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형 간염, 국가 건강 검진 도입 논란
만성 간염, 간암의 주 원인인 C형 간염 검사를 국가 건강 검진 항목에 포함하는 결정이 제자리걸음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자유한국당 박인숙 의원, 한국과학기자협회가 공동 주최한 ‘C형 간염 국가 건강 검진 어떻게 시행할 것인가?’ 토론회가 개최됐다. 토론회에는 ‘국가 검진 도입으로 C형 간염을 잡아야 한다’는 의료계와 ‘국가 검진 항목의 선정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정책 관계자의 입장이 엇갈렸다.
복지부 시범 사업 “C형 간염 유병률 1.7%”
C형 간염 집단 감염 사태는 지난 2015년 서울 양천구의 한 의료 기관이 일회용 주사기를 재사용, 약 100명의 내원객이 C형 간염 양성 판정을 받으며 화제가 됐다. 이후 서울, 원주 의료 기관에서도 추가 집단 감염 사례가 발견됐다.
보건 당국은 2017년 한 해 동안 C형 간염 국가 검진 시범 사업을 진행했다. 시범 사업 통계에 따르면, 높은 유병률이 의심되는 지역 대상자의 52.4%(56089명)가 검진에 응했고 이 가운데 1.7%(960명)만이 C형 간염 양성 반응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발제를 맡은 정숙향 분당서울대학교병원 교수는 C형 간염 국가 검진 방법으로 ‘장년층 인구가 일생에 1회 검진을 받는’ 방식을 제안했다. C형 간염 유병률이 높은 40세~65세 인구를 대상으로 2년간 한시적으로 C형 간염 항체 검사를 받도록 하자는 것.
입장 하나. 국가 검진 도입으로 C형 간염 박멸해야
시범 사업 유병률 1.7%는 국가 검진 선정 원칙 기준인 유병률 5% 이상을 만족하지 못한다. 허나 정숙향 교수는 “C형 간염에 특별한 증상이 없고 병의 인지도가 낮아 많은 C형 간염 환자가 간경변증, 간암으로 진행된 후에야 진단을 받게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완치율 90% 이상의 치료제가 있는 만큼 조기 진단으로 감염자를 확인할 수 있다면 비용 대비 효과가 클 것이라는 접근이다.
김도영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C형 간염은 유병률이 높지는 않지만 B형 감염보다 간경화, 간암 진행률이 높아 심각성이 더 크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 “최근 치료 방법의 발달로 C형 간염을 박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긴 만큼 고위험군 선별 검사가 아닌 전수 검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김영석 대한간학회 의료정책이사는 C형 간염을 감염성 질환으로만 판정해서는 안 된다고 봤다. 김 이사는 “감염 증상이 만성화가 되면 비감염성 질환인 간경화, 간암 환자와 똑같은 관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만성 질환 관리 차원에서 국가 검진 항목으로 지정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입장 둘. 국가 검진 선정 원칙 지켜야
반면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는 C형 간염의 국가 검진 도입에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이강희 질병관리본부 만성질환예방과 과장은 “건강검진위원회에서는 C형 간염의 유병률, 실제 치료 대상자 수가 적어 선정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위암 유병률이 0.5%대이지만 40대 이상 국민이면 누구나 위 내시경 검진을 받을 수 있지 않느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현재 모든 검진 항목이 선정 기준을 만족하는 것은 아니나 앞으로는 국가 검진 선정 기준을 지키는 것이 옳다는 입장이다”라고 답했다.
임숙영 보건복지부 건강증진과 과장은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진행한 연구 용역에서도 C형 간염의 유병률이 낮아 국가 검진에 포함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결론이 나왔다”며 “같은 연구에서 만약 국가 검진에 포함한다면 고위험군에 한해 적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입장 셋. 국가 검진만이 답은 아니다
한편, C형 간염 해결을 국가 건강 검진만으로 접근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이희영 분당 서울대병원 공공의료사업단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국가 검진으로 병을 발견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증상이 없는 환자가 따로 병원을 찾아가는 경우가 드물다”고 말했다. 다만 국가 검진 수검률이 약 70% 정도이기에 국가 검진 외에 감염 관리, 만성 질환 관리 정책을 고려할 필요도 있다고 했다.
김양중 ‘한겨레’ 기자는 “우리 사회는 아직 감염병에 대한 편견이 있다”며 고위험군 국민이 감염자라는 낙인을 피하기 위해 검진을 받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김 기자는 “B형 간염, 잠복 결핵 치료 때와 마찬가지로 C형 간염을 ‘국가 검진을 통한 박멸’의 관점으로 접근할 시 환자를 음성화시키는 위험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