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가 잘려나간 사나이에겐 어떤 일이….


유명한 뇌 3D 모델로 복원

의사가 아닌 환자로서 의학계에 기여한 공 때문에 신경과학 역사상 가장 유명한 뇌를 가진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 있다. 또 이 사람의 뇌가 최근 디지털로 복원되면서 기억과 학습에 관련된 뇌 연구 분야에 큰 도움이 될 예정이다.

‘환자 H.M.’으로 알려진 헨리 몰라이슨은 그의 만성적인 간질 발작을 치료하기 위해 1953년 뇌수술을 받게 된다. 미국 하트퍼드 병원 신경외과의사인 윌리엄 비처 스코빌이 당시 몰라이슨의 수술을 맡았다. 스코빌 박사는 몰라이슨의 발작이 좌우 중앙 측두엽의 일부 뇌 조직에서 기인했다고 판단해 해당 부위를 주먹 크기만큼 제거한다.

수술을 받은 이후 몰라이슨의 간질은 대부분 치유됐다. 문제는 잘려나간 뇌 부위에 해마가 포함돼 있었다는 점이다. 기억에 관여하는 부위인 해마가 제거되면서 몰라이슨은 더 이상 새로운 기억을 저장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수술 이후 만난 사람들의 얼굴과 이름, 새로 겪은 경험들을 기억할 수 없게 된 몰라이슨은 평생 1953년에 갇혀 사는 사람이 됐다. 방금 전 일어난 일조차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에 학습효과가 없어 평생 똑같은 질문과 행동을 되풀이하는 비정상적인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몰라이슨의 이 같은 불행한 일생은 신경과학자들에게 중대한 발견을 얻게 만든다. 외현기억과 절차기억 간의 차이점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외현기억은 경험과 새로운 정보를 의식적으로 기억하는 것이고 절차기억은 작업 능력에 대한 무의식적인 기억을 말한다.

과학자들은 몰라이슨의 증상을 통해 해마가 대체로 장기기억과 외현기억을 부호화하는 책임을 지고 있는 반면 단기기억이나 절차기억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뇌의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을 나누는 큰 의학적 성과를 이룬 것이다.

살아있는 동안 수많은 연구의 실험대상이 됐던 몰라이슨은 사후 뇌 기증까지 하기로 마음먹는다. 지난 2008년 몰라이슨이 사망하고 난 뒤 그의 뇌는 젤라틴 형태로 냉장됐고 연구를 위해 2401개의 미세한 조각으로 나뉘었다. 또 이 슬라이스 조각들은 그의 뇌를 3D 모델로 복원하는데 도움이 됐다.

몰라이슨의 뇌를 3D로 복원하고 이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 연구논문은 영국 과학전문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 1월 28일자에 게재됐다. 과학자들은 몰라이슨 뇌의 3D 모델 구상이 신경과학에 있어 다양한 돌파구를 마련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문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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