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뚝뚝한 남편이.. 아플 때 내 곁에 누가?

[김용의 헬스앤]

장기요양보험 서비스를 통해 간병, 목욕·식사 준비 부담을 덜고 남편, 아내는 서로에게 힘이 되는 대화만 나눌 순 없을까? 손만 마주 잡아도 치유 효과가 높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무뚝뚝하기만 했던 남편이 저를 헌신적으로 간병했어요...”

60대 중반의 여성 A씨는 뇌의 혈관이 막히는 뇌경색(뇌졸중)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하다. 한쪽 몸에 마비 증세가 있고 말도 어눌하게 한다. 자칫하면 혈관성 치매 위험도 있다. 그런 A씨의 곁을 지키는 사람은 70대 후반의 남편이다. 나이가 12세나 많고 평소 다정한 말 한 마디 없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병든 아내를 씻기고 머리도 정성껏 말려준다. 거의 하루 종일 아내를 케어한다. 음식 준비, 설거지, 청소 등 가사도 오롯이 남편의 몫이다. 그런데도 싫은 내색 한 번 없다. 여전히 말투는 살갑지 않았지만 아내를 화장실로 데려가는 손이 참 따뜻하다.

정년 퇴직 후에도 부부가 20~30년을 같이 지내야 하는 시대다. 남자가 여자보다 일찍 죽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격차는 갈수록 줄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남녀 기대수명 차이는 1985년 8.6년까지 벌어졌다 2020년에는 6년(남 80.5세, 여 86.5세)까지 감소했다. 이런 남녀 격차는 점점 줄어서 50년 후에는 3.3세로 좁혀질 것으로 전망된다. 술-담배를 절제하는 등 건강을 챙기는 남자들이 증가해 수명 연장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여자는 남자보다 6년 정도 더 살지만 그만큼 여러 질병으로 고통받는다. 우리나라 여자 치매 환자 수는 남자의 2배에 육박한다. 이를 폐경 후 사라지는 에스트로겐(여성호르몬)과 연관 짓는 시각이 있다. 남녀 모두 갱년기를 겪지만 골다공증 환자가 여자가 더 많은 것과 같은 맥락이다. 에스트로겐은 혈관, 뼈를 보호할 뿐만 아니라 치매 발생과 관련된 뇌의 신경세포도 보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보호막이 없어지면서 갱년기를 거친 여성의 혈관병, 골다공증 그리고 치매가 증가하고 있다.

뇌졸중이나 치매가 나타나면 요양병원을 떠올리지만 꺼림칙한 게 사실이다. 코로나19의 강도가 약해졌지만 요양병원-시설 등은 폐렴을 조심해야 한다. 여러 명이 입원해 있는 병실에선 뇌졸중, 치매로 들어왔어도 최종 사망 원인은 폐렴으로 진단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병이 깊어져도 요양병원은 꺼린다.  ‘현대판 고려장’이란 말은 코로나 유행 중에만 나온 말이 아니다.

암을 치료한 사람들 중 20%는 암 재발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수면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많다. 잠을 제대로 못 자면 면역력에도 영향을 미쳐 암 이외 다른 질병 위험도 높아진다. 암 생존자의 수면 장애 유병률은 남성(16.5%)보다 여성(20.3%)이 높았다. 여성 암 생존자 중에서 암 재발에 대한 두려움이 크면 클수록 수면 장애 위험이 1.5배 , 불안감은 1.8배 높았다(학술지 대한가정의학회지 자료). 그런데 배우자 또는 파트너와 함께 생활하면 수면 장애 위험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몸이 아프면 환자는 불안해 하고 두려워한다. 암이나 장애를 겪는 뇌졸중 환자는 더욱 심하다. 이 상황에서 남편, 아내와 같이 있는 게 엄청난 도움이 된다. 남편이, 아내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면 환자는 ‘이 사람에게 나는 의미 있는 존재’라는 느낌을 갖게 된다. 눈을 마주치고 손을 잡아주면 치유의 감정이 싹튼다. 환자의 상황과 감정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게 중요하다. 마음과 몸이 모두 약해진 환자의 생각과 기분을 있는 그대로 평가하지 말고 이해하려는 공감의 자세가 필요하다.

30~40년을 함께 한 배우자가 아프면 요양병원으로 가는 시대다. 남편, 아내는 싫어도 자녀 등 주위에서 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실 간병은 체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힘에 부치면 간병하는 사람도 골병이 들 수 있다. 그래서 대안으로 떠오른 게 요양병원이다. 노인들은 ‘요양병원’이란 단어를 쉽게 얘기하지 않는다. ‘그곳’이란 말을 쓴다. 그들은 ‘그곳’에 가면 어떤 상황에 처하는지 잘 안다. 부부에겐 영원한 이별 장소일 수도 있다.

지난해 장기요양보험 서비스를 이용한 사람이 100만 명을 넘어섰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2021년 노인장기요양보험 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장기요양보험의 요양 서비스를 신청해 수급권 인정을 받은 사람은 101만 9130명으로 나타났다. 장기요양보험은 65세 이상 또는 65세 미만 국민 중 노인성 질병(치매·파킨슨병 등)으로 6개월 이상 혼자 생활하기 어려운 사람에게 목욕과 간호 등 요양 서비스 비용을 지원하는 제도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신체 능력 등에 따라 심사를 진행, 필요한 경우 등급(1~5등급)을 부여한다. 등급에 따라 이용 가능한 서비스 범위가 달라진다. 서비스 유형별로 보면 가정 방문 요양, 주야간 보호 등이 있다. 심각한 치매 뿐만 아니라 가벼운 인지 장애, 가족의 상시 수발 필요 여부, 장거리 외출의 어려움, 목욕·식사 준비 도움 필요 여부 등을 살펴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를 위해 월급쟁이들은 매달 장기요양 보험료를 낸다.

사실 노인이 노인을 간병하는 ‘노-노 간병’은 의욕이 있어도 오래 하기 힘들다. 체력 부담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지 못해 요양병원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장기요양보험 서비스를 통해 간병, 목욕·식사 준비 부담을 덜고 남편, 아내는 서로에게 힘이 되는 대화만 나눌 순 없을까? 손만 마주 잡아도 치유 효과가 높다. 지난 코로나 유행 중 우리는 요양병원 면회 시 손도 못 잡고 두터운 유리벽 사이로 얼굴을 봐야 했다. 이런 비극이 없었다.

수십 년을 같이 산 아내, 남편이 아프면 곧바로 요양병원에 보내야 할까? 앞의 A씨 남편처럼 집에서 간병하는 배우자는 드문 사례일까? 100세 시대에 국가가 지원하는 간병 서비스가 대폭 확대돼야 한다. 국회-정부-지방자치단체가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나이 든 아내, 남편이 아픈 배우자를 두고 고민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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