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장 선임, 뒷말 무성한 진짜 이유는?
[이성주 칼럼]
서울대병원 교수들과 직원들의 헛웃음과 탄식이 바깥으로까지 새나가고 있다. 지난 15일 서울대병원장 이사회가 차기 병원장 후보로 두 교수를 지명하자 이에 대해 다양한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는 것.
“정치권에서 누구를 찍었다는 소문이 나돌아 설마했는데….”
“정부 표와 옛 병원장 표가 갈려서 두 쪽에서 민 후보들이 올라갔다더라.”
“추락하는 서울대병원에 추를 달았다.”
서울대병원 안팎에선 8개월 동안 새 병원장이 임명되지 않는 가운데, 무려 11명이 후보로 나선 것에 대해 뒷말이 무성했다. 지난해 공모에서 교수협의회 공청회에서 많은 박수를 받았던 후보들이 떨어지고, 두 후보가 최종 추천될 때부터 말이 많더니, 아니나 다를까 대통령실에서 두 후보를 거부했다. 2차 공모에서는 1차 때 최종 거부됐던 교수가 재지원하면서부터 희극이 됐고, 준비되지 않아 보이는 몇몇 교수가 지원에 동참해 ‘봉숭아 학당’이 됐다. 많은 교수들이 반문했다. “서울대병원장이 뭐라고, 대체….”
그리고 15일 원장 최종후보들이 결정되자 또 한 번 허탈, 분노, 걱정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한 편으로는 누가 최종후보, 나아가 원장이 돼도 군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냉정한 지적도 있다. 병원장 선임 절차가 후진적이기 때문이다. 국립대병원장을 밀실에서 쑥닥쑥닥 결정해서, 복지부장관도 아닌 교육부장관이 제청하고 대통령이 재가하는 것이 AI 혁명이 휘몰아치는 2023년에 어울리는가 하는 지적이다. 미국, 일본 등의 사례를 보면 명확하다.
요즘 지식사회, 산업계 ‘태풍의 눈’인 챗GPT에게 미국 존스홉킨스병원의 원장 선임 방법에 대해서 물었더니 “다양한 이해 관계자가 참여해서 잠재적 후보자들에 대해 철저하게 평가하는 엄격한 과정”이라고 대답했다. 절차는 몇 단계에 걸쳐 이뤄지고 의사, 간호사, 행정직원, 학생 등 다양한 이해 당사자가 참여한다. 구체적으로 ①선임위원회 구성 ②직무 규정 ③후보 선정 ④후보 평가 ⑤후보 인터뷰 ⑥선정의 절차를 통해 이뤄진다.
병원은 원장 선임이 필요하면 ‘존스홉킨스의료원(Johns Hopkins Medicine) 이사회’가 이사들, 병원 경영진을 포함해서 다양한 이해 관계자로 ‘선임위원회’를 구성한다. 위원회는 병원의 과제에 따른 원장의 자질과 자격을 정한다. 그리고 이 기준에 따라 다른 병원, 협회, 학회 등 모든 곳에서 적절한 후보를 찾고 경선에 참여할 의사가 있는 후보를 다양하게 평가한다. 그리고 적정 후보를 선택해서 인터뷰를 진행하는데 ‘밀실’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이뤄진다.
필자는 2004~2005년 존스홉킨스에서 병원이 아니라 보건대학원에서 연수를 했는데 알프레드 솜머 원장의 임기가 끝날 무렵 차기 원장을 뽑으며 무려 10여 차례, 학생들을 포함해서 다양한 관계자들을 초청해서 공청회를 벌이는 것을 지켜봤다. 병원장 선임 과정은 이에 못지 않게 폭넓고 깊이 있게 이뤄지며 온라인으로 중계된다. 그리고 선임위원회가 이사회에 후보를 추천하면 이사회가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챗GPT에게 미국의 다른 병원 원장 선정에 대해서 물어도 엇비슷했다. 서울대병원은 국립법인이어서 공적 연구기관인 국립보건원(NIH)의 원장을 어떻게 선정하는지 물었더니 “과학자, 정책 입안자, 정부 관계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는 엄격한 과정을 거친다”고 대답했다. NIH 원장은 상원 청문회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는데, ①보건복지부 장관의 NIH 원장 공석 발표 ②선임위원회 구성 ③후보 평가 ④대통령의 공식 지명 ⑤상원의 인사청문회 개최 ⑥상원의 확정 후 대통령의 임명의 절차를 거친다.
우리보다 의학이 훨씬 일찍 들어왔지만, 사회 문화적으로 공통점이 많은 일본은 어떨까? 챗GPT에 도쿄(東京)대병원의 원장 선정과정을 물었더니, 미국의 세계적 병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학 총장이 원장 공석을 발표하고 선임위원회가 구성돼 다양한 방법으로 후보들을 선정한다. 선임위는 후보자들을 위원회 또는 이해관계자의 인터뷰에 참여시켜 의견을 듣는데 요즘엔 온라인으로도 중계한다. 위원회가 후보자를 평가하고 면접을 실시한 뒤 대학에 추천하면 도쿄대 총장이 원장을 최종 결정한다.
도쿄대병원을 비롯한 일본의 주요 대학병원들은 원장 공고 때 홈페이지에 후보의 자격을 명확히 공지하고 선임위원회의 인적 구성도 구체적으로 밝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년 전까지 선정 과정의 투명성 문제가 제기되곤 했다. 요즘에는 대부분 선정위원회의 회의록을 인터넷에 공개하거나 열람신청이 있으면 제공한다.
서울대병원은 우리나라 의료계에서 상징성이 큰 병원이면서 최고 의학자들의 연구기관이다. 수장이 정치적 판단에 의해서 결정되면 미래는 암울하기 마련이다. 준비되지 않은 ‘낙하산 원장’은 병원 구성원들을 설득하기조차 쉽지 않다.
서울대병원 교수들은 매번 이사회 결정에 일희일비하고, 금방 망각해왔지만, 이제는 더 이상 원장 결정과정을 근시안적으로나, 남의 일로만 보지 않기를 빈다. 세계적 수준의 병원을 만들려면 원장부터 선진 수준으로 뽑아야 할 것이다.
형식이 내용의 방향을 결정한다. 주요 리더를 선임할 때에는 독립적 선정위원회가 투명한 절차에 따라 뽑는 형식부터 갖춰야 할 것이다. 병원장을 교육부 장관이 제청해서 대통령이 임명하는 코미디도 없애야 한다. 이런 절차가 다른 병원, 다른 영역에도 영향을 미치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누가 이 일을 시작해야 할까? 새 총장이나 원장이 추진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한두 명이라도 먼저 목소리를 내기를 빈다. 속도가 생명인 AI 혁명, 바이오 혁명의 시대에 더 늦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