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는 수다스러운 의사를 좋아한다”
한미영의 ‘의사와 환자 사이’
만약 중증환자가 적절한 치료를 받고 완쾌가 된다면 그를 담당했던 의사는 어떤 기분이 먼저 들까? 대부분의 경우 환자가 자신의 질환을 치료해준 의사에게 기쁨과 고마움을 더 크게 표현하기 마련이지만, 의사가 환자의 쾌차에 대한 안도감과 고마움을 더 크게 느낄 수도 있다. 이때 의사가 ‘생각보다 빨리 쾌차하셔서 제가 더 기쁘네요’라고 표현 할 수 있다면, 환자가 의사에 느끼는 신뢰감과 친근감은 한층 높아진다. 의사와 환자 사이, You & I 화법을 이용해 소통이 잘 이뤄지는 경우다.
환자에 감정이입, 표현을 하라
You & I 화법은 상대의 상황을 공감하고, 상대로 인해 자신도 기쁘다는 마음을 표현함으로써 서로에게 친밀감을 유발시키는 표현 방식이다. 갈등 상황에서는 상대의 저항을 최소화 하기 위해 활용되기도 한다. 특히 의사와 환자 사이에 이뤄지는 긍정적 대화에서는 You & I 화법의 효과가 배가되어 나타난다. 환자로의 감정이입은 단순히 치료받는 자, 치료를 하는 자를 넘어서 ‘나의 아픔을 함께 하는 자’로 인식되게 하기 때문이다.
병원에서의 You & I 화법은 다양하게 이뤄질 수 있다. 가령 “환자분이 약을 잘 복용하고 경과가 좋아 제가 기분이 좋습니다.” 또는 “환자분께서 상처 관리를 잘해주신 덕분에 제가 걱정을 덜었습니다.” 등이 있다. 이렇게 상대의 상황에 덧대어 자신의 기쁜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의사와 환자간 친밀감을 유도할 수 있다. 이는 장기적 치료를 담당하는 개인 주치의 개념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단기간에 환자와 라포(심리적 유대관계)를 형성하는데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환자의 신뢰, 핵심서비스 의사를 통해 굳건해져
그렇다고 해서 쉽게 표현될 수 있는 화법은 결코 아니다. 일반적으로 화법은 개인의 성격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이런 상호공감적 대화를 이끌어 가려면 의식적인 연습이 필요하다. 의사는 먼저 자신의 고객이 되어준 환자에 대해 배려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의 치료를 받는 환자가 어떤 생각을 할지, 어떤 기분일지 마음을 먼저 읽어내려 노력한다면 화법은 바뀔 수 있다.
시간적 공간적 진료 환경에서의 제약을 핑계로 You & I 화법까지 써가면서 환자의 마음을 일일이 헤아릴 필요가 있냐고 반문할 지도 모른다. 병원들이 왜 그토록 서비스교육에 막대한 비용을 들이는지 이해를 한다면 화법이 중요하다는데 공감할 것이다.
실제로 많은 병원들이 고객만족을 위해 고군분투하며 막대한 비용을 들여 모든 직원의 CS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전체교육, 부서별교육, 직급별교육, 직군별 교육 등 세분화돼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교육이 실시된다. 병원에서는 고객이 만족해야 연속적인 이용으로 이어지고, 이는 곧 병원의 수익을 창출한다는 점을 전제로 서비스 교육이 행해진다.
다른 서비스영역에서는 프로세스를 중요시 여긴다. 100곳에서 100명의 사람들이 서비스를 한다고 가정할 때 1명이 서비스 에러를 만든다면 고객은 나머지 99곳의 서비스도 문제가 있다고 해석한다. 즉 100-1은 99가 아닌 0으로 인지한다. 따라서 모든 영역에서 모든 구성원들이 소임을 다할 것을 강조한다. 반면, 의료서비스영역은 기본적으로 고객만족 프로세스는 같지만 1을 가지고도 100의 효과를 낼 수 있다. 바로 핵심서비스 당사자인 의사의 서비스가 있기 때문이다.
의사는 고객 만족에 작용하는 힘이 가장 큰 파워공급자다. 환자를 치료하고 건강을 유지관리해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모니터링 하는 주체는 바로 의사이기 때문이다. 환자는 직원의 언행이 마음에 들지 않고, 시설이 그다지 좋지 않더라도 마음에 드는 의사만 있다면 곳곳에 있는 불쾌한 서비스에 대해 관대하다. 이것이 의사의 파워인 것이다. 직원의 상냥함도, 첨단화된 병원시설도 결국 핵심서비스 의사의 의술을 빼면 그 힘을 잃게 마련이다. 이 때문에 비중이 큰 의사의 말 한마디는 서비스 질을 높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환자 마음 움직이기, 의술보다는 대화의 기술
의술보다 앞선 대화의 기술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환자와 소통하는 커뮤니케이션이 준비된 의사는 곧 신뢰를 주는 의사이기도 하며 관계형성이 잘 돼있는 의사이기도 하다. 의사의 연륜과 학벌, 화려한 경력보다도 경쟁력을 키우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은 바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대부분의 의사가 환자와의 대화에서 감정표현을 절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간결하고 논리적이고 절제된 표현이 환자와의 소통을 더 용이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전문성과 권위를 지켜야 하는 입장이기에 자칫 가벼워 보일 수 있는 언행은 피하려는 것이다.
의사의 생각과는 반대로 환자는 수다스러운 의사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의사가 수다스럽다는 것은 환자의 질문에 대답을 길게 하고 많은 의학적 정보를 준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비록 사적인 대화가 오가더라도 환자는 둘 사이 거리감을 줄이려는 의사의 노력으로 받아들인다.
환자들은 이미 고급화된 서비스에 익숙해져 있다. 의사의 말 한마디에 서비스 품질을 평가하는 수준 높은 환자들이 많아졌다는 이야기다. 그간 환자의 서비스만족을 위해 병원시설이 보강되고 구조 변경됐다면 이제는 서비스 공급자인 의료진도 철저히 고객중심으로 바뀌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