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에 대한 오해
감기는 바이러스가 목구멍과 콧구멍 일대를 감염시켜 일어나는 질환이다. 항생제는
박테리아에만 작용하기 때문에 전혀 효과가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 병·의원들은
급성 상기도감염(감기) 환자의 52%에게 항생제를 처방하고 있다. 지난 5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공개한 2010년 하반기의 약제급여 적정성 평가 결과다. 항생제를 남용하면 박테리아의
내성을 유발하며 장내 박테리아 생태계를 파괴해 난치성 장염을 일으킬 위험이 있다.
감기는 추위 때문에 생기는 병이 아니다. 남극의 세종기지에 감기 환자가 없는
것이 대표적 예다. 이곳에 감기가 발생하는 것은 감기 바이러스를 지닌 신입 대원이
들어올 때뿐이다. 겨울에 감기가 많이 발생하는 것은 사람들이 주로 실내에서 지내기
때문에 서로 가까이 접촉하는 일이 많은 탓이다.
일반 감기 증상은 목구멍이 간질간질하거나 약간 따끔거리는 것과 콧물, 코막힘,
재채기 등이다. 첫 증상이 나타난 지 2~3일째에 가장 심해진다. 만일 처음부터 고열이
나고 춥고 가슴이 답답하며 온몸이 쑤시고 심한 피로를 느낀다면 감기가 아니라 독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건강한 성인의 감기는 7~10일이면 저절로 낫는다. 감기를 치료하는
약은 없다. 휴식을 취하고 수분을 많이 섭취하고 소금물로 목구멍과 콧속을 씻어내는
것이 거의 유일한 대책이다.
건강한 성인이 발병 24시간 이내에 아연 보충제를 먹으면 증상을 완화하고 앓는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 또한 비타민C는 앓는 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고 한다. 기침에는
흔히 사용되는 진해제 덱스트로메드로판보다 꿀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기침을 완화하고 잠을 잘 자게 해준다. 하지만 1세 이하의 아기에게 먹여서는
안 된다. 유아 보툴리누스증에 걸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감기에 해열진통제를 먹으면 증상은 완화될지 몰라도 낫는 것이 더뎌진다. 56명의
자원자에게 감기 바이러스를 투여한 실험을 보자. 일부에게는 아스피린이나 아세트아미노펜을
복용시키고 나머지에게는 밀가루 약을 먹였다. 그 결과 밀가루 약을 먹은 쪽이 훨씬
높은 항체 반응을 나타냈고 코 막힘 증상도 덜했으며 전염성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기간이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
감기 증상은 면역계가 강한 사람들에게서 더 잘 나타난다. 이것은 감기 증상이
바이러스 자체가 아니라 바이러스에 대한 인체의 면역 반응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면역계의 활성이 약한 사람들, 즉 성인의 4분의 1은 바이러스에 감염돼도 뚜렷한
증상을 보이지 않는다.
감기 바이러스는 보균자의 콧물, 재채기, 침을 통해 전파된다. 이를 흡입하거나
이런 물질이 묻은 물체의 표면과 접촉하는 것이 주요 감염 경로다. 커피잔 손잡이를
만지거나 보균자와 악수한 손으로 입이나 코, 눈가를 문지르면 전염된다. 가장 쉽고
효과적인 대책은 비누로 손을 자주 씻는 것이다.
조현욱 미디어본부장·중앙일보 객원 과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