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부 환자의 ‘기적’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이동진의 ‘나는 환자였던 의사다’
가끔씩 큰 병원에서 시한부 진단을 받고 내원하는 환자들이 있다. 중병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죽음의 선고를 받은 이들을 만나는 건, 필자에게도 힘든 일이다. 그들은 대부분 이미 삶의 시계가 멈춘 듯한 모습이다. 하지만 의외로 놀랄 만큼 의연한 이들도 있다.
간경화로 시한부 진단을 받은 이도현(가명. 49) 씨도 그랬다. 그는 간경화 합병증으로 비장이 커지는 비장종대까지 심해서 치료하던 병원에서는 이미 포기한 상태였다. 게다가 식도정맥이 혹처럼 붓는 식도정맥류로 몇 차례 출혈을 일으켜 헤모글로빈 수치도 4~6g/dL로 떨어져있었다. 정상수치(12~16g/dL)보다 현저하게 낮아서 병원에서는 살아있다는 자체가 불가사의한 일이라고 했다. 그런 상태였지만 그는 별로 절망하는 기색이 없었다. 너무 힘들다는 말도, 반드시 살아야 한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남다른 가치관을 가진 것인지, 오랜 투병으로 마음을 비운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는 분명 보통 환자들과 달리 평온했다.
이 특이한 환자는 지금 10년 째 씩씩하게 살고 있다. 남은 삶의 시간이 3개월 정도라는 어느 의사의 죽음의 선고를 보기 좋게 날려버린 채 말이다. 매주 한 차례씩 내원하는 그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완전히 낫지 않았다. 하지만 늘 평온한 모습이다. 필자가 걱정이 되어 ‘힘들지 않냐?’고 물으면 ‘이미 죽는다는 목숨인데 이렇게 살아있는 것만 해도 감사하다’고 말한다. ‘좋은 책도 읽고, 좋아하는 산책도 하면서 나름 즐겁게 보내니 걱정하지 말라’고 오히려 주치의를 안심시키는 환자다.
이도현 씨는 중병을 앓으면서도 분명 즐겁게 살고 있다. 질병의 고통에 묶이지 않고, 삶의 기쁨을 찾으면서, 그 마음의 힘으로 병원에서 말하는 불가사의한 생존을 하고 있다. 어디 그냥 생존인가! 건강한 사람들조차 갖기 힘든 평온하고 충만한 삶을 살고 있다.
기적을 낳는 마음의 힘
이도현 씨처럼 병원의 시한부 진단에도 건강하게 살거나, 놀랄 만큼 잘 낫는 환자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부정적 진단을 두려워하지 않거나, 의학보다 자신의 치유력을 믿거나, 병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지금 이 순간을 즐겁게 살거나, 질병의 고통보다 삶의 무언가에 감사하는 밝은 마음이다. 반면 잘 낫지 않는 환자들에게도 공통점이 있다. 병을 지나치게 두려워하거나, 낫지 못할 거라는 고정관념이 강하거나, 누군가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 가득한 어두운 마음이다. 결국 ‘마음’이 치유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인 셈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몸과 마음을 하나로 보는 ‘심신일여(心身一如)’ 의학인 한의학에서는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최고의 치료라고 보았다. [동의보감]에서 태백진인(太白眞人)은 병을 치료하려면 먼저 마음을 평안히 하라고 강조한다. ‘환자로 하여금 마음속에 있는 의심, 염려, 욕심, 헛된 잡념, 불평을 다 없애게 하면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병이 자연히 낫는다’고 한다.
몸과 마음을 연결하는 생체 화학물질이 발견되면서 현대의학 역시 마음의 치유력을 강조한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이 달리지고, 이 화학 메신저들은 혈액을 타고 바로 온 몸으로 전해진다. 마음상태가 인체 생화학작용을 통해 온 몸의 신경계, 내분비계, 면역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다. 그래서 생화학물질 연구의 최고 권위자인 신경과학자 캔데이스 퍼트(Candace Pert)박사는 ‘인간의 치유 메커니즘은 감정에 의해 지배된다’고 한다.
마음상태와 면역계의 관계를 연구해온 정신신경면역학이 발달하면서 보다 구체적으로 마음의 치유작용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긍정적인 마음상태일 때는 도파민, 엔도르핀, 세로토닌, 옥시토신 같은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이 만들어져 면역기능을 강화하고, 부정적인 마음상태일 때는 노르아드레날린, 아드레날린, 글루코코르티코이드 같은 스트레스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이 만들어져 결국 면역기능을 약화시킨다는 것이 정신신경면역학의 연구결과다.
