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아이들에게 육상과 축구는 '밥'
김화성의 종횡무진 육상이야기 ④
아프리카 어린이들에게 육상과 축구는 꿈이다. 희망이다. 마약이고 아편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가난을 탈출할 수 있는 마지막 비상구이기 때문이다. 케냐 에티오피아
어린이들은 달리기를 꿈꾼다. 달리기를 잘하면 엄청난 돈을 움켜쥘 수 있다는 것을
어릴 때부터 보아왔다. 나이지리아 가나 카메룬 알제리 이집트, 튀니지, 세네갈,
토고, 앙골라, 코트디부아르, 잠비아 어린이들은 축구를 꿈꾼다. 육상보다 대상국가와
인구가 훨씬 넓고 많다.
육상과 축구는 돈이 거의 들지 않는다. 육상은 운동화 하나면 끝이다. 아예 맨발로
달리는 아이들조차 있다. 축구도 마찬가지다. 공과 축구화만 있으면 그만이다. 비싼
축구화는 바라지도 않는다. 아무 신발이라도 신을 수만 있으면 감지덕지다. 가난한
아프리카 어린이들에게 육상과 축구만큼 안성맞춤인 운동도 없는 것이다.
케냐의 폴 터갓은 한때 남자마라톤 세계 최고기록(2시간4분55초) 보유자였다.
세계 크로스컨트리 5연승,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 1만m 연속 준우승, 유엔 명예대사,
출판사 사장 등 다채로운 경력을 가졌다. 그는 어렸을 때 하루에 한 끼 밖에 먹지
못했다. 그는 “장거리달리기는 티셔츠와 신발만 있으면 준비 끝”이라고 말한다.
육상과 축구는 비슷한 점도 있지만 다른 점도 있다는 것이다.
“축구는 축구장에 가지 않으면 할 수 없다. 또한 축구화나 축구공도 결코 싸지
않다. 가령 지단이나 호나우두 호나우지뉴 등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축구선수 10만
명이 동시에 한 경기장에서 게임을 할 수 있는가? 하지만 우리 마라톤 선수들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폴 터갓의 입장일 뿐이다. 축구는
육상보다 훨씬 인기가 높다. 그만큼 돈을 더 벌수 있다. 게다가 육상은 세계 1인자
단 하나만 돈과 명예를 움켜쥘 수 있다. 그 아래는 별로다. 축구는 다르다. 유럽
빅 리그에서 주전정도만 되면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육상보다 시장이 훨씬 넓고
기회가 풍부하다.
요즘 유럽프로축구 빅 리그엔 아프리카선수들이 수두룩하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첼시의 디디에 드로그바는 그의 조국 코트디부아르보다 더 잘 알려져 있다. 2006~2007시즌
20골을 넣어 아프리카출신 최초로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에 올랐다. 코트디부아르가
아프리카서부 상아해안에 있으며, 전 세계 코코아의 40%를 생산하는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된 것도 드로그바에 대한 관심덕분인 경우가 많다. 코트디부아르엔 아야 투레(바르셀로나)
에마누엘 에부에(아스날), 살로몽 칼루(첼시) 같은 내로라하는 스타들도 있다.
가나출신의 마이클 에시앙(첼시), 토고의 에마뉘엘 아데바요르(맨시티), 카메룬의
사무엘 에투(바르셀로나), 설리 문타리(포츠머스), 나이지리아의 야쿠부 아예그베니,
조셉 요보(이상 에버턴), 완코 카누(포츠머스)도 빼놓으면 서운해 할 스타들이다.
2010년 아프리카네이션스컵 대회(1.10~31) 전체 참가선수 367명중 무려 207명이 유럽파였다.
전체의 56.4%로 절반이 넘는다.
