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즙파동'과 입시 문제, 교육의 길
[이성주의 건강편지]
제 1450호 (2020-12-07일자)
왜,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쳐야 할까?
2021학년도 수능 한국사 홀수형 20번 문제, 너무 쉬워서인지, 출제자 의도 때문인지 ‘문제의 문제’가 되고 있죠? 아마 우리나라 입시에서 가장 대표적인 ‘문제의 문제’는 1964년 오늘(12월 7일) 치러진 1965년 서울지역 전기 중학교 입시의 자연과목 18번이 아닐까 합니다. 초등학생 문제인데 상당히 어렵죠?
이 문제는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켜서 신문 사회면을 연일 장식했습니다. 정답은 1번이었지만, 4번을 선택한 수험생의 부모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교과서에 ‘침과 무즙에 디아스타아제가 들어 있다’는 내용이 있으므로 무즙도 정답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
서울시교육청에서는 처음에는 “아무 문제없다”고 했다가, 학부모들이 교육청에 몰려가 따지자 교육청은 해당 문제를 무효화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디아스타아제 학부모’들이 교육청에서 농성을 벌이자 “원래대로 디아스타이제만 정답으로 인정한다”고 번복했습니다. 김성환 화백은 동아일보 4컷 풍자만화 ‘고바우 영감’에서 갈팡질팡하는 교육 당국을 칠면조(七面鳥)에 비유했습니다.
논란은 법정공방으로 이어졌고, 서울고법 특별부가 복수정답을 인정하며 “불합격한 39명을 구제하라”고 판결했습니다. 교육위원회는 추가 입학을 반대했지만, 다시 학부모들이 시위를 벌였고 학생들은 5월 12일에 전입학 형식으로 등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중학교 합격자 명단이 발표되면 신문사에서 호외를 내던 때였습니다. 경기중, 서울중, 경복중, 경기여중 등의 명문 중학교는 몇 문제만 틀려도 떨어졌다고 합니다. 명문 중학교를 거쳐 명문고, 명문대를 나와야 출세할 수 있다고 여겨지던 때의 ‘슬픈 자화상’이었다고나 할까요?
이 문제 때문에 ‘치맛바람’과 “엿 먹어라”는 말이 유행했고, 이듬해 ‘치맛바람 자숙운동’과 ‘과외공부 시키지 않기 운동’이 벌어졌습니다. 1967년 중학교 입시에서 ‘목판화를 새길 때 창칼을 바르게 쓴 그림은?’이란 미술 13번 문제의 복수 정답 인정 여부를 놓고 ‘창칼 파동’이 일어났고 1969년 결국 중학교 입시가 폐지됐습니다.
지금 1964년 ‘무즙 파동’과 중학교 입시를 돌이켜보면 온통 우스꽝스럽지만, 먼 훗날 지금의 우리 교육과 입시를 돌이켜보면 우습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어린이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공부의 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요? 어릴 때 마음껏 놀고, 필요할 때 열심히 공부해서 자기 꿈을 이룰 수 있으면 이상적이겠지만, 현실상 불가능한데 어떡해야 할까요? 치맛바람은 형태만 바뀌었을 뿐, 현실에서 아이들이 상처 받지 않는 ‘공정한 교육 과정’이 가능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주위를 돌아보면 명문대를 나왔다고 해서 성공하거나 행복하지는 않아 보이는데,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공부를 안 시킨다고 나중에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고…. 교육이 부모의 욕심이나 특정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서 개인의 이성과 잠재력을 계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하는 것은 분명한데 우리 교실이 과연 그런지도….
어쩌면 우리 사회가 교육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대화한 적이 없는 것은 아닐까요? ‘무즙 파동’을 옛날 우스운 역사로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는 지금 아이들을 잘 가르치고 있는가요?
[대한민국 베닥] 고관절 수술 분야 조윤제 교수
엉덩이관절 수술의 베스트 닥터로는 경희대병원 정형외과 조윤제 교수(62)가 선정됐습니다.
조 교수는 고관절 분야의 대가였던 유명철 교수의 수제자로 삼성서울병원 박윤수, 서울성모병원 김용식, 분당서울대병원 구경회 교수 등과 함께 이 분야를 꽃피운 의사입니다.
그는 대학입시에서도, 전공의 모집에서도 재수를 해야 했지만 실패를 거울삼아 최고 자리에 올라 고관절 질환을 고통 받거나 못 걷는 환자 1만 명의 소원을 풀어줬습니다. 뛰어난 수술실력 못지않게 친절한 설명으로 정평이 나있는 의사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음악
1937년 오늘은 ‘별이 빛나는 밤에’를 진행했던 고 이종환 DJ가 태어난 날이네요. ‘별밤’의 오프닝 음악인 ‘Merci Cherie(고마워요 내 사랑)’을 프랑크 푸르셀 악단의 연주곡으로 준비했습니다. 1966년 유로비전 콘테스트에서 오스트리아 출신의 우도 유르겐스가 불러 대상을 차지한 곡인데, 그의 음성으로도 감상해보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