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파 죽겠는데 병원 마다 ‘정상’이라니
왜 현대의학은 병을 진단조차 못하는가?
병을 치료하기 위해 처음 찾아간 곳은 동네 내과였다. 늑골까지 들썩이는 복부의 특이한 움직임을 본 의사는 계속 고개를 갸우뚱하기만 했다. 틱 현상은 아니며, 평생 처음 보는 증상이라고 했다. 이런저런 검사를 했지만 결과는 ‘이상이 없다’고 나왔다. 좀 더 큰 병원에서도 검사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크게 실망하지 않았다. 첨단 의료장비와 유능한 의료진이 있는 큰 대학병원에 가면 희귀병이라도 제대로 진단하고 치유법을 찾을 거라고 믿었다. 반드시 건강을 되찾겠다는 각오로 부모님과 함께 대도시의 대학병원으로 갔다. 며칠간 머물면서 온갖 검사를 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역시 정상이라는 진단결과를 받았다. 참담한 심정으로 여러 대형 병원을 더 다녔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현대의학의 첨단 의료에 대한 환상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어떻게 내가 정상이라는 말인가! 하루 종일 계속되는 복부의 기이한 움직임과 두통, 요통, 밥을 제대로 먹을 수도 없는 소화불량으로 고통이 엄청난데....”
나는 진단 결과를 이해할 수 없었다. 죽어가는 사람도 살릴 만큼 의료기술이 발달한 시대를 사는데도, 병을 진단조차 하지 못한다는 것은 내게 큰 상처가 되었다. 그것은 곧 병의 원인도 모르는 고통 속에서 평생 살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당시에 나는 진단조차 하지 못하는 희귀병이 매우 드물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불행감이 더욱 컸다.
현대의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베르너 바르텐스 박사는 ‘검사결과 이상이 없고 진단명조차 나오지 않는 병이 대략 10~20% 이상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병원에서 병을 찾지 못하는 것은, 인체를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대의학이 최첨단이라고 해도 우리 몸의 미세한 메커니즘을 완전하게 밝혀내지 못했다. 아무리 영상의학이 발달했어도 세세한 신경작용까지 모두 감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환자들은 고통을 느끼지만 병원은 이상을 찾아내지 못하는 것이다.
특히 인체의 구조적 이상인 기질성 질환과 달리 기능성 질환의 진단에서는 한계를 보여 왔다. ‘고통받는 환자와 인간에게서 멀어진 의사를 위하여’의 저자인 미국 코넬대 의대 에릭 카셀 교수는 병원 진단의 한계를 이렇게 설명한다.
“요통을 호소하는 환자가 X선 촬영에서 탈출한 척추간판이나 다른 구조적 이상을 보이지 않는다면, 그 환자는 ‘아무 이상 없다’는 대답만 듣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분명 무언가 이상이 있음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다면 허리가 아프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전적 질병이론에 따르면, 이 경우는 아무런 질병도 존재하지 않는다. 환자가 아무리 고통스러워하더라도 구조적 변화가 없다면 질병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현대의학이 주력해온 구조적 변화를 찾는 진단법이 실제 환자의 고통을 이해하는 데 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인체 기능의 변화는 구조의 변화 때문이라는 고정관념이 무너지면서 기능성 질환을 진단하는 검사법도 등장했다. 하지만 여전히 병을 진단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환자들에게 병원은 오히려 원망과 절망의 대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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