오면서 대학가와 의대 교수들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9일 윤석열 대통령은 2주년 기자회견에서 "의대 증원을 포함한 의료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며 "정부는 생각해 온 로드맵에 따라서 뚜벅뚜벅 국민을 위한 의료개혁의 길을 걸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의사 2000명을 증원한 것이 아니다"라며 "의대 증원을 포함한 의료개혁은 정부 출범한 직후부터 다뤄왔다"고 강조했다.
의료계 "원점재검토가 통일안"...주1회 휴진 등 정부 압박
특히 이날 윤 대통령은 "1년 넘게 협의를 진행하는 동안 한 번도 (의료계의) 통일된 의견을 (정부가) 받아본 적이 없다"면서 "대화의 걸림돌"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의료계에선 '원점 재검토가 통일안'이라며 이를 반박했다.
최창민 전국 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 위원장은 "의료계에 통일된 안이 없는 게 아니다"며 "의료계는 의대 증원 절차를 멈추고 의정협의체를 통해 의대 정원을 내년에 정하자고 계속 밝혀왔다"고 말했다. 강희경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 역시 "의료계의 통일된 요구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원점 재검토"라고 강조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대통령 발언에 대한 공식 입장을 오는 10일 내겠다는 계획이나, 앞서 여러 관계자는 '원점 재논의'를 재차 요구해 왔다. 의협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을 맡았던 가톨릭중앙의료원 김성근 위원장은 지난달 30일 한 심포지엄에서 "원점 재논의는 의료계의 단일안이라고 한 달 동안 목이 터져라 계속 외쳤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면서 "그런데도 정부는 계속해서 단일안이 없다고 얘기한다"며 "의료계는 단일안을 내놨는데 그게 아니라고 하면 누구랑 말을 하겠느냐"고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의료계에서는 과학적 추계를 위한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서울대 의대·병원 비대위는 2026학년도 반영을 목표로 올해 대국민 공모와 연구 공모를 진행 중이며, 전의교협과 대한의학회는 '과학성 검증 위원회'(가칭)를 구성하고 검증보고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동시에 의대 교수들은 개별적으로 휴진에 나서며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앞서 전의비를 중심으로 주1회 휴진이 확산하고 있다. 오는 10일에도 전국 19개 의대 산하 병원 51곳 소속 교수들이 참여할 예정이다. 향후 정부가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을 확정하면 일주일간 집단 휴진 방안도 논의 중이다.
복지부, 외국의사 도입 초강수...의대 증원 학칙 개정은 또다른 암초
의대 교수들의 반발과 자발적 휴진 움직임이 커지면서 정부 역시 초강수를 뒀다. 전날 보건복지부는 외국의사 면허 소지자의 국내 의료행위를 허용하는 내용의 의료법 시행규칙 일부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보건의료 재난위기 '심각' 단계에 한해 복지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허용하는 방안이다. 종전 38개국 159개 의대 졸업생에 한정했던 것을 국가 관계없이 의사면허가 있다면 모두 가능하게 했으며, 국내 의사국가시험 관련 자격 요건도 면제한다.
해당 입법예고로 의료계의 반발은 더욱 거세지는 모양새다. 법정 의료단체인 의협에서도 곧바로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임현택 의협 회장은 "국민이 마루타(생체실험 대상)도 아니고, 제정신인가"라며 "한국 의료는 외국에서도 배우러 오는데, 날고 기는 한국 의사들 놔두고 이제는 저질 의료인을 데리고 오려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의대 증원 정책으로 약 80일 만에 국내 의료체계를 망가뜨려 놓았다"고 비판했다.
한편, 의대 증원분의 상당 규모를 배분받은 국립대에서도 내부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이달 중 내년도 입학계획을 확정하기 위해선 각 대학 내부에서도 이를 심의하고 학칙 개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전날 부산대와 제주대에선 교수회의와 대학평의원회가 학칙 개정안을 부결했고, 강원대 역시 관련 논의를 잠정 보류하고 다음 주 중 다시 심의하기로 했다. 전국 거점 국립대 10곳의 교수가 참여한 거점국립대교수회연합회도 추가적인 정원 조정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시국선언문을 발표한 상태다.
내년도 의대 입학정원이 늘어난 32개 대학 중 학칙 개정을 마친 대학은 현재 12곳에 불과하다. 이 중 국립대는 경북대와 전남대뿐이며, 10개 이상의 사립대 역시 학칙 개정 절차를 마무리하지 못했다. 교육 당국은 향후 학칙 개정 움직임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교육부는 고등교육법 제60조에 따라 시정명령과 행정조치 등을 내릴 수 있다는 방침을 전하며 향후 대학별 학칙 개정 상황을 관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