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전 같은 ‘메르스 전투’... 총알받이 의료인

고지전 같은 ‘메르스 전투’... 총알받이 의료인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환자가 국내에서 발생한지 오는 20일로 한 달이 된다. 하지만 메르스의 기세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18일 국내 메르스 사망자는 3명이나 추가돼 23명(확진자 165명)으로 늘어났다. 치사율이 14% 가까이 치솟은 것이다.

이날 추가로 확인된 환자 3명 가운데 2명의 간호사가 포함됐다. 163번(53·여) 환자는 평택의 경찰 공무원인 119번 환자가 입원했던 아산충무병원의 같은 병동 간호사다. 164번(35·여) 환자 역시 75번과 80번 환자가 입원중인 삼성서울병원의 같은 병동 간호사로 나타났다.

이로써 현재까지 메르스에 감염된 의사, 간호사는 모두 16명(의사 5, 간호사 11명)으로 늘어났다. 간병인 7명과 관련 종사자 7명까지 포함하면 의료인 메르스 확진자는 모두 30명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메르스 전쟁’의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전사’들이 연일 환자로 되돌아와 동료들의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메르스 사태는 전쟁터의 고지전을 연상시킨다. 군 최고위층이 자신의 판단 잘못으로 적에게 고지를 점령당하자 병사들에게 무작정 “돌격 앞으로!”를 외쳐대는 장면이 떠오른다. 병사들은 비 오듯이 쏟아지는 총탄 속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데, 무능력한 지휘관은 안전한 벙커 속에서 아무런 전략도 없이 돌격만 주장하는 상황과 흡사하다.

메르스 환자를 치료하는 병원은 전쟁터의 고지와 다름없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 속에서도 ‘전우애’는 넘쳐난다. 응급 상황을 알리는 ‘코드 블루’가 뜨자 건양대병원 중환자실 수간호사인 신모(39) 간호사는 후배들을 도와주려고 음압격리병실로 달려갔다. ‘코드 블루’는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위급 환자가 나왔다는 병원 내 알람이다.

메르스 36번 환자를 살리기 위해 탈진 상태가 될 때까지 심폐소생술을 했던 신모 간호사는 8일 후인 지난 11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순간 간호사실은 울음바다가 됐다고 한다. 눈치껏 피할 수 있는 위치인데도 후배를 위해 ‘사지’로 들어갔던 선배이기에 더욱 안타까웠던 것이다.

지금 메르스 환자가 입원중인 병실에서는 이런 사례가 자주 일어나고 있다. 의사, 간호사들은 컨디션이 좋지 않은 당번 동료가 있으면 “내가 대신 들어가겠다”며 앞다퉈 음압격리병실에 들어서고 있다. 의료인들은 누구나 꺼려하는 메르스 환자의 가래를 뽑고 분비물을 정성껏 닦아내며 “이 환자는 꼭 살리자!”며 다짐하고 있다. 이처럼 의료진들은 생사가 갈리는 전쟁터에서 자신의 몸을 던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 의료진을 향한 일부의 시선은 부담과 절망감을 안겨주고 있는 것 같다. 메르스 환자를 치료중인 한 병원의 간호사는 “메르스를 종식시키는 일은 우리 손에 달렸다. 우리는 손을 놓을 수 없다. 놓아서도 안 된다”면서 지난 12일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에 편지를 보냈다.

“(중략) 감염을 무릅쓰고 환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는 우리를 보는 외부인의 시선 또한 무척이나 부담스럽고 절망스러운 것도 사실입니다. 혹여 병원에서 바이러스가 옮겨오지나 않을까 피하기도 하고, 우리 병원 의료인 학부모가 많다는 이유로 학교를 휴교하고 있습니다. 병원로비의 텅 비어버린 의자는 이러한 현실을 증명해 보이며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의료인들이 가장 안타까워하는 것은 자신의 가족들까지 ‘메르스 의료인, 메르스 병원’이라는 낙인의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메르스 환자를 살리기 위해 몸을 던졌는데, 돌아온 것은 차거운 시선뿐이라는 하소연도 있을 정도다. 아이가 학교에서 따가운 눈길을 받았다는 사실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극소수의 몰지각한 의료인들도 있는 게 사실이다. 의료인 스스로 메르스를 두려워해 감기환자를 받지 않고 의원 휴업까지 했다는 소식에 절망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동료들은 메르스 전쟁의 최전선에서 환자의 가래를 닦아내고 있는데 안전한 후방에서 자신의 몸만 사리는 형국인 것이다.

“환자나 환자의 가족은 우리를 보며 희망의 끈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다수 국민이 우리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으며, 우리가 반드시 메르스를 막아내 다시 평온한 일상을 만들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혼연일체가 되어 서로 격려하고 솔선수범해야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서로 격려하고 사랑하며 극복해야 합니다. 몸도 마음도 힘든 지금이지만 우리의 땀방울이 모여 반드시 결실을 보리라 생각합니다.”

‘메르스 병원’ 간호사의 편지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우리를 바라보는 희망의 눈빛을 꼭 현실로 만들어 냅시다.”

메르스 환자를 치료하다 병상에 누운 ‘메르스 의료인’들에게 더욱 따뜻한 시선이 필요할 때다. 그 가족들을 격려하고 보듬어 안아야 한다. 메르스 전쟁터가 두려워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면 언제 전쟁을 끝낼 것인가.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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