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윤정의 시시비비] 주취자는 정신질환자인가?
2010년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국민 1인당 성인을 기준으로 연간 소주 66.6병, 맥주 100.8병, 막걸리 14.2병을 마셨다. 미국 경제전문 CNBC 방송이 2011년 발표한 ‘술을 가장 많이 마시는 나라 TOP 15’에서 11위를 차지했다. 한 해 평균 술 소비량은 1인당 14.8리터. 우리나라 주류소비 성적표가 국제적으로 상위권을 차지하게 된 배경은 술에 관대한 우리 문화와 함께 별도로 짚어볼 일이다.
한편 최근 언론과 경찰이 ‘주폭’ 문제를 부각시키고 또 이를 성급하게 대응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우려스럽다. 지난 7월 국회에 발의된 정신보건법 개정안은 “경찰이나 구급대원이 주취자로 판단하는 경우 의료기관에 입원시킬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술에 취해 판단력과 신체기능이 저하되는 등의 ‘주취자’로 판단되면 본인이나 가족의 동의 없이도 의료기관으로 이송해 입원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술에 취해 판단력과 신체기능이 저하되지 않는 사람이 과연 있었던가?...
원유철 의원이 대표발의한 정신보건법 개정안은 주취자를 정신질환자와 동일하게 강제 입원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주취자”는 정신질환자인가? 세계에서 11번째로 술을 많이 마시는 우리나라 성인들이 정신질환자 대우를 받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병원은 환자를 치료하는 곳이다. 주취자가 환자인가? 주취자 중 일부는 알콜중독자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모든 주취자가 강제 입원이 필요한 환자가 아닐진대 이러한 법률 개정안의 의도는 무엇인가? 설사 ‘주취자가 모두 알콜중독 환자일지라도, 본인과 가족의 동의 없는 강제입원이 정당한가?’도 반드시 짚어볼 문제이다.
경찰관도 통제하기 어려운 주취자를 병원에 이송하면, 의사소통이 어려운 상태에서 정상적인 방법으로 진단하고 입원을 결정 할 수 있다고 보는 근거가 무엇인가?. 또 병원에서 주취자들이 소란을 피울 경우 다른 환자들과 의료인들은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주취자를 정신질환자로 규정하고 강제입원 조치까지 가능하도록 하는 이 법안은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다. 이런 법안의 공동발의자로 정신과 전문의까지 포함되어 있어 더욱 절망스럽다. 주취자를 정신질환자로 취급하는 것은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가중시킬 수 있다. 헌법 제12조에 보장된 신체적 자유를 부당하게 침해할 수 있는 인권침탈 행위이다. 또한 일부 주취자의 범죄행위에 대해 ‘정신질환자’라는 부적절한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더 큰 문제가 있다.
우리 사회에는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는 이유로 보험가입이 거절되는 등 다양한 사회적 편견과 불이익이 존재한다. 이 때문에 환자들이 정신과 상담이나 치료를 기피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오명을 더할 수 있는 정신보건법 개정안 추진은 중단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