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 특례법·응급체계 개편... 필수의료 체질 개선 나선 정부
의료계 "필수의료 살리기 중간성과... 재정 지원 구체화 필요"
수개월의 진통 끝에 정부가 필수의료 지원대책을 확정했다. 10대 주요 과제의 내용은 크게 △의료인력 확충 방안과 △응급·필수의료 체질 개선으로 요약할 수 있다.
특히 체질 개선 방안과 관련해선 △의료 활동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의료사고에 대한 의료진의 부담을 완화하는 동시에 △응급·필수의료 진료 체계 전반을 재고하겠다는 목표로 정리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향후 우리 의료계의 응급·필수의료 체질 개선을 위해 그간 의료계가 요청해왔던 여러 방안이 반영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보건복지부가 의료인의 의료사고 부담 완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지점이다. 의료분쟁조정법 개정, 의료사고 처리 특례법 제정 등은 이미 오랫동안 의료계가 요구해온 바다.
고난도·고위험 수술이 많은 필수의료의 특성을 고려할 때 의료 과오에 대한 형사처벌이 강화할수록 현직 의사들이 해당 진료과를 기피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의료계 내부에서 최근의 소아청소년과와 산부인과 기피 현상의 큰 요인으로 앞서 2014년 발생한 이대목동병원 신생아실 감염 사망사고를 꼽는 것도 같은 배경에서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관계부처 협의에 총력을 기울여 관련 입법에 힘을 쏟는 한편, 분만 의료사고 보상금액과 국가분담비율을 확대해 의료인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피해자를 적극 구제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10대 과제 중 거의 절반을 할애해 현재 응급·필수의료 진료 체계를 개선하는 방안도 쏟아냈다. 이를 위해 △기존의 응급의료 전달체계를 개편·확충하는 한편 △병원 간 순환당직제를 도입하고 △중증질환과 소아 진료를 강화할 수 있도록 상급종합병원 지정·평가 기준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우선 지역에 기반해 권역응급의료센터(40개)-지역응급의료센터(131개)-지역응급의료기관으로 이어지던 현행 응급의료 전달체계를 환자의 중증 정도에 따라 개편하는 방안을 내놨다.
△뇌출혈, 중증외상, 심근경색 등 중증 응급환자를 최종 치료하는 '중증응급의료센터'를 최상위 센터로 설정하고, 그 아래에는 △입원 필요 환자와 비중증 응급환자를 담당하는 '응급의료센터', 가장 하위에는 △입원 불필요한 경증 응급환자를 돌보는 '24시간 진료센터' 체계로 개선한다. 올해 중 시범사업을 통해 우선 추진한 후 2025년부터 단계적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이러한 체제 개편에 맞춰 병원 간 순환당직체계도 시범도입한다. 이는 야간·휴일에 필수의료 진료 공백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자는 목적에서 제안된 바 있다. 질환별로 수술이 가능한 전문의가 병원당 1∼2명인 경우 매일 당직이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들 방안을 통해 응급실과 질환별 전문센터, 일반 의료기관들 사이의 후속진료 연계도 강화할 것으로도 기대했다.
상급종합병원 지정·평가 기준 강화와 함께 필수의료 최우선 분야로 자주 꼽히는 심뇌혈관질환과 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관련 거점병원과 전문응급의료센터를 확충하는 등 해당 진료과의 진료체계 개편에도 나설 예정이다.
정부의 새 필수의료 대책에 의료계는 환영의 의사를 표하면서도 구체적인 현실화 시점까진 거리가 있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아직까지 보다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나 예산 마련 방안이 빠졌다는 이유에서다.
대한의사협회 김이연 홍보이사는 "의료계가 요청해오던 상당 부분의 방법론을 고려했다는 점에서 지난해부터 가동하기 시작한 '필수의료 살리기 협의체'의 중간성과라고 평가한다"면서도 "다만, 방법론이 아무리 좋더라고 실제 실행을 통해 구체적인 성과를 보이려면 실행 주체나 재원 등의 동력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아직은 모호한 부분이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김 이사는 이어 "특히 예산 측면에서 '건강보험 재정을 절약해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재로서도 건보 재정은 상당히 타이트한 측면이 있기에 의료 재정의 우선순위를 재검토하고 건보 재정 총예산 자체를 확충하는 방식의 '용기 있는 예산 집행' 결단을 제안하고 싶다"면서 "이럴 때 건보 재정을 놓고 벌이는 의료계 내부의 소모적인 경쟁도 방지할 수 있으며, 필수의료를 다루는 의사 개개인의 삶도 피폐해지지 않도록 보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