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되기 싫어” 성장 포비아는 정신질환
어릴 때는 얼른 자라서 어른이 되고 싶지만 막상 어른이 되고 나면 어릴 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보편적 정서다. 하지만 성장에 대해 유독 극심한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일명 ‘성장 포비아’가 있는 사람들이다.
성장 포비아는 어른이 된다는 사실에 공포감을 느끼는 증상이다. 어른이 되면 스스로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일이 많아진다. 어른으로서 감당해야 하는 임무를 부담스러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정신의학 사례보고(Case Reports in Psychiatry)저널’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성장포비아가 있는 사람들은 극단적인 공포심을 느낄 정도로 어른이 된다는 사실을 두려워한다.
멕시코 누에보레온 자치대학 연구팀이 성장포비아를 겪고 있는 14살 소년에 대한 사례를 해당 논문에 소개했다. 이 소년은 11살 때부터 성장에 대한 공포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소년은 음식물에 들어있는 영양분이 신체 발달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부터 식사량을 극단적으로 줄이기 시작했다. 음식 섭취를 제한한 이후 체중은 12㎏ 줄어들었고, 결국 마른 체형을 갖게 됐다.
또 자신의 키가 크고 있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항상 구부정한 자세를 유지하고, 목소리는 어린 아이처럼 변조했다. 심지어 성기능을 막을 수 있는 방법까지 인터넷으로 검색하는 행동을 보였다.
이 소년은 2차 성징이 나타나는 것을 걱정하고, 신체적인 변화가 나타날 때마다 극도의 불안감을 보였다. 2차 성징을 원천봉쇄할 수 있는 수술을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두려움의 수치가 높았다. 주변에서 키가 컸다거나 예전보다 성숙해졌다는 말을 하면 분노를 표출하거나 펑펑 우는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다행히 이와 같은 포비아 증상은 개선이 불가능한 질병은 아니다. 연구팀에 따르면 이 소년의 증상은 현재 상당 부분 개선되고 있는 상태다.
정신적 질병은 신체적 질병에 비해 가벼운 것으로 치부되기 쉽다. 정신질환을 의지력의 문제로 생각해 마음을 굳게 먹거나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고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심각한 우울증이나 정신분열증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러한 증상이 얼마나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드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다.
연구팀이 사례로 제시한 소년 역시 남들이 보기에는 우스꽝스러울 수도 있고, 나약하다고 손가락질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신질환 역시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다. 이 소년의 경우 생물학적, 심리적, 환경적 위험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이와 같은 두려움이 생겼다는 것이 연구팀의 주장이다.
실질적으로 대부분의 정신질환이 단순히 한 가지의 위험요인이 원인이 돼 일어나지 않는다. 유전적, 환경적, 사회적, 생물학적 요인들이 함께 뒤얽혀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포비아를 비롯한 정신질환을 단순히 개인의 의지력 문제로 평가할 수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