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감염자, 심혈관질환 위험 '쑥' (연구)
코로나19에 감염됐던 사람들에게서 회복 후 1년 뒤 심혈관질환이 현저하게 증가했음을 보여주는 대규모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최근 《네이처 메디신》에 발표된 미국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 연구진의 논문을 토대로 과학전문지 《사이언스》가 9일(현지시간) 보도한 내용이다.
코로나19는 대유행(팬데믹) 초기부터 사람들의 심혈관에 심각한 타격을 가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코로나19 환자들은 혈전, 심장염증, 관절염, 심부전으로 악전고투를 벌여야 했다. 그렇다면 코로나19에 걸렸던 환자들의 1년 후 심혈관 건강상태는 어떨까?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 연구진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1100만 명 이상의 미국 참전용사 건강기록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 결과 1년 전에 코로나19에 걸렸던 참전용사가 그렇지 않은 참전용사에 비해 20개 심혈관질환에서 모두 그 위험이 상당히 증가했음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미국에서 가장 큰 전자건강기록인 재향군인 관리국(VA) 데이터베이스에서 2020년 3월부터 2021년 1월까지 코로나19에 감염돼 최소 30일 이상 생존한 15만4000명의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들은 이들 데이터와 대유행 기간 동안 VA진료를 신청했으나 코로나19 진단을 받지 않은 560만 명과 2017년 VA 진료를 신청했던 590만 명의 2가지 대조군의 데이터를 비교했다.
이 연구의 한계는 그 대상이 노년층, 백인층, 남성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3개 대조군에서 환자의 약 90%가 남성이었고, 71~76%가 백인이었으며, 평균 나이는 60대 초반이었다.
조사결과 코로나19 감염자 그룹은 심장마비, 부정맥, 뇌졸중, 일시적인 허혈성 발작, 심부전, 염증성 심장병, 심정지, 폐색전증, 심부정맥 혈전증을 포함해 연구진이 조사한 20가지 모든 심혈관 질환의 위험이 증가했다. 연구책임자인 지야드 알 알리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 교수(임상역학)는 “코로나19는 이 모든 위험을 초래한 범인”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코로나19에 걸렸던 참전용사는 코로나19에 걸리지 않은 대조군 그룹에 속한 참전용사보다 12개월 뒤 심부전 위험이 72% 더 높았다. 이는 감염자 그룹에서 1000명 중 12명 더 많은 사람이 심부전 환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전반적으로 감염자 그룹은 비감염자 대조군에 비해 1000명 중 45명 이상의 사람 20개 심혈관 질환 중 하나 이상에 걸린 것으로 조사됐다.
1년 전 코로나19에 걸렸을 당시 질환의 심각성에 비례해 심혈관의 위험도도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감염됐지만 입원치료를 받지 않을 정도의 경증을 앓고 지나간 그룹에서도 비감염자에 비해 심혈관질환자들이 더 많이 나왔다.
미국 스크립스연구소의 에릭 토폴 연구원은 이번 연구결과에 대해 "예상했던 것보다 더 심각하다"며 “코로나19 장기 증세 관련 논문 중 가장 인상적 논문”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코로나19가 독감과 같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게 해 줄 가장 강력한 데이터 중 하나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유사한 소규모 분석을 실시했던 미국 클리블랜드 클리닉의 심장전문의이자 생물통계학자인 라리사 테레셴코 박사는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에는 심혈관 질환의 가장 높은 위험요인이 코로나19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이런 후유증의 메커니즘을 정확히 알 수 없다고 밝혔다. 다만 ‘장기 코로나19’로 알려진 증세(뇌안개, 피로, 무기력, 후각 상실)과 심혈관 질환 악화가 공통의 근원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알 알리 교수는 심장과 혈관 내부를 따라 늘어선 내피세포의 염증이 그 뿌리가 될 수 있다고 봤다. 연구진은 바이러스의 심장근육 침입으로 인한 손상, 심장 흉터를 유발하는 사이토카인(세포간 신호전달 단백질)의 수치 급증, 면역 체계의 사각지대에서 계속 잔존한 바이러스 등도 그 원인으로 추정했다.
연구진은 코로나19의 후유증이 결코 녹녹하지 않으며 팬데믹이 끝난 뒤에도 전 세계 정부와 보건체계에 지속적인 부담을 안겨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그에 대한 장기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알 알리 교수는 “진정 걱정스러운 것은 코로나19에 감염됐던 사람들 중 일부는 여생 내내 만성질환에 시달리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라며 “그것은 내일 눈 떴을 때 심장마비의 위험에서 당장 벗어나게 되는 일 따위는 벌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