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손자국’ 남기고 떠나다.. 한 시각장애인의 흔적들

국회와 정부, 취약계층 보호와 안전망 확충해야

24일 시각장애인의 사망은 장애인은 화재 등 큰 사고 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게티이미지]

화재가 난 원룸 건물의 현관 문 주위에는 손자국 흔적이 가득했다. 방의 흰 벽, 싱크대 앞에도 손가락 자국이 길게 남아 있었다...

24일 새벽 서울 은평구의 한 다세대 원룸 주택에서 불이나 3층에 혼자 있던 40대 중증 시각장애인 A씨가 숨졌다. 2층에서 시작한 불이 순식간에 건물 전체로 번지자 거주민들 대부분이 건물에서 빠져나왔지만 앞을 못 보는 A씨만 대피하지 못했다. 그는 소방관에 의해 구조돼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사망했다. 이날 거주민 4명과 소방대원 1명도 부상을 입었다.

좁은 원룸 주변에는 그의 마지막 순간을 보여주는 흔적들이 가득했다. 그는 매캐한 연기를 맡자 화재 현장을 빠져나오려고 애를 쓰다 연기에 질식해 현관에서 쓰러진 것으로 보인다. 문 앞까지 왔지만 끝내 문을 열지 못하고 주저앉은 것이다. 기초생활수급자로 홀로 살았던 A씨는 지자체로부터 월 120시간의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를 받아왔지만 사고 당시에는 혼자였다.

안마원을 운영했던 그는 2020년 1월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손님이 크게 줄자 문을 닫아야 했다. 빚만 남은 그는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매달 지원금을 받으면서 각종 자격증과 학위를 따려고 공부를 했다. 장애인으로서 다른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면서 생계를 이을 수 있는 일을 찾았다고 한다.

고인은 생전 이웃에 베풀기를 좋아했다. 안마원을 운영할 때도 개원 비용과 임대료 등으로 큰 돈이 들어갔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동료들을 돕느라 빚에 쪼들린 것으로 알려졌다. 시각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돼 있다, 시각장애인만의 독특한 손 감각으로 할 수 있는 안마도 오래전부터 무자격 마사지업소의 난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A씨의 죽음으로 장애인은 화재 등 큰 사고 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다시 보여주고 있다. 최근 물난리로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에서 살던 발달장애인 일가족 3명의 참변, 생활고와 투병 끝에 세상을 등진 수원 세 모녀 일은 우리 사회가 취약계층 보호에 얼마나 허약한지 잘 보여주고 있다, 국회와 정부는 취약계층 보호와 안전망을 위한 각종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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