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소, 무기력... 번아웃, 우울증과 거의 ‘한몸’
본인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든 아니든 일에 대한 환멸을 느끼고 좌절감에 빠지거나 기진맥진한 상태가 될 때가 있다. 늦은 밤 간신히 잠들어 피곤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방안을 가득 채운 알람소리가 원망스러운 것은 단지 피로감 때문일까. 아니면 우울감인 것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극도의 피로감(번아웃)’이 우울증과 연관이 깊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힘든 만큼 보람 없는 업무, 노력하라고 을러대는 상사, 일이 서툰 부하직원이 하루 연료를 소진시키는 원인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임상심리학저널(Journal of Clinical Psychology)’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번아웃과 우울감은 크게 다르지 않다. 연구팀이 1400명의 학교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다. 연구팀은 설문조사를 기초로 극도의 피로감에 시달리는 실험참가자들을 선발했다. 그리고 이들이 보이는 증상을 우울증 척도에 대입해본 결과, 무려 86%가 우울증의 잠정 진단 기준에 부합했다.
반면 번아웃 징후를 보이지 않은 실험참가자들 중에는 단지 1%만이 우울증 증상을 보였다. 극도의 피로에 시달리는 실험참가자들은 불안장애를 진단받은 이력이 2배 이상 많았고, 우울증을 진단 받은 경험은 3배, 항우울제를 복용한 경험은 거의 4배 가까이 많았다.
연구를 주도한 뉴욕시립대학교 어빈 S. 숀펠드 교수는 “기력이 쇠진한 상태와 우울감은 공통된 점이 있다”며 “저명한 심리학자 허버트 프로이덴베르거 교수가 번아웃에 대해 작성한 최초의 논문을 보면 '번아웃은 마치 우울증처럼 보인다'는 표현이 있다”고 말했다.
숀펠드 교수에 따르면 번아웃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오해는 이런 현상이 직장에서만 일어난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직장을 벗어나면 피로감이 한결 덜 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번아웃은 아직까지 정신장애로 분류되지는 않는 만큼 공식적인 치료법이 없어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 쉽다.
하지만 만약 번아웃 때문에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면 우울증과 유사한 치료를 받게 될 거란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일에 대한 스트레스가 크고 회의감을 느끼며 체력 고갈이 심하다면 단순한 피로가 아니라 번아웃과 연관된 우울증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번아웃은 우울증을 예견하는 수단이 된다는 것이다.
또 단순한 피로라면 굳이 ‘번아웃’이란 용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게 과학자들의 설명이다. 번아웃은 극도의 피로와 더불어 냉소주의, 무기력증 등이 동반돼야 한다. 피로는 번아웃의 한 징후에 불과하다. 직장 동료들과 감정교류가 어렵고 일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지고 회의감이 들어야 번아웃이라고 볼 수 있다. 번아웃 역시 우울증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극복하기 쉽지 않은 심리적 장애이므로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편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