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롱-거짓 속에서 큰길 갈 수 있을까?
[이성주의 건강편지]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는 잔뜩 찡그리거나 화 난 얼굴을 하고 있다가도 번개가 치면 웃는 표정을 짓는다. 번쩍! 사진을 찍는 줄 알기 때문에.
파리를 방문한 콜 총리가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과 함께 리무진을 타고 에펠탑 앞을 지나가다 물었다. “프랑스에서는 아직도 석유를 발견하지 못했습니까?” (에펠탑이 석유 시추 탑과 닮아서…)
콜 총리가 정원을 청소하다가 수류탄 세 개를 주웠다. 콜이 아내와 함께 수류탄을 경찰서로 가져가던 길에 아내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여보, 수류탄 하나가 쾅 터지면 어떡하죠?" 콜이 대답했다. "걱정 붙들어 매세요. 경찰에게 두 개만 주웠다고 말할 테니까."
콜 총리가 미국을 방문했다. 보좌관들은 미국 기자들을 조심하라고 경고했지만 콜은 “걱정마라”고 말했다. 콜이 뉴욕 JFK 공항에 도착하자 기자들이 질문 공세를 펼쳤고, 한 기자가 “뉴욕에서 스트립 바를 방문할 생각인가요?”라고 물었다. 콜은 잠시 뜸을 들인 뒤, 마치 금시초문인 듯 “뉴욕에도 스트립 바가 있습니까?”라고 되물었다. 다음 날 아침 미국의 일간지들은 다음과 같은 제목의 머리기사로 도배됐다. 미국 도착 콜 총리의 첫 질문, “이곳에 스트립 바가 있습니까?”
1930년 오늘(4월 3일) 독일 루트비히스하펜에서 경찰관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독일 통일의 아버지’ 헬무트 콜을 소재로 삼은 우스개이지요? 콜은 이런 유머뿐 아니라 ‘가짜뉴스’도 귓전으로 흘리고 자기 할 일을 한 정치인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콜은 193㎝의 키에 ‘공식 몸무게’는 120㎏였는데 실제로는 훨씬 더 나갔고 ‘큰바위얼굴’이었습니다. 카툰 작가들은 뚱뚱한 몸피에 배추나 배 모양의 얼굴로 묘사했지만, 콜은 개의치 않습니다. 콜의 지지자들은 희화화한 이미지를 사랑스런 상징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콜은 또 자신의 체중에 대해 “내 몸무게는 국가 기밀”이라고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17세 때 중도우파정당 기독교민주연합에 당원으로 가입해서 정치 경력을 쌓았던 콜은 기민련 콘라트 아데나워의 유럽 우선주의 외교 노선을 계승하면서도 사회민주당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을 기꺼이 이어받아 ‘독일 통일’을 완성했습니다. 그는 “독일 통일과 유럽 통합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말하며 유럽 통합에도 핵심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콜은 1989년 베를린장벽이 허물어지자, 독일 통일의 적기라고 판단해서 동·서독 국민을 설득하는 동시에 2차 세계대전 전승국과 폴란드 등을 안심시키려 전력합니다. 마침내 통일은 성공하지만, 통일의 과도기 진통 때문에 인기를 잃어 총선에서 참패한 뒤 총리직에서 물러나지요. 곧바로 정치 자금 문제가 터지고 ‘정치적 양녀’ 앙겔라 메르켈에게 ‘배신’당해 당에서 쫓겨납니다. 이때 세계대전 때 소련군에게 성폭행당하고도 꿋꿋이 살아가던 아내가 자살하는 아픔도 겪었지요.
콜은 몸이 거구였지만 마음도 컸던 것 같습니다. 남들의 비난이나 수군거림에 매여있지 않았습니다. 스스로도 “나는 수십 년 동안 저평가받아왔지만, 그런 방식으로 잘 해왔다(I have been underestimated for decades. I've done very well that way)”고 말할 정도였지요. “내 소중한 삶의 의미를 남의 뇌에 두지 말라”는 오스트리아 작가 칼 오이겐 노이만의 말처럼 살았다고나 할까요? 여러분은 그럴 수가 있겠는지요? 남보다 나의 가치에 집중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늘면, 거꾸로 불필요한 참견이나 비평도 줄어들 터인데, 위선적 이중적인 사회에서 구성원이 행복한 사회로 옮겨갈 건데….
1924년 오늘 태어난 ‘원조 반항아’ 말론 브란도가 주연한 영화 ‘대부(The God Father)’의 주제곡을 사라 힉스가 지휘하는 덴마크 국립관현악단의 연주로 마련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