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안데르탈인 유전자
네안데르탈인은 약 50만 년 전 유럽·중동·서아시아에 살기 시작한
인류의 방계 조상이다. 정교한 석기를 사용했고 죽은 자를 매장했으며 언어를 사용(추정)했다.
하지만 3만 년 전쯤 이후로는 화석이 나타나지 않는다. 더 높은 지능과 더 발달된
도구를 갖춘 인류의 조상에게 밀려 도태됐다는 것이 기존의 설명이다.
심지어 우리 조상들의 식량이 됐다는 극단적 주장까지 나왔다. 2009년 프랑스
국립 과학연구센터 페르난도 로치 박사는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동굴로 끌고
들어와 잡아 먹었으며, 두개골과 이빨을 목걸이나 장식물로 사용했다”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켰다. 네안데르탈인의 뼈가 사슴을 비롯한 당시 동물들의 뼈와 함께 빈번히
출토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라는 것이다. 다행히 이런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 지난해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가 발표한 연구 결과다. 네안데르탈인의
DNA 약 55%를 판독한 뒤 이를 아프리카·유럽·아시아·뉴기니
사람의 유전자와 비교했다. 그 결과 아프리카 이외의 지역 사람과 네안데르탈인이
일부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연구소는 아프리카 밖으로 퍼져나간 우리 조상이 네안데르탈인과 교배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버드 대학의 다비드 라이히 교수 등은 이 같은 교배가 3만7000년 전~8만6000년
전 사이의 어느 땐가 중동 지방에서 일어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유럽인이 보유한
네안데르탈인 DNA를 분석한 결과다.
두 종은 왜 교배하게 됐을까? 빙하기가 다가와 먹을 것이 부족해지자 점점 더
멀리까지 수렵 채집을 다닌 탓이라는 설명이 제시됐다.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의 마이클
바톤 교수가 ‘인간 생태학’ 저널 최신호에 발표한 논문의 내용이다. 그는 유럽과
아시아의 동굴 유적지 167곳에서 출토된 12만8000년 전~1만1500년 전 석기를 분석해
두 종의 이동 범위 변화를 조사했다. 이를 토대로 한랭화에 따른 두 집단의 생활
양식 변화와 접촉 비율 등을 계산하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했다. 그러자 교배를
시작한 지 1500세대가 지나면서 네안데르탈인의 후손은 고유한 유전적 특징을 잃게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바톤 교수는 “네안데르탈인이 인류의 조상 못지않게 복잡한
적응적 행태를 보일 능력을 갖췄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런 결과가 빚어진 것”이라면서
“인구가 훨씬 더 많았던 인류의 조상이 네안데르탈인을 흡수해 버렸다”고 말했다.
사실 인류가 흡수해 버린 것은 네안데르탈인만이 아니다. 4만 년 전쯤 시베리아에서
살았던 데니소바인도 같은 운명을 겪었다. 약 30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과의 공통
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종이다. 오늘날 글로벌화로 인해 세계 도처에서 고유한 지역
문화가 사라지는 현상을 우리는 보고 있다. 몇만 년 전과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는다.
조현욱 미디어본부장·중앙일보 객원 과학전문기자 (poemloveyou@kormed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