의학의 예상을 깨고 치유한 환자들을 보면, 마음이 기적적인 치유의 원동력임을 알 수 있다. 세계적인 심신의학자이자, 암 전문의인 버니 시겔(Bernie Siegel) 박사는 병원의 시한부 선고에도 기적적으로 살아난 암환자들을 연구했다. 그 연구결과에 따르면, 그들은 죽는다는 사실에 연연하지 않고 ‘기왕 죽을 바에야 즐거운 일을 실컷 하자’는 마음으로 산다고 한다. 즐거운 일에 몰두하다 보면 심신이 되살아나 결국 불치의 병도 물리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겔 박사는 평온하고 즐거운 마음이 치유의 열쇠라고 한다.
마음이 병원의 시한부 진단마저 뒤엎을 만큼 강력한 힘을 낸다면, 치유의 답은 분명해진다. 가장 먼저 자신의 마음을 살펴서 평온하게 다스려야 한다. 누군가에 대한 분노로 고통스럽다면, 용서를 통해 갈등을 풀고 심신을 평온하게 만들 때 비로소 치유될 수 있다. 끝없이 더 많은 것을 추구하면서 불행 속에서 산다면,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할 때 치유될 것이다. 아픈 마음부터 치유하는 것이 완치로 가는 지름길이다.
의학의 한계를 넘어서는 무한한 치유력 깨우기
병을 앓는 환자가 마음을 평온히 한다는 게,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마음이 병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제대로 자각하면 실천의지를 키울 수 있다. 마음치유를 통해 기적을 낳은 사람들처럼 누구나 가능한 일이다.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우선 병을 부정하고 싸워야 할 적으로 여기는 마음부터 비워야 한다. 병을 원망하는 한 마음의 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다. 병은 적이 아니라 더 큰 사랑으로 품어야 할 자신의 일부다.
질병에 묶여 있는 마음을 긍정적인 곳으로 돌리는 적극적인 노력도 필요하다. 삶의 의미를 찾는 일을 하거나, 좋아하는 취미활동을 하거나, 긍정적인 희망을 키우는 종교 활동을 하거나, 현재 자신이 누리는 것에 집중하는 감사훈련을 하거나 여러 방법이 있을 것이다. 좋은 치유서를 읽으면서 치유의지를 키우고, 기도를 하면서 희망을 얻고, 명상을 하면서 평화를 얻고, 코미디 영화를 보면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 모두 마음과 몸을 치유하는 길이다.
질병의 고통에만 매인 시선을 의식적으로 돌리기 위해 감사훈련을 하는 것도 좋다. 비록 병을 앓고 있지만 아직 살아있고, 먹을 음식이 있고, 평소 당연하게 느꼈던 삶의 모든 것에 일일이 감사하는 마음의 훈련을 하는 것이다.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팔에 집착해서 원망하며 사느냐, 움직일 수 있는 다리에 감사하며 사느냐에 따라 치유력은 완전히 달라진다.
지난날 희귀병 환자로 살았던 필자 역시 질병에 묶인 마음을 풀어낸 것이 치유의 동력이 되었다. 10대부터 시작된 병은 의사가 된 후까지 이어졌고, 오랜 투병생활로 병적 고통에만 집착하며 살았었다. 한때는 진료활동을 접고 죽음 앞에 서기도 했었다. 하지만 병든 몸으로도 다시 환자를 돌보면서 타인의 아픔으로 눈을 돌릴 수 있었고, 그러면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아픈 몸으로도 타인을 도울 수 있다는 보람과 감사의 마음이, 결국 심신을 치유하는 좋은 약이 된 셈이다.
지금 질병의 고통 속에 있어도 결코 절망하지 말자. 설령 의학이 ‘불치’ 혹은 ‘시한부’ 라고 진단했어도 좌절하지 말자. 두려운 마음을 털고, 자신의 치유력을 믿고, 담담히 병이 일깨워준 내 삶의 무언가를 하나씩 바로 잡자. 그러면 깨달을 것이다. 의학의 한계를 넘어서는 무한한 치유의 힘이 바로 내 안에 있다는 것을!
글. 이동진 (한의사, ‘채식주의가 병을 부른다’ 저자)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