2002 한일월드컵 아프리카 대표는 카메룬, 튀니지, 나이지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세네갈이었다. 하지만 4년 후 2006독일월드컵 대표는 코트디부아르, 앙골라, 가나,
토고, 튀니지로 바뀌었다. 튀니지만 빼놓고는 전혀 새얼굴이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아프리카대표는 자동출전인 주최국 남아공을 비롯해 나이지리아 알제리 가나 카메룬
코트디부아르였다. 앙골라 튀니지 토고가 떨어져나가고 나이지리아 알제리 카메룬이
다시 합류했다. 그만큼 실력이 어금버금하다.
아프리카 전통 강호는 나이지리아, 카메룬, 이집트, 튀니지, 세네갈의 빅5다.
모두 아프리카 중부이북에 자리 잡고 있다. 아프리카 평균 생활수준보다 소득이 높다는
것도 닮은꼴이다. 아프리카에선 국가의 부가 축구발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1992년 그레이엄 테일러 잉글랜드축구대표감독은 아프리카축구의 잠재력에 대해
혀를 내두르며 감탄했다.
“만약 그들이 그라운드에서 조직력을 발휘하기만 한다면, 그들의 천부적인 능력과
경기에 대한 열정, 유연성, 그리고 경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머지않아 세계축구에
공포의 대상이 될 것이다.”
테일러감독도 미처 깨닫지 못한 게 있다. 조직력은 그라운드 안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그 나라의 축구시스템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세네갈축구연맹은
깜박 잊고 월드컵 참가신청을 하지 않아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 예선에 나가지도
못했다. 하기야 대한축구연맹도 1958년 서류를 잃어버려 월드컵 출전신청을 하지
못했다. 나이지리아축구연맹은 부르키나파소와의 홈경기에 깜빡 잊고 선수들이 입을
하의 팬츠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 선수들은 겨울 속옷 아랫부분을 잘라내고 경기장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아프리카에선 이런 황당한 일들이 요즘에도 벌어지고 있다.
월드컵 우승 실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아직 ‘돌풍’에 머무르고 있는 이유다.
아프리카 육상과 축구는 서구자본의 투기대상이다. 적은 돈으로 큰 돈을 벌수가
있다. 돈이 있는 곳엔 파리 떼가 끓기 마련이다. 케냐 에티오피아 남아공의 어린
육상선수들은 대부분 미국자본으로 키워진다. 이탈리아나 일본 자본도 기웃거리지만
그 규모는 미국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물론 초기에 미국선교사들의 공로도 일정부분
인정해야한다.
축구는 유럽의 ‘현대판 축구 노예상인들’이 설쳐댄다. 아프리카의 유망한 꿈나무들을
헐값에 사서 종신계약을 맺은 뒤, 유럽 유명클럽에게 비싸게 파는 방식이다. 하지만
빅 리그 팀의 입단테스트 통과는 하늘의 별따기다. 해마다 수천 명의 아프리카 청소년들이
유럽리그를 노크해보지만, 이중 선택된 사람은 극히 드물다. 나머지는 유럽 뒷골목을
떠도는 불법체류자로 남는다.
아프리카는 아직도 공동체사회 색채가 짙다. 한동네가 온통 친척으로 이뤄진 곳이
많다. 만약 그 동네에서 유명 육상스타나 축구스타가 나온다면, 곧바로 그 곳은 부자동네가
된다. 마을 모두가 먹고 사는 데 걱정이 없어진다. 1993년 나이지리아 대선후보였던
모슈드 아비올라는 “당선되면 나이지리아 월드컵 우승을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그런 공약이 먹혀들 수 있는 곳이 바로 아프리카다. 그만큼 아프리카 어린이들은
절박하다. 하기야 최근 대한민국대통령선거에서도 “축지법을 쓰고 우주인과 교신이
가능하다”는 후보자가 있었다. 그 후보자보다야 ‘나이지리아 월드컵우승 공약’이
훨씬 현실적이다. 아프리카축구는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 머지않아 아프리카축구는
아프리카육상이 그랬던 것처럼 세계를 휩쓸 날이 올 것이다. 그렇다. 원래 인류의
조상은 아프리카인이었다.