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끊긴 사람들, 간밤에 한 짓 궁금하지만...

 

없던 얘기 지어낼 수도

술을 먹고 나서 기억이 어느 순간부터 나지 않는 것을 속칭 ‘필름이 끊겼다’고 한다. 이는 일종의 블랙아웃 현상으로 알코올 의존증의 증상 중 하나다.

6개월 동안 2회 이상 필름이 끊겼다면 알코올 의존증을 의심할 수 있다. 필름이 끊기는 것은 혈중 알코올 농도의 급격한 상승으로 뇌세포에 알코올이 침투해 나타나는 뇌기능 마비현상이다.

혈중 알코올 농도가 떨어질 때까지 뇌기능 마비가 지속된다. 간밤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과음으로 인해 뇌기능이 둔해지고 정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필름이 끊긴 사람들은 보통 자기처럼 취했던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물어보고 이런 질문을 받은 사람들은 없는 일을 지어내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서리대학 심리학과 강사인 로버트 내시가 이끄는 연구팀은 280명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술을 먹고 완전히 필름이 끊긴 경험이 있는 학생은 24%, 부분적으로 끊긴 일이 있는 학생은 37%로 나타났다.

필름이 끊긴 사람들은 같이 술을 마신 사람들에게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죠. 그리고 내가 무슨 짓을 했죠’라고 묻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리고 그런 질문을 받은 사람 4명 중 3명은 무심결에 없던 일을 지어내서 알려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네가 다른 사람 옷에다 토했다’거나 ‘낯선 사람에게 집적댔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필름이 끊겼던 사람 중 자신이 들은 이야기가 거짓이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아차린 경우는 1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내시는 “필름이 끊긴 사람들이 간밤에 일어난 일을 열심히 알아내고 싶어 한다는 데 놀랐다”며 “자신이 알아낸 사실에 당황하거나 공황상태에 빠질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질문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끊긴 기억을 남의 말만 듣고 재구성할 때는 그 사람이 정말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 아니면 목격자가 그 사람뿐이어서 다른 방도가 없는 상황인지를 조심스럽게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연구결과는 ‘기억(Memory)’ 저널에 실렸다.

    권순일 기자

    저작권ⓒ 건강을 위한 정직한 지식. 코메디닷컴 kormedi.com / 무단전재-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

    댓글 0
    댓글 쓰기

    함께 볼 만한 콘텐츠

    관련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