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 환자 살리는 인슐린, 언제부터 사용했을까?
[오늘의 인물] 프레더릭 밴팅
불과 100년 전만 해도 당뇨는 불치병이었다. 환자 대다수가 하루 450Kcal 이하로 섭취하는 ‘굶주림 치료’로 연명하다 1~2년 안에 숨졌다. 이들에게 빛이 열렸다. 인슐린이 등장했다. 당뇨 환자의 삶이 급격히 개선되고 생존율도 크게 높여졌다.
당뇨와 췌장의 관계를 처음 입증한 사람은 독일의 생리학자 오스카 민코프스키와 요제프 폰 메링이다. 1889년 췌장을 제거한 개는 오줌에서 포도당과 케톤체가 배출되고 심한 당뇨 증상을 보이다가 죽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췌장을 잘라낸 게 당뇨병의 원인이라 주장했다.
인슐린이 분비되는 장기가 특정되자 이를 정제하려는 여러 시도가 이뤄졌다. 인슐린을 정제해 사람에게 처음 투여한 사람은 캐나다 외과의사 프레더릭 밴팅과 찰스 베스트다. 밴팅은 소의 췌장에서 추출한 인슐린을 정제해 1892년 레널드 톰슨에게 처음으로 투여했다. 14세 소년이었던 톰슨은 당뇨 합병증으로 혼수상태였으나 인슐린이 주입되자 혈당이 정상 수준으로 회복되고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다. 밴팅은 인슐린을 활용해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지만, 더 많은 당뇨 환자를 살리기 위해 1달러 50센트를 받고 근무하던 대학과 공유했다.
밴팅은 이 공로를 인정받아 1923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인슐린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종류가 다양해지고 안정성도 크게 향상됐다. 밴팅이 처음 사용한 인슐린은 소의 췌장에서 추출해 정제한 것으로 30분~1시간 만에 빠르게 작용했지만 지속 시간이 짧았다. 환자가 하루 3번은 주입받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1936년 잠자는 중에도 혈당이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프로타민’이란 저분자량의 단백질이 추가된프로타민인슐린이 개발됐다. 1959년에는 영국 생화학자 플레더릭 생어가 소 인슐린의 아미노산 배열 순서를 완전히 규명했다. 마침내 1980년에 유전자 재조합 기술로 인간 인슐린을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슐린 흡수와 작용 속도도 조절하는 인슐린이 생산되고 있다. 과학자들은 이에 그치지 않고 투여 횟수를 줄일 수 있도록 반감기를 늘린 인슐린을 개발 중이고, 혈당 변화를 감지해 인슐린 적절량을 자동으로 분비하는 인공췌장도 개발하고 있다. 이 모든 일은 ‘프레더릭 밴팅’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