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기 농경혁명 전에 코로나바이러스 퍼졌다면?
신석기시대 농경혁명으로 가축과 함께 생활하면서 인간면역계에도 대전환이 발생했다고 국제적 과학잡지 《사이언스》가 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같은 날 온라인 과학저널 《이라이프(eLife)》에 발표된 네덜란드 라드바우드대 네이메헌 병원의 미하이 G 네테아 교수가 이끄는 국제연구팀의 논문을 바탕으로 한 보도다.
네테아 연구진은 초기 농경민이 떠돌이생활을 하는 수렵채집인보다 더 자주 병에 걸렸을 것이라고 오랫동안 의심해 왔다. 다양한 가축과 함께 한 공간에서 정착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병원균에 집중적으로 노출됐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 터키 차탈회위크의 신석기 시대 대규모 유적지의 농부는 독감과 살모넬라균 같은 새로운 동물성 질병 뿐 아니라 말라리아와 결핵처럼 종전에는 접하지 못했던 질병에 걸렸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발견됐다. 이렇게 새로운 질병에 걸리게 되면서 인간의 면역체계가 어떻게 바뀌게 됐는지가 연구의 발단이 됐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연구진은 먼저 살아있는 사람의 면역반응을 낳는 유전적 변이를 먼저 확인했다. 네덜란드 네이메헌에 본부를 둔 바이오은행 ‘인간기능유전체학프로젝트(HFGP)’에 보관된 500여명의 혈액 샘플을 채취하고 다양한 병원균에 대한 면역반응을 관찰했다. 병원균에 맞서 싸우도록 면역세포가 분비하는 당단백질을 총칭하는 사이토카인이 얼마나 분비되고 상호작용하는지를 조사했다. 사이토카인에는 병원균이 들어올 경우 백혈구에서 분비돼 염증을 유발하는 인터루킨과 병원균에 감염된 세포에서 분비돼 주변세포로 하여금 병원균과 싸우게 해주는 인터페론이 포함된다.
연구진은 개인의 면역 유전자 변이를 토대로 특정 질병에 대한 염증반응의 강도를 예측할 수 있는 ‘다유전자 위험점수(polygenic risk score)’를 만들었다. 연구진은 유럽 전역의 고대 문명 유적에서 발굴된 827구의 유골의 DNA염기서열 데이터베이스를 다운받아 고대인들이 병원균에 반응해 분비할 사이토카인의 수준을 계산해 그들의 다유전자 위험점수를 추출했다.
해당 유골은 4만5000년 전부터 2000년 전 사이의 것이었다. 연구진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면역반응에서도 변화가 발생했음을 발견했다. 대략 8000년 전 농경문화를 시작한 유럽인은 그 전의 수렵채집인 보다 훨씬 더 낮은 수준의 사이토카인을 분비했을 가능성이 컸다.
네테아 교수는 “사람들이 새로운 병원균을 처음 접했을 때, 몇몇은 오늘날 코로나19 사태에서 보듯 사이토카인을 과다 분비해 과민반응을 보이고 죽었을 것”이라면서 “하지만 이를 겪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아이들은 사이토카인 분비를 줄임으로써 전체 인구의 저항력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상반된 효과도 밝혀냈다. 국소감염에서 시작돼 전신으로 번지는 칸디다균과 포도상구균 박테리아에 감염됐을 때 농경민은 이전의 수렵 채집인보다 더 강력한 염증 반응을 일으켰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강한 염증반응은 국소감염의 확산을 막는 효과를 발휘하지만 독감이나 말라리아처럼 강력한 전신반응이 발생했을 때는 통제불능의 상태로 몰아넣게 된다.
독일 킬대의 분자인류학자인 벤 크라우스 쿄라 교수는 이번 연구가 염증을 조절하는 유전자 숫자가 “신석기 초기부터 강력하게 변화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미국 조지아공대의 인구유전학자 조셉 라찬스 교수는 현대인을 토대로 만든 다유전자위험점수를 다른 장소와 시대에 사는 사람들의 염증예측에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병원균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진화해왔으며 현대의 위험 예측은 고대의 질병 변종에는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그러나 라찬스 교수도 이 연구가 병원균에 대한 염증반응이 신석기 시대에 극적으로 변화했음은 분명히 보여준다는 점엔 동의했다. 네테아 교수 연구팀은 이번 연구 결과가 고대 진화의 폭발이 오늘날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만일 코로나바이러스가 농경문화 이전에 유럽에 퍼졌다면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 네테아 교수는 “수렵채집생활을 하던 고대인은 염증촉진 사이토카인을 더 많이 생산했기에 오늘날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 것”이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